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지촌 매춘여성의 현실과 대안

김주영 / 새움터 사무국장

1. 기지촌의 현실 – 동두천 지역을 중심으로

‘기지촌’의 사전적 의미는, ‘군부대 인근에 형성된 촌락’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 존재하고 있는 기지촌의 모습을 바탕으로 다시 ‘기지촌’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규정한다면, 아마 ‘경제·문화적으로 미군기지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으며, 미군을 상대로 하는 매춘과 상업을 기반으로 발달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십개의 클럽과 수백명의 매춘여성, 그리고 수천명의 미군들이 뒤섞여있는 동두천시 보산동은 이런 ‘기지촌’의 실제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곳에는 주한미군 중에서 최전방에 위치하고 있는 미 보병 2사단의 사령부인, 캠프 케이시(Camp Casey)가 주둔하고 있습니다. 미군과 카튜사를 합쳐, 약 1만 7천명의 병력 – 주한미군 전체의 약 40% – 으로 구성되어 있는 미 2사단은, 파주, 동두천, 의정부를 중심으로 20여개의 캠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미군기지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며 광범위합니다. 농업 등 생산관련 산업이 몰락하고 미군기지에서 흘러나오는 외화에 의존하는 소비중심적 산업으로 경제구조가 재편되며, 매춘을 기반으로 하는 퇴폐적인 서비스업이 기형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또한, 이질적이고 저급한 미국의 군사문화가 확산되어 기존의 지역문화와 충돌하게 됩니다. 이러한 문화적인 충돌은 기지촌이 형성된 초기에는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지촌의 경제적인 필요성으로 인해 무시되어 버립니다. 또한, 이러한 경제적인 이득과 더불어 주한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이 필요한 정부에서는, 기지촌을 관광특구라는 형태로 합법화시킴으로써 외부로부터 고립시키고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더욱 그 구조를 더욱 강화시키게 됩니다.

퇴폐적인 미국문화의 범람, 지역 아동들에게 미치는 비교육적 영향, 미군에 의해 저질러지는 범죄,매춘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 등 기지촌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상당히 많지만,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매춘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기지촌 지역의 매춘여성들은, 매춘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불평등한 한미관계가 겹쳐짐으로써 더욱 심각한 착취와 어려움을 겪게됩니다. 1997년 새움터의 실태조사 결과, 동두천의 기지촌 지역의 성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는 약 600∼800명 정도이며, 최근에 급증하고 있는 필리핀 매춘여성까지 포함하면 1000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됩니다.

2. 기지촌 매춘여성의 문제

앞서 언급한 것처럼, 기지촌 지역의 매춘여성이 겪게되는 문제는 복합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즉, 모든 것을 상품화시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을 탈인격화시키고 성적 대상물로 폄하시키는 ‘매춘’의 문제점이, 종속적인 한미관계와 봉건적인 가부장제를 만나면서 더욱 강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수의 기지촌 매춘여성들은 어린 나이에 강간 등의 성폭행을 당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은 여성들에게 사회적으로 강요되어온 순결 이데올로기를 통해서 스스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피해여성 개인의 잘못으로 치환됩니다. 이러한 죄책감과 사회적으로 강요된 순결의식,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과 학교, 그리고 저학력의 여성이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받으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상황이 겹치면서, 이 여성들은 가출과 매춘을 택하게 됩니다. 일단 이렇게 매춘을 시작한 여성들에게는 다른 어떠한 기회도 제공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매우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매춘을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성들은 자신의 상처와 죄의식, 사회적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매춘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매춘을 계속하게 되고 이 여성들의 사회 재적응은 더욱 어려워지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밟아 온 여성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것이 기지촌입니다. 봉건적인 잔재가 여전히 힘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매춘여성은 다른 직장을 선택할 수도, 가정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이 여성들이 매춘이라는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미군과 결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실제로 기지촌에서 미군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 꿈을 이루는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미국인 중에서도 가장 하위계급에 속하는 주한미군들에게는 기지촌의 여성들은 단지 성적 노리개일 뿐입니다. 해외로 파견되는 미군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곳이 바로 한국이라고 하는데, 그 이유는 미국인을 대하는 태도가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편이며, 싼 가격으로 술과 여성을 마음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외국인 여성의 기지촌 성산업 유입

최근 몇 년사이 기지촌에서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필리핀, 러시아 등에서 유입되는 외국인 여성의 문제입니다. 한국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지불할 수 있으며 미군과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자국내의 심각한 경제난 때문에 최근 몇 년사이 많은 필리핀 여성들이 기지촌을 중심으로 한국내의 성산업으로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프로모션’이라고 불리는 인력송출 업체와 자국내의 브로커를 통해서, 연예계통에 취업이 가능한 E-6비자(일명 엔터테이너 비자)를 가지고 입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성들의 대부분은 미군전용클럽에서 스트립 댄서로 일을 하거나 매춘을 하게 됩니다. 계약상 이 여성들이 받는 월급은 600달러(약65만원)이지만, 프로모션과 브로커에게 지불하는 돈을 제외하면 실제로는 한달에 250∼300불(약30만원) 가량을 받고 있습니다. 필리핀에서 브로커는 이 여성들에게 한국에서 웨이츄레스나 서빙을 하는 정도의 일을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한국에 와서는 여러 가지 까다로운 계약조건과 여권 압수, 벌금(계약위반시 2,000달러) 등을 통해 스트립쇼와 매춘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쥬스 할당제’가 있어서 매일 약 10잔 가량의 쥬스(색소를 섞은 혼합주)를 팔아야 합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에는 그날 벌어들인 그 여성의 몫(쥬스값의 약 50%) 전체를 받지 못하게 됩니다. 이러한 할당제는 여성들이 억지로 춤을 추고 미군을 대상으로 매춘을 하게되는 요인이 됩니다. 이 여성들은 공연을 목적으로 하는 연예인 비자로 입국하는 것이기 때문에, 술을 팔거나 손님의 옆에 앉는 것 등은 모두 불법입니다. 그러나 출입국관리소에서 가끔 단속을 나오게 되는 경우에는, 클럽의 업주들이 미리 그 사실을 알고 여성들에게 주의를 시킨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 유입되는 여성들은 상당수가 관광 비자나 비즈니스 비자를 이용해서 입국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취업이 불법이라서 단속이 나오면 계속 도망다녀야 되고, 3개월마다 다른 나라에 가서 다시 비자를 발급받아 재입국해야 합니다. 냉전시대 미국의 적성국이었던 러시아의 여성들이, 지금은 미국의 군인을 위해 일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여성들은 자국에서 일자리를 구한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상황이고, 일자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극심한 저임금(월 100달러 내외)에 시달리기 때문에 해외 취업을 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서 국가간 노동력 이동이 점차 여성화되어가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확대되는 성산업과 맞물려서 이러한 현상이 점점 확산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들을 고려할 때, 필리핀 여성이든 한국여성이든 기지촌으로 유입되어 매춘을 하게되는 것을 개인적인 이유만으로 치환시킬 수는 없습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고도로 산업화된 성산업, 불평등한 한미관계, 미국과 미국인에 대한 그릇된 환상, 국가간의 빈부격차, 저학력 여성들이 겪는 취업기회의 절대적 부족(이 문제는 IMF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필리핀과 같은 제3세계 여성들이 자국내에서 겪게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사회의 가부장적 편견, 초국적 자본주의화 과정에서의 국가간 여성노동력 이동 등이 이러한 기지촌 문제의 바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희망을 갖고 기지촌을 찾아오는 많은 여성들이 결국 여기서도 좌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히려, 사회적으로 고립된 기지촌에서 더 심한 착취와 소외를 겪게될 뿐입니다. 세계자본과 한국정부, 그리고 미군에 의해서 정책적으로 양성화된 기지촌에서, 여성들의 인권과 행복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4. 대안을 찾아서 – 새움터 직업재활 프로그램

‘매매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러 가지 법적, 제도적 장치가 갖춰져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법적으로 처벌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나, 현실을 오히려 어정쩡한 규제주의에 가깝습니다. 국가에서 통제하는 형식적인 성병검진, 매춘 지역을 찾는 남성들을 위해 입구에서 교통정리나 하는 경찰, 업주와 결탁한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단속 등은 오히려 매춘 구조만을 강화시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매춘 여성의 인권은 더욱 소외되고 무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춘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매춘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한 탈범죄화와 ‘피해자’로서 규정짓기, 매춘을 강요하는 포주와 클럽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매춘업소를 찾는 남성들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계도활동, 성 상품화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등이 필요합니다. 또한, 보다 효과적인 탈매춘 프로그램을 위해서는 민간단체와 정부의 유기적인 협조 또한 필수적입니다.

외국에서는 이러한 방법을 통해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탈매춘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John’s school(매춘업소를 찾는 남성들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스웨덴의 ‘Malmo Project(매춘여성의 비율이 높은 말모 지역의 탈매춘 프로그램)’ 등을 그 예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의 공통점은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매춘의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비교적 올바른 인식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탈매춘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오히려 강제 감금과 구타, 쓸모없는 기술교육 등을 통해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확산시켜 왔습니다. 현재 몇몇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새로운 탈매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지원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새움터 역시 기지촌 지역을 중심으로 탈매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1996년 11월 설립된 새움터는, 1990년대 초반부터 기지촌 여성운동을 해오던 현장 활동가들과 기지촌 활동을 통해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대학생들이 힘을 모아 동두천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설립 초기에는 지역 아동들을 위한 공부방과 밤보육 놀이방, 여성들을 위한 상담과 공동식사 제공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였습니다. 그 이후 약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기지촌 매춘여성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직업재활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직업재활 프로그램이란, 지속적인 상담과 교육을 통해 스스로의 상처를 극복하도록 하는 동시에 건강한 노동의 기회를 제공하여 자신의 힘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입니다.

새움터에서 선택한 직업재활 프로그램은 허브(Herb)를 재배, 가공하여 판매하는 것이었습니다. 허브란 인간에게 이로운 향을 가진 식물의 총칭으로, 대표적인 것은 로즈마리, 라벤다 등이 있습니다. 저희가 허브 프로그램을 택하게 된 것은, 여성들이 식물을 돌보면서 자신의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노동의 경험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식물의 향기를 통해 심리적인 안정과 정서순화의 효과도 얻을 수 있는 ‘향치료(아로마테라피 AromaTherapy)’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프로그램의 선정 과정부터 매춘여성들을 참여시킨 것은, 당사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그램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작년 7월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의 여성발전기금과 시민운동지원기금의 지원을 받음으로써, 직업재활 프로그램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됩니다. 비록 큰 규모는 아니지만 여성들을 위한 공동작업장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지난 12월에는 이 공동작업장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아 ‘동두천 아리랑’이라는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이 행사를 통해 기지촌 매춘여성에 대한 사회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직업재활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자리였습니다.

현재 공동작업장에서는 허브와 우유팩을 이용한 엽서와, 타면서 허브향이 나는 양초, 허브향 포푸리(향주머니), 허브향이 나는 종이꽃 바구니 등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아이디어는 모두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여성들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현재 13명의 여성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전업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 여성은 20여명에 이릅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판매수입이 확보된다면 더욱 많은 여성들이 전업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기지촌의 매춘여성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의 애정어린 관심이 필요합니다. 더 이상 그들이 소외되고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꾸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여러분들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기지촌 활동은 연대와 변화의 결과가 아닌 ‘시작’임을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행동을 통해서 문제의 해결 고리를 찾고, 그 고리들을 끊어나가는 작업을 시작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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