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평화협정과 통일

[특집 1]

한반도 평화협정과 통일1)

 

6자회담 참가국들은 제6차 6자회담 1단계 회의(7월 18~20일, 베이징)에서 ‘2.13합의’의 첫 단계 조치-북한의 핵시설 폐쇄․봉인, 중유 5만톤 대북 제공 등-이행을 평가하고, 다음 단계 조치들에 대해 토의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을 위한 직접 관련 당사국들의 포럼(이하 가칭 ‘한반도평화회담’) 구성도 비로소 한 고개를 넘어섰지만 아직 넘어야 할 고개는 많이 남아 있다. 8월에 열릴 5개 실무그룹 회담부터 6자회담 진전을 가로막을 쟁점들이 본격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쉽지 않은 문 열기
크게 두 가지 쟁점이 형성될 것으로 보이는데 하나는 북한이 불능화(disabling) 단계에서 신고하고 포기해야 할 핵프로그램과 핵시설의 범위이고, 다른 하나는 경수로 제공 시기와 관련된 것이다.
첫째, 북한은 플루토늄핵무기프로그램과 과거 IAEA에 신고했던 핵시설 외에 추가적으로 신고하거나 불능화 할 대상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고, 미국은 자신이 의혹을 제기했던 우라늄핵무기프로그램의 신고와 관련시설 불능화를 요구할 수 있다.2)
둘째, 북한은 2.13합의 당시 “참가국은 9·19공동성명의 1조와 3조를 상기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경제·에너지·인도적 지원에 협력하기로 합의했다”(제2조 5항)는 점을 들어 경수로의 조속한 제공을 요구할 것이고, 미국은 경수로 제공에 최대한 많은 전제조건들―모든 핵프로그램의 전면 공개, 핵시설의 완전한 불능화, 핵무기비확산조약(NPT) 가입 등―을 내걸 가능성이 있다.
한반도평화체제 수립논의는 이러한 예상쟁점들이 어느 정도 해소되지 않을 경우 시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쟁점들이 모두 해소돼 북한의 핵 불능화와 북·미관계정상화, 북·일관계정상화, 대규모 에너지 제공 등을 맞바꾸는 단계로 나아가더라도 한반도평화회담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누가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인가”를 둘러싼 논란을 넘어서야 할 것이다.
실현가능하고 바람직한 형식은 남·북·미·중 4국이 반드시 한반도평화협정 체결의 당사자가 되는 것이다. 첫째, 한미동맹과 북한의 적대관계가 한반도 긴장의 본질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국을 당사자에서 배제하는 평화협정은 체결되기 어렵고, 둘째, 정전협정 서명국인 중국이 평화협정 체결의 형식적 자격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더해, 중국의 참여는 한반도평화체제가 동북아시아다자안보협력체제의 산파역할을 하는데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평화협정에 담아야 할 내용
한반도평화회담의 핵심목표는 남·북·미·중이 한반도평화협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반도평화협정에 담아야 할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 한국전쟁의 공식종결에 관련된 내용을 담아야 한다. 평화의 유지를 위해서는 평화의 회복이 먼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보도되고 있는 종전선언문 채택의 주체를 북한과 미국 뿐 아니라 남한과 중국으로 확대하는 식으로 해결할 수 있다.
둘째, 종전이 합의되면 정전협정의 관리주체였던 유엔사령부 해체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유엔사령부는 이미 1991년 9월 남북유엔동시가입으로 존재근거가 희박해졌고, 정전체제의 관리기구라 할 수 있는 군사정전위원회, 중립국감독위원회도 유명무실화됐으며, 유엔사령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왔던 미국이 평화협정 당사자가 될 경우 더욱더 존재할 필요성이 없다. 또한 유엔사령부가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남북교류협력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평화통일 진전을 위해서도 해체되어야 한다.
셋째, 동맹해체 절차와 내용을 명시해야 한다.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의 상호주의적 해체는 한반도평화체제 수립이 동북아시아 평화정착에 기여하는 길 중 하나다. 이 중 북중동맹 해체는 조약 파기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데 비해, 한미동맹 해체는 보다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파기 뿐 아니라 주한미군 철수가 결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반도평화체제가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성격이 ‘평화유지군’으로 일정하게 변화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이러한 주장은 중국이 평화협정 당사자로 참여할 경우 무의미해진다. 이미 주한미군이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아시아태평양신속기동군으로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군사패권 확대를 견제하는 중국이 주한미군 주둔을 용인한 평화협정을 수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기 때문이다.
넷째, 대량살상무기에 의한 충돌과 갈등을 근본적으로 막기 위해 한반도 비핵지대화를 향한 동시행동 조치를 명시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지대(nuclear-weapon free zone)는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배치 등을 금지하는 한반도 비핵화(denuclearization)와 달리 군사훈련목적을 위한 핵무기의 출입과 통과까지도 완전히 금지하고, 무엇보다도 핵무기 보유국들이 남북에 대해 핵무기를 사용하거나 핵무기 사용위협을 해서는 안 되는 상태다.
다섯째, 전후(戰後)문제 청산을 위한 내용을 담아야 한다. 해양경계선처럼 정전협정에서 정리되지 않은 남북 간의 영토문제를 평화협정을 통해 해결할 필요성이 있으며, 비무장지대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합의해야 한다. 또한 미귀환국군포로, 납북자, 장기수, 전시 민간인 학살문제 처리 등도 평화협정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들이다.
여섯째, 남북은 평화통일 추진 조항을 별도로 마련해 합의한다. 한반도평화협정에 의해 수립되는 한반도평화체제는 평화통일에 의해서 공고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남북의 평화통일 노력을 방해하지 않는다고 명시적으로 약속해야 한다.
일곱째, 남·북·미·중은 상호 충돌과 전쟁의 포기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다자안보협력체제 수립을 위해 적극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명문화한다.
여덟째, 위에서 제기된 다양한 문제들을 협의하고 집행할 평화협정이행기구―평화통일추진기구 포함―의 구성과 운영에 관한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평화협정이행기구는 한반도 비핵지대화 추진회의, 군사동맹해체회의, 과거청산회의 같은 ‘협의기구’와 합의사항을 실행하는 ‘집행기구’ 등으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와 통일의 관계
한반도평화협정이 체결되어 이행되고 북한과 미국․일본과의 수교까지 완료되면 한반도평화체제가 비로소 수립됐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이러한 한반도평화체제가 공고화되기 위해서는 평화통일과 동북아시아 평화정착이 함께 진전되어야만 한다. 한반도평화체제가 수립된다 하더라도 분단 상태에서는 남북 간의 우발적 충돌이 심각한 대결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동북아시아의 군사적 긴장은 한반도평화에 언제라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남북 통합수준이 높아질수록 동북아시아의 긴장과 갈등을 완화시키는 ‘평화촉진자’로서의 위상과 역할 역시 함께 높아질 것이다. 요컨대 한반도평화체제를 기반으로 통일한 남북이 동북아시아 평화정착의 중추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결론적으로 한반도에서 평화와 통일은 대체재(代替財)가 아니라 보완재(補完財)이며, 따라서 한반도평화협정은 이 글에서 제시한 것처럼 반드시 통일관련 조항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1) 이 글은 곧 발간될 홍근수 평통사 상임대표 고희기념 논문집『전환기 한미관계 재판짜기 2(가칭)』(한울출판사)에 실린 필자의 논문을 발췌한 글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논문을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곳을 클릭하시면, 본문으로 돌아간답니다.]
2) 어떤 상태를 ‘불능화’로 볼 것인지, 곧 불능화 개념에 대해서도 심각한 논쟁이 예상된다. [이 곳을 클릭하시면, 본문으로 돌아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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