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희망

“더 불행할 수 없어요” ‘순응’않고 ‘수능’ 거부

수능 시험 날, 18명 청소년들의 이유 있는 대학입시거부 선언

19살인 날토(활동 이름) 씨는 클래식의 콘트라 베이스 소리가 좋았다. 지난 해 이를 전공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음악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뒀다. 그러다 올해 초 음악반을 중점적으로 운영하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 다시 들어갔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는 없었다. 각 대학의 음대 입학 전형에 맞게 음악을 해야 했다. 음악이 입시에 맞춰 있던 것이다. 40~50만원을 다니는 입시학원도 그랬다. 지난 5월 다시 학교를 자퇴했다.

그리고 고민 끝에 ‘2012학년도 수학능력시험’ 전날인 9일 밤 대학 입시를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날토 씨는 “음악을 하면서도 밥을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학 가서도 레슨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 그런데 레슨을 하는데도 대학 이름이 필요하다. 난 대학이 아니라 마음껏 음악을 하면서도 밥벌이 걱정하지 않는 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날토 씨는 “음악을 해야 하는데 막막하긴 하다. 일단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몇 번 본 면접에서는 이미 떨어졌다. 그래도 집에서 베이스를 계속하고 있다”고 웃었다.

18명이 10대 청소년들이 10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선언한 뒤 함성을 지르고 했다. 최대현 기자

날토 씨는 10일 오전 11시15분 서울 청계광장에 있었다. 전국 각 시험장에서 65만여 명의 수험생이 수능시험 2교시 수리 영역을 치르는 시각이었다.

날토 씨를 포함해 18명의 10대 청소년들이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들은 수능 시험과 대학입시를 ‘거부’했다.

따이루 씨(본명 조만성)는 “어렸을 때 꿈을 물어보면 특정 대학을 가고 싶다고 대답을 했는데 18년 동안 살면서 평생 공부하는 기계로 허덕이다 인생을 끝내고 싶지 않았다. 학벌을 요구하는 사회에 펀치를 날려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날토 씨를 포함한 이들 청소년은 이날 발표한 대학입시거부선언문에서 “오늘 치르는 수능 시험은 대학에서 배울 준비가 됐는지를 알아보는 시험이 아니라 수십만 명을 점수로 등급으로 줄 세우기 이한 것이라는 걸 모두가 안다”면서 “이 경쟁에 미친 입시위주 교육과 불안정한 모두의 삶을 무시한 채 폭주하는 사회에 제동을 걸기 위해 우리는 대학입시라는 단단한 제도에 시비를 건다”고 입시를 거부한 배경을 밝혔다.

이어 이들은 “우리의 거부는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선택이 아니다. 지금의 입시가, 대학이 교육이, 그리고 사회가 잘못됐음을, 온몸으로 외치는 것이고 그대로 대학은 각 보라는 유예의 주문에 맞서, 지금 여기서 바꾸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거부의 의미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잘못된 쪽은 우리가 아니다.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라고 지적하며 “무한경쟁교육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교육을 원하다. 학력이, 학벌이, 차별의 이유가 되지 않으며 학교가 서열화 되지 않는 사회, 우리를 상품이 아닌 인간으로, 우리의 모습 그대로 보는 사회를 원한다. 모든 이들의 최소한의 생존, 사람다운 삶, 행복추구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원한다”고 요구했다.

학부모와 대학생은 이들을 지지했다. 송환웅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부회장은 “대학입시 폐해로 학벌사회가 정말 심각한 현실에서 대단한 일을 했다”고 했으며 서울 한 대학교에서 다니는 하유정 씨는 “2008년 한 대안학교에 봉사활동을 하다가 학생들에게 왜 대학교에 갔냐는 물음에 답을 할 수 없었다. 용기 있는 행동에 나도 힘이 난다”고 말했다.

18명의 청소년들은 자신들에게 따가운 시선을 보낼 사람들과 사회에게 이렇게 물었다.

한 청소년이 수능시험 2교시 수리 영역을 치르는 시각 서울 청계광장에 나와 입시를 거부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최대현 기자
▲어째서 모두가 자인이 원하는 배움이 아니라 시험을 위한 공부만을 해야 하고 주어지는 정답만을 외워야 하는지.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지 못하고 무한경쟁을 견뎌내야만 하는지.
▲대학은 왜 선택이 아닌 의무처럼 강요되고 다양한 삶의 길이 아닌 ‘명문대’에 가는 것만이 성공일 하는지.
왜 대학만이 독점적으로 ‘학력’, ‘자격’, ‘지식’을 판매하고 대학 밖에서는 다른 배움의 길을 찾기 어려운지.
정부와 사회는 왜 교육을 책임지지 않고 우리 개개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넘기는지.

한낱 인권교육센터 들 활동가는 “아직도 수능 시험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여전히 인생을 한 방에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는 사회, 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은 오는 12일 같은 장소에서 거리행동을 펼쳐는 등 앞으로 경쟁과 학벌을 강요하는 교육과 사회를 바꾸는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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