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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빈곤프리즘4호] ‘시간 선택제’ 일자리 - 낡은 패러다임, 새로운 수사학

1. 박근혜 정부의 고용정책 - 시간제 일자리 확산을 통한 고용률 70% 달성

6월 초 정부는 『고용률 70% 로드맵』(2013. 6. 4)을 발표. 박근혜 대통령 역시 고용률 70% 달성을 “정부의 최우선 목표”라고 거듭 강조해 왔음. 『로드맵』은 앞으로 5년 동안 고용률을 70%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음. 특히 시간제 일자리의 창출과 확산을 핵심적인 정책과제로 상정하고 있음. 고용률 70% 달성을 위해서 2017년까지 취업자 수가 약 238만 명이 증가해야 하는데, 이 중 40%가량을 시간제 일자리로 창출하겠다고 밝힘. 2012년 기준 149만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2017년까지 242만개로 늘리겠다는 계획임.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그런 (시간제) 일자리가 굉장히 많고, 그 일자리들도 좋은 일자리들이다. 일하는 사람이 자기 필요에 의해서 4-5시간 동안 역량을 발휘해서 일하고, 대신 차별이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데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5월 2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

여기서 말하는 시간제 일자리란 하루 4-5시간 정도 일하지만, 시간당 임금, 복지 혜택, 정년 등에서 정규직과 같은 수준의 대우를 보장해 주는 일자리, 다시 말해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고 주장. 이 같은 일자리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경우 ‘상용형’ 시간제 근로자 또는 ‘시간제 정규직’이라 불림. 최근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말 한마디 때문에 ‘시간 선택제’ 일자리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음.

"예전에는 시간제 일자리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은 쪽으로 생각됐는데 이번에 정부가 추진하는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라는 것은 자신이 하루 종일이 아니더라도 몇 시간 일할 수 있도록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시간 선택제 일자리'로 바꾸면 어떻겠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 박근혜 대통령(8월 16일, 인천시 업무보고)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의 창출과 확산을 위해 인건비와 사회보험료를 지원하고, 근무체계 개편을 위한 컨설팅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함. 정부가 9월 말에 발표한 『2014년 예산안』에 따르면, 300인 미만 중소기업에 3만 7천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신규 창출하겠다는 목표로, 사업주의 국민연금· 고용보험 보험료 부담분을 2년 간 전액 지원하고, 월 80만원까지 인건비 지원을 약속함. 이를 위해 각각 101억 원(사회보험료 지원), 106억 원(인건비 지원) 정도의 예산을 책정하고 있음.

2. 배경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률 70%를 달성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한국 노동시장의 낮은 고용률, 낮은 여성 취업률(특히 30대 이후), 낮은 시간제 근로자 비중, 높은 연간 근로시간 등을 근거로 두고 있음.
선진국에 비해 낮은 고용률: 2012년 64.2%. 2000년대 이후 줄곧 60% 중반에서 정체(첫번째 그림). 대부분의 선진국은 70% 이상의 고용률을 보이고 있음(두번째 그림).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긴 근로시간: 2011년 기준 취업자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90시간으로 멕시코 다음으로 길게 일하고 있음. OECD 회원국 평균보다(1765시간) 325시간, 8.1주 더 길게 일하는 나라임.
청년 고용률의 하락: 2013년 8월 기준 청년 고용률은 39.9%로 매우 낮고, 최근 몇 년 동안에도 계속 하락하고 있음.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음(53.5%). 특히, 여성의 고용률의 특징은 30대 이후 남성 고용률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다는 것임(네번째 오른쪽 그림). 30대 이후 여성의 고용률의 정체 또는 하락은 출산·육아 부담·사회적 편견 등으로 경력단절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음.


부족한 시간제 일자리: 시간제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 중 13.5%에 그쳐 있음. 고용률 70% 이상의 선진국들에 비해 절반 수준(네번째 그림).
낮은 고용률, 낮은 시간제 근로자 비중, 낮은 여성 취업률이라는 배경에서 정부는 지금 보다 더 많은 시간제 일자리가 생겨나고, 이 같은 일자리에 육아 부담이나 경력단절로 취업 활동에 참여하고 있지 못하거나 포기한 여성들이 취업하게 되면 고용률 70% 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함. 시간제 일자리의 창출과 확대 → 여성의 일·가정 양립 가능 → 여성의 시간제 취업 활동 증가 → 고용률 70% 달성. 즉, 고용률 70% 실현을 위한 핵심적인 경로를 시간제 일자리의 확산을 통한 여성 취업률의 증가로 보고 있음.

“국민의 수요와 맞아야 하고, (전일제와) 차별이 없어야 하며, 사회보험 최저임금 등 기본적인 근로조건이 보장되는 일자리....(중략) 여성들의 일 가정 양립뿐 아니라 재취업이 힘든 베이비붐 세대들의 인적자원 재활용을 위해서도 시간제 일자리 확대가 중요하다.” - 방하남 노동부장관(5월 29일 기자 간담회)

3. 진행 상황

『로드맵』 시행을 위해 고용노동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주요 부처 대부분이 적극 참여하고 있음. 8월 말부터 기획재정부 주재로 『로드맵』 추진 점검 회의 진행. 정부는 9월 또는 10월 중에 ‘시간제 근로 보호 및 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할 예정.
정부는 내년부터 경력직 공무원 채용의 20% 정도를 시간제(하루 5시간)로 채용(7급 이하)하겠다고 발표. 시간제 공무원에게는 동일 업무일 경우 동일한 시간당 임금을 지급하고, 승진의 기회 역시 차별 없이 주어지고, 4대 보험과 교육 및 훈련 혜택도 전일제 공무원과 마찬가지로 제공할 방침이라고 발표함. 또한, 국·공립학교에도 시간제 교사를 채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로 함.
2013년에만 현재 『반듯한 시간제일자리창출 지원 사업』을 통해 500개 사업장에 3,708명에 해당하는 시간제 일자리(주당 15-30시간) 창출 신규 지원. 최근 지원 결정에는 CJ제일제당(주), IBK 기업은행 등 269개 기업(2,118명)이 포함되어 있음.

4. 평가와 비판

누구나 다 아는 것처럼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대부분의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음. 전체 근로자의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며, 이 때문에 고용불안이 심각한 수준임. 비정규직 중 대부분이 파트타임(part-time) 근로자인 선진국에 비해 한국에서는 계약직이나 임시직 같은 기간제 근로와 파견·용역·호출근로 등의 간접고용이 광범위하게 존재함. 이외에도 사내하청이나 특수고용과 같은 불안정 노동이 계속 증가하고 있음. 기업은 원하는 경우 마음껏 정규직, 직접고용을 회피할 수 있음. 게다가 파트타임 역시 1997년 IMF 위기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음. 특히,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그 비중이 치솟아 2002년 81만 명에서 2012년 183만 명으로 급증했음. 이 같은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은 가뜩이나 비정규직이 많은 상태에서 비정규직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 많이 늘리겠다는 것임. 정부가 기존의 시간제와는 다른 ‘양질의’ 시간제라고 아무리 강조해도 이렇게 제공된 일자리는 또 다른 형태의 비정규직일 뿐임. 이는 노동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국 고용의 불안정화와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매우 높음.
새로 도입될 시간제 일자리 역시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반듯한’ 일자리가 아니라 ‘빠듯한’ 일자리로 변질될 우려가 있음. 정부가 시간제 근로자를 새로 고용한 기업에게 지원하는 인건비 한도액은 지난 이명박 정부에서부터 시행되고 있는 『반듯한 시간제일자리 창출지원사업』에서는 60만 원, 박근혜 정부의 『2014년 예산안』에 따르면 80만 원 정도임. 이 같은 지원액을 기초로 정부가 임금의 50% 정도를 지원해 준다고 볼 때, 실제 지급되는 임금은 최저임금 기준 월평균 임금(시간당 4,860원, 주 40시간 기준 약 102만원)보다 약간 높은 수준일 가능성이 높음. 이는 특히 외벌이로 가족을 부양해야만 하는 경우 턱없이 부족한 임금수준임.
여건이 허락하는 일부 중산층 여성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시간제 일자리는 때에 따라 다소간 매력적으로 비칠 수 있고, 부분적으로 혜택도 볼 수 있음. 그러나 이 같은 일자리 정책이 한국사회의 실업 및 고용문제 전반에 걸친 해결책일 수는 절대 없음.
여성의 일·가정 양립을 위해 시간제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는 정부 정책은 시간제 일자리는 여성의 몫이라는 사고를 바탕에 두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노동시장에서의 여성 차별을 강화할 수 있음.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률 제고를 위해 파트타임을 확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출산·양육·가사 때문에 일을 포기하거나 차별을 받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 법적 조치, 사회문화적 여건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되어야만 함.
박근혜 정부가 말하는 시간제 일자리 확대 정책은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 2011년부터 ‘반듯한 시간제일자리’라는 이름의 사업으로 진행되어 왔고, 전체적으로는 지난 10여 년간 ‘유연안정성(flexicurity)’이라는 고용정책 패러다임 하에서 갖가지 정책으로 추진된 바 있음. 그러나 유연안정성은 ‘안정성의 확보’보다는 ‘유연성의 확대’로만 귀결되었음. 실제로 그동안 고용률은 높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노동시장의 유연화 때문에 불안정한 비정규직 일자리만 늘어났음. 이런 의미에서 유연안정성의 개념이나
시간제 일자리를 확대하겠다는 정부 정책은 한국에서 이제 폐기되어야 함.



1) 고용률이란 15세 이상 65세 미만의 생산가능인구 중에서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 취업인구비율(the employment to population rate)이라고도 함.
2) 새사연의 『한국사회 분노의 숫자 시즌2 (13) - OECD 평균보다 325시간 더 일하는 대한민국 노동자』(2013. 8. 6.)
3) 고용노동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2011년 기준 23.8%. 이때 비정규직은 기간제근로자(기간의 정함이 있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만을 포함, 비정규·불안정 노동자 중 일부만을 포함. 이 경우에도 한국의 비정규직 비중은 OECD 국가 중 가장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 절대 규모 역시 스페인 다음으로 두 번째임.

덧붙이는 말

반빈곤프리즘(2013.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