강화에서 역사와 현재를 만나다

[회원들의 이야기마당]


△ 강화 양민을 가두었던 곡물검사소 앞에서 서영선 유족회 회장님의 설명을 듣고 있다.

길섶은 지난 7월 14일(토) 강화도로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한국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현장으로, 강화 양민학살희생자유족회 서영선(77) 회장님을 모시고 답사를 갔습니다. 강화도의 양민학살은 1951년 1.4후퇴 당시 반공청년단(치안대)들이 부역자 또는 월북자 가족으로 의심받는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밝혀진 희생자 수만 200명이 넘습니다.
서영선 회장님의 아버님(당시 42살)은 당시 군청에서 장학사 일을 하시다 행방불명이 되었는데, 월북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머님(당시 38살)과 동생(당시 1살)이 월북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끌려가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어머님이 끌려가시던 그 뒷모습이 어머님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일행은 당시 희생자들이 갇혀 있었던 곡물검사소, 양조장, 경찰서 유치장과 총살당한 옥계 갯벌, 갑곶선착장을 다니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옥계 갯벌에서 총살을 하면 다음날 시신들은 바닷물에 휩쓸려 가버렸다고 하였습니다. 구 강화대교(갑곶 선착장)에는 서 회장님이 세운 어머니 추모비가 있습니다. 희생자들의 위령제는 매년 4월, 갑곶 선착장(구 강화대교)에서 지내고 있으며, 서 선생님과 유족들의 요구는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희생자들의 명예회복을 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말씀을 강조하셨습니다. 당시 학살을 자행한 가해자들이 지금 살아 있는데, 찾아가서 진상을 물어보면 ‘모른다, 나는 죽이지 않았다.’며 대답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지금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만들어져 조사를 하고 있는데 성과는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직 아닌 것 같습니다.
서 선생님은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과정이 담긴 [한과 슬픔은 세월의 두께만큼]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셨는데, 우리 일행에게 주셨습니다. 책에는 행복했던 유년시절과 쓰라린 기억, 길고 긴 투쟁의 세월과 슬픔, 학살의 전모, 유족들의 상처와 고난, 강화 민간인학살 관련 자료 등이 담겨져 있습니다.
학살현장 답사를 마치고 강화군청 근처 한식집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서 선생님은 어머니 추모비 주변에 풀을 정리하신다며 먼저 일어나셨습니다. 내년 위령제때 뵙겠다는 인사와 함께 선생님의 건강을 빌어드렸습니다. 많은 유족들은 40여년 세월을 피해자라는 말도 못하고 가슴속에 한을 품고 살아가거나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비단 강화도뿐만 아니라 노근리, 경북, 경산, 전남 나주 등등 전국에 걸쳐 양민학살이 일어났는데,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 3월 만리포에서는 평양점령을 목표로 하는 한미연합연습 RSOI훈련이 있었고, 1994년 여름에는 미국이 북에 대해 폭격을 하려다 만 일이 있었습니다. 한반도의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세상에 참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후에는 민통선 마을인 철산리로 갔습니다. 민통선 입구에서 경계를 서던 군인이 연고가 없으면 출입할 수 없다며 우리를 막아섰습니다. 그래서 “강화군청에 알아봤는데 개방이 됐지 않느냐?”고 항의하니, 민통선 안에서 사진을 촬영하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주민등록증 내용을 기록부에 적고 들어갔습니다. 민통선을 찾아 가기로 한 것은 이호민 회원의 역할이 큽니다. 며칠 전 강화군청에 민통선 출입여부를 알아보고 들어 갈수 있다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민통선 안의 마을은 여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평화로운 논에는 모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사이에 두고 북녘 땅이 보였습니다. 바다 건너에 보이는 마을이 개풍군이라고 합니다. 손에 잡힐 듯이 매우 가까운 거리였습니다. 현재 비무장지대에 묻힌 지뢰가 유실돼 강화도 주민들이 다치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이야기와 함께, 미군 통신시설이 설치 되어있는 고려산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우리네 땅인데 우리 마음대로 사진 촬영도 못 하고 그냥 눈으로만 봐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산과 들은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인데 남과 북이 갈라져 있는 것은 참으로 비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통선을 빠져나와 철종 외가를 찾아갔습니다. 철종의 외갓집에 가니 관리인은 없고 마을 아저씨들 두 명이 문 앞에 앉아서 쉬고 계십니다. 집과 주변을 둘러보고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로 향했습니다. 조선시대 말, 조선을 침략하려는 미국군․프랑스군과 맞서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치룬 곳입니다. 외세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선조들이 지금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과연 뭐라고 하실까하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한미 FTA가 체결되고, 주한미군이 주둔해 있고, 군사주권도 미군에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 대해 뭐라고 하실지…. 또, 이곳을 찾는 많은 관람객들은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단순히 관광지 또는 지난 역사의 한 현장으로만 생각하고 그냥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들었습니다. 민통선이 해제되고, 고려산에 미군통신시설이 없어지고, 대인 지뢰가 없어지고 민간인 학살 진상이 규명되는 날이 빨리 오기를 선조들이 바랄 거라는 답을 해봅니다.
강화도를 뒤로 하고 일행은 서울로 향했습니다. 이번 강화도 답사는 사전 조사도 많이 하고 길 안내도 열심히 한 이호민 회원이 있어서 더욱 재밌는 기행이었습니다.


△광성보 전경

 

→ 관련글 : 길섶에서 한국전쟁과 양민학살, 신미양요, 철조망과 미군통신시설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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