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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집회·시위, 폭력시위 근절 vs 자유의 확대

폭력시위 근절 vs 자유의 확대

지난 6월 7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참석자는 적지만 매우 의미 있는 토론회가 열렸다. ‘집회·시위 자유 확보를 위한 토론회’는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평화적 집회·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의 방침을 비판하기 위해 마련된 토론회였다.


지난해 11월 15일 농민대회에서 2명의 농민이 경찰폭력에 의해 사망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뒤에 12월말, 전 운동사회가 나서서 정부의 책임을 추궁하고, 국가인권위원회가 경찰의 책임을 제기하자 당시 허준영 경찰청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인권운동진영이나 시민사회에서는 경찰의 폭력진압에 대한 근절책을 정부에 촉구했고, 이에 대해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서 사과를 하고 재발방지책 마련을 약속했다. 그리고 꼬리표처럼 ‘평화시위문화’ 정착을 위한 대책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민관공동위원회, 피해자는 경찰?


올 1월 19일,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로 ‘평화로운 집회·시위 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하였다. 위원은 총 22명으로 각계를 대표한다는 민간위원 11명과 정부 장차관급 인사 11명 등 총 22명으로 구성되었고, 공동위원장은 국무총리와 함세웅 신부가 공동으로 맡는 것으로 되었다. 위원회의 위상으로 보면 장관급 인사가 위원장을 맡는 어떤 위원회보다도 그 위상은 매우 높다.


“최근 일부 불법 시위가 과격한 양상을 보이면서 평화적인 집회문화 정착을 위한 민관 공동노력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부응하기 위해 공동 기구를 구성했다.”고 취지를 밝혔고, 이어 3월 9일 열린 2차 회의에서는 소음규제 강화, 폭력시위 전과자 집회출입 금지, 경찰의 진압도구 개선, 언론을 통한 정부 입장 설명 및 홍보 강화, 사회적 협약 체결 등의 내용이 담긴 32개 항의 ‘집회시위 문화 개선을 위한 대책’이 발표되었다. 또 5월 17일의 3차 회의에서는 진압경찰의 폭력을 줄이는 방안으로 제기되었던 ‘전·의경 실명제’가 전의경의 인권을 침해한다며 이를 백지화하기로 했고, 현행 집시법의 소음 기준 80db을 70db로 강화해야 한다고 논의를 모았으며, 언론에는 “불법시위 참여 단체들에 대한 법인화 및 단체 등록 및 정부지원금 지급 불가 방안에 대한 검토”도 하였다고 하여 시민사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경찰의 폭력에 의해 농민이 사망했다는 처음의 문제는 사라지고, 오히려 불법 폭력시위가 문제가 되고, 그 폭력시위를 근절하는 것, 즉 전·의경들이 피해자라고 전제한 위에서 다시금 집회·시위를 어떻게 제한할까를 고민하는 것이 이 공동위원회가 하는 일이다. 그것도 민간의 유명한 인사들을 동원하여 평소 경찰의 숙원이었던 집회·시위 제한과 개입에 대한 경찰의 권한 강화를 목표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면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는 더욱 불가능한 현실이 된다.
사진제공 참세상



집시법에 불복종하라


6월 7일 토론회에서 발제에 나선 한상희(건국대 법대)교수는 “평화적 집회·시위”라는 말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했다. 명칭에서부터 집회·시위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반영한다는 것이다. “집회 또는 시위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떠한 손해나 불편은 행정상의 손실보상법제에서 말하는 ‘특별한 희생’으로 이해될 수도 있는 여지도 충분히 있다.”면서 “그러나 집시법은 이 점을 완전히 전복하여 전도된 발상을 드러내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리하여 “‘심각한’ 또는 ‘현저한’이라고 하는 불확정 개념을 앞세우면서 집회 또는 시위를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악 내지는 필요악으로 규정하고 이 담론구조를 바탕으로 집회 또는 시위에 대한 경찰규제의 가능성을 최대화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이 현행 집시법의 근본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이런 근본문제에 더해서 최근에는 민주주의의 의견 표현행위보다 경제중심의 논리가 우위를 점하고, 이에 따라 “집시법은 교통의 소통을 위하여 민주주의를 희생시키고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방법을 선택한다.”고 꼬집었다. 더욱 개악된 형태의 현행 집시법이 “규율하고자 하는 대상인 집회·시위 그 자체가 시민사회가 정치영역에 대하여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는 방법이며, 이 점에서 집시법의 오류에 대한 항거는 논리필연적으로 그 오류를 거부하는 방식”, 즉 시민불복종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권두섭 변호사(민주노총법률원)도 현행의 집시법의 규제 조항들이 “경찰 당국이 자의적으로 판단이 가능하도록 관할 경찰서장이 ~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며 이런 경찰의 자의적 판단이 가능하도록 한 것이 폭력시위를 조장하는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의 민관공동위원회가 마련 중인 대책들이 소음 기준을 강화하고, 채증을 강화하고, 이미 지금도 가능한 형사처벌과 민사손해배상을 강화하도록 하는 것은 집회·시위 자체를 근절하겠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에서 민관공동위원회를 담당하고 있는 정종문 과장은 “민관 공동위원회를 구성할 때 일부 단체들이 거부했다.”면서 “위원회에서 논의는 민간위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고, 경찰이 일방적으로 논의를 이끌어가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또 폭력시위를 근절하기 위한 사회협약안을 마련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미래지향적이고 선언적 의미를 담게 된다면서 민관공동위원회의 노력을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에 대해 경계했다.


민관공동위원회에 맞불 놓기


민관공동위원회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평택사태나 청주 하이닉스, 대구 건설노조, 수원 중부경찰서의 공무원 노조에 대한 탄압 등에서 보듯이 경찰의 폭력적이고 불법적인 집회 진압 관행은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과 애시당초 민관공동위원회의 구성 자체가 경찰의 입장만을 일방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므로 인권단체들은 이 위원회의 해체를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이 인권단체의 수준을 넘어 민중, 시민사회운동 진영이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집회·시위 자유 확보를 위한 연석회의’로 결집되고 있어서 민관공동위원회에 맞불을 놓기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다. 이렇다면 정부의 의도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생존권적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민중들은 집회·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의사를 표현할 길이 없고, 정부는 이를 경찰력으로 억압하려는 상황에서 집회·시위에 대한 정부와 인권운동진영간의 대결은 불꽃을 튀기는 대접전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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