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가산제’를 둘러싼 사이버 논쟁을 보며…

폭력이 아닌, 진정한 논쟁을 바란다.

최인선/ 한국여성민우회 신규여성모임 ‘희망선언’ 활동가한마디로 말하면, ‘문제

는 없고 폭력만 난무하다.’

TV나 신문에서의 그것은 비길 것이 못된다. 군복무 가산점이 위헌이라는 판결

이 난 직후부터 위헌판결이 뒤집어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사이버 공간에서

의 논쟁은 이제까지 보아왔던 어떠한 논쟁보다도 뜨겁다(?). 그러나 그 뜨거운

논쟁이 그리 달갑지 않은 이유는 뭘까.

이미 사이버 공간은 논쟁을 위한 민주적인 공간이 아니라 잘못된 전선이 형성되

어 있는, 그 잘못된 적을 향해 공격하는 전쟁터와도 같았다.

나같이 컴퓨터와 친하지 않은 편에 속하는 넷맹조차도 피부로 절절하게 느꼈다

면 결코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군가산제 위헌 판결이 번복되기 전 사이버 폭력(논쟁이 아닌 일방적인 폭력)의

양상은 여성과 남성을 이분화시켜 전선을 형성하고 남성이 여성을 비방하는 내용

이 대부분이었다. 남성의 자존심과 우월성에 도전한 하찮은 아줌마들로 여성을

매도하며, 특히나 모 여대와 특정 여성단체의 인터넷 홈페이지는 차마 입에 담

지 못할 갖은 욕설과 협박으로 초토화되었고 해킹으로 포르노 사이트와 링크되기

도 했다가 급기야는 홈페이지 게시판의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고야 말았

다. 뿐만 아니라 군복무 가산점 위헌판결을 담당했던 여성 변호사에 대한 욕설

과 테러위협 또한 극한까지 치달았다.

이들은 군가산제도를 철폐하라는 외침을 마치 군대에 가지 않는 여성들이 고생

을 안 해봐서 배부른 소리를 해대고 있는 것 마냥 비아냥거리고, 집안에만 쳐

박혀서 세상물정 모르는 아줌마들이 하는 헛소리라고 비방한다. 또 어떤 이는 헌

법재판소의 군가산제 위헌판결은 국가가 남성의 지능이 여성의 지능보다 뛰어남

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고 빗대기도 했다.

남자들이 2년 동안 군대에 가 있을 동안 머리 터져라 공부해도 공무원 시험에 떨

어지는 대한민국의 골빈 여성들을 위로해주는 것이라고 말이다. 또 어떤 이는

남자들이 군대에 끌려가는 동안 여성들도 같이 가서 똑같이 고생을 시켜야 한

다고도 말하고 있다. 여성단체 및 자칭 페미니스트라고 하는 것들은 군대가서

하루 12시간씩 빨래, 설거지를 해봐야 정신을 차린다고… 이보다 더하게 심지어

는 상식을 넘어선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공무원 시험 보려는 여자치고는 예쁜

여자가 없다느니, 일반기업처럼 공무원도 미모보고 뽑아야 한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버젓이 있는가 하면, 여성문제에 관심을 표하며 여성단체나 페

미니스트들은 강간이나 성폭력의 예방에나 신경 쓰라는 편협한 충고도 있다.

하지만 어디에도 논쟁다운 논쟁은 없다. 여성 또는 군가산제 위헌판결에 동조

하는 입장을 가진 자는 반대하는 자의 근처에 접근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분노

와 공포를 느끼고,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이 진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찾기란 매우 어렵다. 논쟁 아닌 비방의 내용도 군가산제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

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겉표면만 핥는 지극히 감정적이고 즉각

적인 반응이다. 군가산제의 문제는 남성과 여성의 대립구도 만으로는 그 문제의

본질을 드러낼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어딜가도 여성과 남성은 적이다.

남성에게 의무화된 군제도 자체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는 내용이나 군가산제가

인간의 평등권을 어떻게 침해하고, 제대군인에 대한 보상은 필요하며, 필요하다

면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지 않는다. 물론 이

렇게 말한다면 진지한 고민과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누가 될 수도

있으나 사이버 공간에서의 논쟁양상은 위와 같은 폭력적인 비난과 비방이 지배

적인 것이 사실이다.

또한 중요한 피해자인 장애인 및 군미필자 남성들은 논쟁에 참여하기조차 힘들

었다. 이미 논쟁에서의 전선은 남성 대 여성, 혹은 여성 대 정부였기 때문에 장애

인들은 심각한 차별을 받는 충격층이면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성별 비방에 묻혀

상대적으로 들리지 않았고, 군미필자 남성들은 남성으로서 군복무를 하지 못한

것을 약점으로 어디서도 의견을 내세울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위헌판결이 얼마가지 않아 번복된 사실만 보더라도 사이버 공간은 무시

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이런 논쟁은 무시할 수가 없다.

많은 제대군인들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제대군인을 지원하는 법안을 위헌이라

고 판결한 데 대해 거세게 항의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집권여당 국민회의를

공격하자, 정부는 총선을 얼마 앞둔 시기에 위험부담을 느껴 곧 판결을 번복하

고, 거기에 더해 군 미필자나 여성의 경우 사회복지시설 봉사활동 경력이 인정

되면 취업 시 가산점을 준다는 쉰내나는 떡고물을 함께 뿌리는 치사한 만행을

서슴없이 행하는 것도 사이버 공간의 영향력을 무시 못하는 처사였을 것이다. 이

런 쉰내 나는 떡고물도 사회봉사가 불가능한 장애인들은 그나마 얻어먹기 쉽지

않다. 게다가 군가산점을 공무원 시험에서 공기업, 사기업의 직원채용 과정으로

확대한다는 이런 기상천외한 경우를 만들기도 한다. 군가산제 위헌판결이 번복된

후 각종 게시판과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글들 또한 그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것 봐라, 군대도 안 갔다 온 여자들이 잘난 척하고 떠들더니 꼴 좋다. 라는 식이

다.

이토록 이미 대중화되고 보이지 않는 거대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사이버 공간은

문제를 드러내고 해소하는 곳이자, 동시에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왜곡시키는

곳이기도 한 두 얼굴을 가진 생물체와도 같다.

사이버 공간이 의사소통의 새로운 공간으로 급부상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에도,

또 21세기가 도래한 지금에도 여전히 사이버 공간에는 현실공간과 마찬가지로

다수의 소수에 대한, 지배집단의 피지배집단에 대한 소외와 폭력이 존재한다.

다수인 군필자 집단의 군미필자 집단에 대한, 지배층인 정권과 남성 집단의 여

성, 장애인에 대한 폭력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반면 사이버 공간안에서 권리를 주장하고 의사를 표명하는 일도 나름대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한 쪽에선 군가산제 위헌 판결에 따른 비난과 욕설이

난무하고 있지만, 또 한 쪽에선 군가산제는 차별을 낳는 불평등한 제도라는 성

명과 서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제대군인에게 당연히 가산점을 주어야 한다는 집

단이 형성되고 홈페이지가 개설되는 반면에, 국민회의, 국방부, 행자부에 항의메

일을 보내는 집단들도 형성된다. 상대적으로 비교하면 많지는 않아도 지지하는

세력들이 형성되고 문제의 본질을 알려내는 작업도 더욱 확대될 것이다.

바라건데, 사이버 공간의 논쟁이 더 이상 서로를 조롱하고 공격하는 비난과 비

방이 아니라 군복무 가산점제도와 그와 연동된 여러 가지 문제, 즉 군제도에

관한 문제, 제대군인에 관한 지원, 여성과 장애인 등 군미필자와 제대군인이 차

등화되지 않는 평등한 취업의 기회 보장에 대한 방안, 기회주의적이고 무능한

정부의 정책능력에 대한 비판 등의 문제들로 확장되어 좀 더 진중하고 발전적

인 논쟁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이버 공간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

원들의 반성적인 태도와 타를 존중할 수 있는 자세가 선차적으로 필요할 것이

며, 군가산제 문제의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각 부위(집단)의 의견개진

이 좀 더 활발히 진행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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