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 행동홈리스 뉴스

[52호-세계의 홈리스] 앉아 있어도 벌금, 누워 있어도 벌금, 벌금 못 내면 감옥!

미국의 「앉기-눕기 금지법」 소개

[세계의 홈리스]는 미국, 유럽 등 세계의 홈리스 소식을 한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시사점을 찾아보는 꼭지

오늘은 미국의 「앉기-눕기 금지법」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호에서 짧게 언급하고 지나가기도 했었는데요, 사실 「앉기-눕기 금지법」은 정식 법명이 아닙니다. 보행로나 공원과 같은 공공장소에서 앉거나 눕는 행위를 금지하는 여러 법령들을 통칭하여 「앉기-눕기 금지법」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미국 전역에 적용되는 법령(연방법)이 아니라 시정부 재량에 따라 조례의 형태로 제정・운용되기 때문에 구체적인 법령의 이름과 세부 내용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렇지만 공통적으로 ▲공공장소에 앉아 있거나 누워 있는 행위를 범죄로 간주하며, ▲위반자에게 특정한 법적 제재(벌금 부과, 소환장 발부, 구류 등)를 가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짐작할 수 있듯, 「앉기-눕기 금지법」은 거리에서 살아가는 홈리스를 표적으로 하는 법입니다. 이 법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지하는 사람들 또한 이 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령이 갖는 의미와 법 집행이 초래할 결과를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를 뿐이지요. 이 글에서는 「앉기-눕기 금지법」의 형성 배경과 현황, 법령을 둘러싼 쟁점들을 소개한 후, 미국의 사례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에 관해 논의해보고자 합니다.


「앉기-눕기 금지법」의 기원과 팽창

미국에서 「앉기-눕기 금지법」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90년대 초반입니다. 그러니까 약 25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지요. 미국의 정책학 연구자들은 「앉기-눕기 금지법」이 등장하게 된 배경으로 1980년대 내내 이어진 ‘사회복지(공공부조) 프로그램의 예산 삭감 및 폐지’를 들고 있습니다. 사회복지 프로그램이 끊기면서 홈리스상태에 처하게 된 인구가 급증하자, 시공무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앉기-눕기 금지법」 같은 홈리스에게 제재를 가하는 새로운 법령들을 고안해 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다만,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도 유사한 법령이 등장한 걸 보면, 이 같은 경향이 미국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닌 듯합니다.

여하간 미국의 「앉기-눕기 금지법」의 기원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도시가 바로 시애틀입니다. 매우 이른 시기에 「앉기-눕기 금지법」을 제정한 몇 안 되는 도시 가운데 하나인데다, 타 도시들의 법령 제정에 일종의 롤모델이 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1993년, 시애틀 시는 상업지구 인근의 보행로에서 특정 시간에 눕거나 앉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그러자 전통적으로 홈리스 인구가 많은 지역이었던 서부 해안의 도시들에서 시애틀의 법령을 모델로 삼아 「앉기-눕기 금지법」을 제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앉기-눕기 금지법」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부터였습니다. 이 법령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과 함께 위헌 소송이 제기되면서 다른 도시들의 제정 움직임 역시 주춤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1996년, 미국 법원이 시애틀의 「앉기-눕기 금지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함에 따라, 이 법령을 제정하는 도시들이 점차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90년대 초반에는 불과 십수 개의 도시에서만 시행되던 것이, 현재는 전체 주요 도시들의 절반가량이 「앉기-눕기 금지법」을 제정・운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앉기-눕기 금지법」을 시행하는 도시들이 더욱 급증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NLCHP(미국 홈리스상태 및 빈곤 관련 법률센터)라는 비영리 민간단체가 미국의 주요도시 188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6년에는 58곳(전체의 31%)의 도시에서 「앉기-눕기 금지법」이 시행되었지만, 2016년 무렵에는 이 법령을 시행하는 도시들이 88곳(전체의 47%)으로 크게 늘었습니다. 10년 사이에 무려 52%나 증가한 것입니다.

단지 도시들의 수만 늘어난 것이 아닙니다. 양적 팽창과 더불어 질적인 변화 역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법률 제・개정을 통해 법령이 발효되는 대상 지역의 범위가 확장되거나 또는 제재 대상이 더욱 포괄적으로 변하는 등의 방식으로 말입니다. 가령, 지난 호에서 소개해드린 오스틴시의 경우, 지난 2011년 법 개정을 통해 ‘장애로 인해 눕거나 앉을 수밖에 없는 사람’까지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하면서 많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홈리스를 돕기 위해 홈리스를 처벌한다?

「앉기-눕기 금지법」을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이 법령이 홈리스를 표적으로 한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고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옹호자들의 핵심 주장은 다음의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 법령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이 홈리스를 돕기 위한(!)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두 가지 논리는 한국에서도 그리 낯선 것은 아닌데요, 우선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주장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 주장은 홈리스가 상가 주변에 있음으로 인해 상업 활동에 지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문제는 실제로 홈리스의 존재가 상업 활동에 피해를 입히는 진짜 원인인지 아닌지를 전연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에 미국의 한 대학 연구진이 「앉기-눕기 금지법」을 시행중인 캘리포니아 지역의 도시들을 대상으로 검증작업을 진행했는데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법 시행 전후로 나타난 경제 지표들을 참조했을 때, 앉기-눕기 금지법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한다거나 홈리스가 소매상들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집행에 들어가는 제반 비용으로 인해 시정부의 재정 부담이 가중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지자들의 입장에서는 “일부 지역만 조사해놓고는 자신들의 주장이 근거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 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반론을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입니다. 애초에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법 제정을 주장했던 게 바로 그네들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검증을 통해 밝혀내야 할 내용을 오히려 자신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 오류를 범한 셈이지요.

두 번째, 「앉기-눕기 금지법」이 오히려 홈리스를 돕는 것이라는 주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주장의 주된 논거는, 홈리스가 공공장소에 앉거나 눕지 못하게 되면 필요한 서비스나 일자리를 찾아 능동적으로 활동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공공장소에 있게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우선 홈리스가 접근 가능한 복지서비스와 일자리, 적절한 주거가 충분히 마련되어 있어야 합니다. 즉, 언제 폐지되거나 예산이 삭감될지 모르는 불충분한 복지 프로그램, 적절한 주거는커녕 응급쉼터조차 부족한 열악한 주거지원체계, 불안정한 경제 상황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 등 현재 산적해 있는 무수한 문제들이 반드시 ‘선결’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만약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앉기-눕기 금지법」이 시행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이 법은 홈리스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더욱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앉기-눕기 금지법의 실상은 ‘홈리스 처벌하기 법’

「앉기-눕기 금지법」에 반대하는 미국의 활동가들은 이 법령이 홈리스로 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게 되는 상황들을 불법으로 간주하여 처벌하려는 악법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주장 역시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앉기-눕기 금지법」이 임의적이며 차별적인 성격의 법집행을 조장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홈리스를 표적 삼는 거의 모든 법령이 그러하듯, 제재의 대상(행위)을 명확히 정의하기가 어려워 집행자(경찰관)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보다 본질적인 문제로, 「앉기-눕기 금지법」은 홈리스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삶을 더욱 악화시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지난 호에서도 이야기한 적이 있으니, 위의 그림으로 설명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미국의 사례가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것

그렇다면, (경제적) 효과성도 담보되지 않는데다 홈리스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뿐인 「앉기-눕기 금지법」이 미국에서 이처럼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좀 더 분석이 필요하지만, 직접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로 도시들 간의 ‘핑퐁게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새 유행하는 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나 할까요? 가령 이런 것입니다. 여기에 서로 이웃하고 있는 두 도시가 있습니다. 그중 한 도시에서 「앉기-눕기 금지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럼 그 옆의 도시는 자신들의 구역으로 홈리스가 몰려오지 않을까 걱정을 할 것입니다. 어떻게 반응할까요? “아, 홈리스상태에 처한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지원대책을 마련해야겠다”라고 할까요? 그러면 좋겠지만, 본래 자신들의 책임이 아닌 사람들을 기꺼이 떠맡으려 하는 곳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보다는 「앉기-눕기 금지법」을 제정한 이웃 도시의 처사에 불만을 품으면서 한편으로는 자기네 지역에 「앉기-눕기 금지법」을 시급히 도입하려고 애쓸 것입니다. 물론 아직까지는 ‘가설’ 수준에 불과한 이야기지만, 실제로 미국에서 「앉기-눕기 금지법」을 시행하는 도시들의 분포나 법령의 전파 과정(제정 순서)을 살펴보면 이것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최근 서울시가 「서울로 7017 이용 조례」를 제정하면서 ‘앉거나 눕는 행위’를 제재하려고 했던 것이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습니다. 비록 ‘서울로’라는 특정 장소에 한정된 조례이긴 하지만, 일단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인근 지역에 유사한 조례들이 계속 제정될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서울시의 조례를 ‘모델’로 삼아서 말입니다. 더군다나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처음에는 매우 제한적이었던 내용의 조례가 나중에 어떤 식으로 ‘변신’하게 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개장 이후 서울시가 ‘노숙인 대책’으로 내놓은 임시주거지원 확대 역시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일입니다. 적어도 법적으로 홈리스에 대한 주거지원을 정부의 책임으로 강제하지 않는 한에서는 말입니다. 비록 조례의 최종안에서 ‘앉거나 눕는 행위’에 관한 조항이 삭제되긴 했지만, 앞으로도 이러한 움직임을 계속 주시하며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