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사람

[이슈] 한미군사동맹의 갈림길, 평택 전쟁

5월 4일 이후 대추리를 가다

2006년 5월 4일과 5일, 대추리와 도두리 일대에서 전쟁이 일어났다. 그 전쟁은 병력과 장비 면에서 월등히 우월한 우위를 점한 한 쪽의 일방적인 공격으로 인한 파괴로 끝났다.


전·의경 110개 중대, 1만 1천 명. 군 병력이 2천 명이 넘는다고 했고, 용역으로 동원된 이들만도 7백 명이 넘는다고 하는 이들 모두와 맞서서 싸워야 했던 이들은 겨우 1천 명이었다. 황새울 들판과 대추분교를 두고 접전을 벌였지만 거의 맨몸이었던 평택 지킴이들은 5월 4일의 전투에서 처절하게 당해야 했다.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대추분교에서 3백 명 가까운 이들의 저항이 끝나고, 대추분교 지붕 위의 신부님들이 내려온 뒤 투쟁의 거점이자 상징이었던 대추분교는 포클레인 삽날에 쉽게 무너져 내렸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도 전에 황새울 들녘은 헬기들이 공수한 철조망으로 차단되었다.


노무현 정부, 평택에서 가면을 벗다


그렇지만 5월 5일 1천 명 정도의 비무장 시위대는 황새울 들판의 철조망을 20여 군데 절단하고, 민간인 접근 금지 팻말을 달아놓고 국방부가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선포한 그곳을 행동으로 부정했다. 군인들은 처음에는 분명 당황한 모습으로 민간인과의 충돌을 피하는 소극적인 대응을 보이다가 곧 태도가 돌변하여 민간인 시위대를 땅에 엎어놓고, 마치 미군이 이라크 전쟁 포로를 묶듯이 포승줄로 손을 묶고 목에 걸고, 그 위에다가 곤봉과 몽둥이, 군홧발 세례를 퍼부었다. 그리고 화풀이를 하듯이 경찰은 그날 밤 주민 촛불집회를 마치고 귀가하는 시민들을 한밤중에 무조건 체포, 연행했다. 이유를 묻지 말라! 그들은 당당했다. 그리고 온 마을을 새벽 무렵까지 공포의 분위기로 몰아갔다.


그 다음 날부터 국방부장관을 비롯한 정부 각 부처들의 비난이 쏟아졌고, 때를 만난 듯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들은 군인을 공격한 시위대를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군에게 폭력적인 대응을 선동하고 시위대를 빨갱이로 매도했다. 주민과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평택범대위) 간의 분열을 획책했다. 반미단체들이 주민들을 선동하고 투쟁을 부추기고 있으며 주민대책위의 간부들은 수십억의 갑부들인데 생존권은 말도 안 된다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의 의미를 폄하했다. 경찰은 수시로 마을 외곽을 봉쇄하고, 마을 곳곳을 떼 지어 다니며 이동했고, 수배 중인 대추리 이장 김지태 씨를 찾는다고 영장도 없이 아무 집이나 들이닥쳤다. 군인들은 마을 주민 소유의 시설물들을 마구 파괴했고, 도두2리 주민들의 식수도 차단하는 짓을 저질렀다. 마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논농사로 한 평생을 살아온 주민들은 철조망으로 가로막힌 논을 바라보며 울어야 했다.


그 '전쟁'에서 현 정부가 걸핏하면 내놓던 '인권'이란 카드는 없었다. 오로지 피에 굶주린 전쟁광들의 광기가 있을 뿐이었다.


그곳에 '인권'은 그날도, 오늘도 없다


상상할 수 있는 인권침해는 거의 모두 일어났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을 보고 있자면 어떻게 그와 같은 아수라장에서 죽지들 않고 살아났는지 의아할 정도다.


보수단체와 언론들은 시위대가 '비무장'의 군인을 공격하는 장면만을 주로 강조하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안다. 국방장관이 비무장으로 투입한다던 그 군인들은 이미 곤봉을 지급받고 있었다. 황새울 들에서 시위대를 맞닥뜨린 군 병력들은 곤봉과 작업에 쓰는 몽둥이를 들고 민간인 시위대를 공격했다. 국방장관의 말이 거짓임을 증거라도 하겠다는 듯이, 군에 대항하면 용서가 없다는 듯이 그들은 시위대를 향해 달려들었고 제압했다. 그러고도 앞으로는 자위수단을 강구하겠다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해대는 것이 국방장관이다. 그 군인의 자위수단이란 게 총을 의미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절로 돋는다. 거기에 지만원이란 자는 군이 발포했어야 한다고 충동질하는 망언을 서슴없이 뱉어냈다.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한 것보다 민간인 시위대가 군과 맞섰던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이 전도된 의식 속에는 아직도 광주의 학살을 정당화하는 속내를 그들이 갖고 있음을,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군이 권력을 독식하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세력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제 나라 백성을 향해 평상시에도 폭력을 휘두르는 군대, 우리는 이 장면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경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헬멧을 비롯한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시위대는 거의 대부분 비무장이었다. 처음 경찰을 맞닥뜨린 시위대는 노동자들이었다. 시위현장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가 처음 만날 때 어쨌거나 밀고 밀리는 몸싸움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날은 그런 장면이 거의 없었다. 시위대를 만난 경찰들은 곧바로 곤봉과 방패로 공격하고 바로 그 후미의 경찰이 시위대의 측면을 무차별 공격하는 색다른 모습을 보였다. 그 자리에서 노동자들은 퍽퍽 나가 떨어졌다. 그리고 그날 있었던 경찰의 폭행은 주로 안면부에 집중되어 있어서 부상자의 60% 가량이 모두 안면부에 부상을 입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환각제를 복용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적개심에 불타서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인권단체들은 지난해 하반기 전용철·홍덕표 농민의 사망사건을 통해서 경찰의 폭력성을 확인했고, 그 시정을 요구했지만 경찰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의 총수가 사퇴한 것에 대한 적개심을 차곡차곡 쌓아놓았다가 한꺼번에 화풀이해대는 모습이었다.


한미 FTA와 한미군사동맹의 의미


그럼 왜 정부는 이렇게 국가폭력을 써가면서 평택미군기지 확장사업을 강행하려는 것일까? 거기에는 한미군사동맹의 변화라는 본질적인 측면이 있다.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은 정부가 애써서 부인하는 것과는 달리 미국의 군사전략의 변화와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다. 미국은 9·11 테러 이후 해외주둔 미군의 역할을 재조정하여 왔고, 그것은 언제 어디든 선제공격을 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의 재편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주한미군이 지금과 같이 대북 전쟁 억지력(이것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주한미군의 성격이지만 그 내용은 북한을 압박하고 언제든 공격할 수 있는 계획을 수립하고 훈련도 그에 맞게 하고 있다)으로 존재하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기지와 병력과 장비를 유연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한국 평택에 주둔하는 미군은 언제고 중국으로 출동할 수 있고, 중동의 이라크와 같이 미국이 요구하는 곳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은 주한미군의 주력인 육군 병력은 감축하고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공군과 해군력을 중심으로 주한미군을 편제하게 된다. '붙박이형' 주한미군에서 '기동타격대형' 주한미군으로의 성격변화, 이것이 평택 미군기지 확장 사업의 핵심적인 문제인 것이다.


이럴 때 평택에 주둔하는 미군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요청되는 아시아 지역의 전쟁에 개입하게 되고, 그로 인해서 저절로 한국은 전쟁의 한 당사국이 된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주한미군이 우선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상대가 중국이란 점이다. 중국의 패권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은 중국-대만 분쟁이 일어났을 경우 평택에서 발진하는 항공모함과 전투기가 중국 본토를 공격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럴 때 당연히 중국은 평택 미군기지를 폭격하게 되고, 이로 인해서 한반도의 평화는 한 순간에 날아갈 수밖에 없는 문제로 다가오게 된다. 이렇게 한반도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존에 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애써 감추고, 특히 용산미군기지와 미2사단을 이전하는 비용이 얼마나 들어가는지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으면서 국회에서 비준을 받았던 것이다. 2004년 미군기지 이전협정을 비준한 국회에서는 이 사안이 중대하므로 비준을 하더라도 추후에 청문회를 통해 이에 대한 확실한 검증을 하겠다고 약속을 해놓고는 2년째 이를 미루고 있다.


이 평택미군기지 확장 사업으로 표현되는 한미동맹의 재편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세계전략의 일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 때 지극히 쉽게 '무장화된 세계화'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미국이 FTA를 추진하는 것과 함께 한미군사동맹의 재편을 서두르는 것은 결코 다른 게 아니다. 여기서 굳이 논증하지 않겠지만 한미 FTA 저지투쟁과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투쟁을 별개로 생각한다면 이는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을 노무현은 쉼 없이 추구하고 있으며 그의 임기가 끝나기 전까지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할 과제로 한미 FTA를 들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법이나 노사관계 로드맵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한미 FTA를 추진하는 것과 한미동맹 재편을 서두르는 것은 모두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의 서로 다른 측면들일 뿐이다. 이런 사안들에 대해서 공권력으로 대표되는 국가는 그 폭력적 본질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평택투쟁에서 나타난 국가폭력은 전용철·홍덕표 농민을 죽이고, 하이스코 노동자들에게 개 패듯 뭇매를 안기고, 앞으로 의료, 교육, 문화 시장 등의 개방을 위해 그에 저항하는 민중세력들을 진압할 그 국가폭력이다. 앞으로 민주주의의 그럴싸한 허울조차도 필요 없다는 '신자유주의 경찰국가'의 구체적인 표현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택 투쟁은 단순히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한 투쟁이 아니다. 평택이 아닌 다른 곳으로 이전하면 될 것 아니냐고 한다면 이는 문제의 본질을 한참 잘못 짚은 것이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를 깨고 주한미군 기지 이전 협상을 새로 하는 것만이 대답이다. 미국조차도 주한미군을 감축하겠다고 하고, 한국과의 기지이전 협상이 기대보다 훨씬 많은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경찰과 군인에게 점령된 땅에 예고된 강제퇴거


5월 4일 이후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은 하루가 다르게 군사지역으로 변모하고 있다. 농지에서 벼와 보리가 자라고 있지만, 군인들은 그런 농작물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야간작업까지 하면서 군대가 주둔하는 지역으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한 겹 철조망이 두세 겹으로 쳐지고 철조망 앞에는 넓고 깊은 수로를 만들어 민간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경찰은 항시적으로 25개 중대 2천여 명을 주위에 배치하고, 마을주민들의 출입 때마저도 불법적인 불심검문을 하더니 급기야는 CCTV도 설치했다. 철저한 통제와 감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민통선 지역과 다를 바 없다.


지난 5월 14일 평택범대위가 주최하였던 범국민대회 때 경찰은 총 200개 중대를 동원하여 평택시에서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으로 들어오는 모든 길을 차단했다. 평택 남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와 다리까지 차단할 정도여서 충남 지역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평택에 발이 묶여야 했다. 시위대 5천여 명이 본정리 농협에 모여 집회를 하려 하는 순간 교회에 피신해 있던 대오를 갑자기 덮쳐서 다시 '묻지 마' 연행을 감행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계엄지역화하고 있는 임무를 맡는 것은 경찰이다. 경찰과 군인에 의해 점령된 땅이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인 셈이다.


국방부는 오는 6월 말까지 마을 주민들에게 이주를 통보해 놓고 있다. 이때까지 이주를 하지 않으면 법적인 절차를 걸쳐서 이르면 10월 말 안에, 늦으면 12월 말까지는 모두 강제퇴거 시키겠다는 로드맵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6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지질조사와 측량작업을 하겠다고 하며, 한편으로는 합의매수에 응해서 떠난 사람들이 살던 빈집을 철거하겠다는 말도 흘린다. 이래 놓고는 한편으로는 주민들과 대화를 하자고 하는 강온 양면책을 구사하고 있다. 국방부는 5월 4일 이후 대세가 굳어졌으며, 이 추세를 계속 몰아가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주민대책위원회를 분열시키는 주민 이간책도 계속 하고 있다. 본격적인 대화는 바로 이런 점을 노리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정부의 압박에 대추리와 도두리 주민들은 많이 동요하고 있다. 정부가 이렇게까지 나올 줄은 몰랐다는 주민들의 말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깔려 있다. 누가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지만 주민들은 한편으로는 대화를 하면서도 농사를 계속 짓겠다는 입장도 강하게 견지하고 있다. 그렇게 강력한 탄압 가운데서도 아직 마을을 떠나는 주민은 보이지 않는다.


평택범대위는 이런 상황에서 이 투쟁을 전국적이고 전 국민적인 투쟁으로 만들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있다. 오는 7월 9일로 예정되어 있는 4차 평화대행진 같은 대규모의 집회만이 아니라 정치공세와 여론작업도 조직적으로 진행하여 이 문제의 본질을 알려나가겠다는 것이다. 지금 자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는 촛불집회나 각계각층의 항의를 조직하여 대추리와 도두리 지역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군사시설보호구역 지정을 철회하는 광범위한 불복종운동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평택은 일순간에 현 정부와 그의 뒤에 있는 미국, 그리고 그들의 반민주와 반인권적인 본질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평택 투쟁은 전쟁기지를 만들려는 세력과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 간의 피할 수 없는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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