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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쇼핑몰과 전자감시사회, 당신이 감시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이원재 /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대안문화·미디어모임 R.exe
얼마 전 야후, 아마존 등 세계 유명 인터넷 사이트에 대한 해커 혹은 크래커들의 공격으로 인터넷 비즈니스가 위축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언론의 곳곳을 장식했다. 이번에 발생한 야후나 아마존 사이트의 해킹은 한꺼번에 해당업체 컴퓨터시스템이 처리할 수 있는 용량 이상의 정보를 쏟아 부어 시스템을 다운시키는 ‘서비스거부 공격’이다. 이는 고전적 방식이었지만 다른 컴퓨터 시스템을 먼저 해킹한 뒤, 이를 우회해 목표를 해킹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추적이 쉽지 않다고 한다. 하여간 날로 발전하는 해킹 기술에 유명사이트는 물론, 암호기술이나 ‘방화벽’이 허술한 국내의 사이트들은 바짝 쫄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해킹이라고 하면 재미있고 스릴 있는 가십(gossip)꺼리 정도로 취급될 수 있었지만, 전자상거래를 통한 자본의 흐름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미래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정보사회에 대한 이론적인 전망과는 무관하게, 적어도 자본에 있어서 인터넷은 더 이상 가상(virtual) 세계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고(어른은 증권을 아이는 게임을),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정보, 신용의 이동은 이제 자본주의의 중심 메카니즘 자체가 되어버렸다. 따라서 정보를 둘러싼 저작권, 해킹 등의 문제는 자본주의의 미래를 사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사안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자본주의를 뒤흔드는 해킹기술이 재미있게 보일 지도 모른다. 물론 해커나 크래커를 분류하면서 해커가 가진 사이버스페이스의 가능성을 아주 추상적으로나마 기대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해킹’이라는 키워드라기 보다는 ‘개인정보의 유출’ 그리고 이를 둘러싼 감시사회라는 키워드이다. 즉, 정보사회에서 유통되는 개인정보가 인터넷을 통한 자본주의 권력 및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전자감시사회의 기반이 되고 있다는 점 말이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그러한 개인정보를 자본의 밑천으로 삼아왔던 기업들이 이 재산을 도난당한 사건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과 전자감시사회
사실 사이버스페이스의 진보적 대안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가장 주목했던 부분은 인터넷의 기술적 가능성에 입각한 전자민주주의의 실현이다. 하지만 전자민주주의가 정보공유 및 정보접근에 대한 사이버스페이스의 긍정적인 가능성에 주목하였다면, 전자감시사회는 사이버스페이스의 정보통제를 통한 부정적인 측면에 주목한다. 즉 정보사회로 들어오면서 사회구성원간에 ‘정보불균형'(information inequality)이 심화되고 있으며, 이는 오히려 시민들의 민주적 참여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주장에서 전자감시사회에 대한 우려는 시작된다. 이는 갠디 쥬니어(Gandy, Jr.) 및 모스코(Mosco)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으로서 그 이유는 정보하부구조의 사유화에 있다. 즉, 이는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시민들의 사회 및 정치참여를 증대시키고 있는 반면에, 다른 한편으로는 과도한 상업화와 감시의 기능도 함께 증대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정보기술의 발달이 가져올 변화가 탈규제적인 정책과 맞물려서 그 어느 때보다도 상업주의적인 매체운영이 심화되리라는 어두운 전망이 예견되고 있다. 이는 개인간이나 국가간 ‘정보의 차이'(information gap)가 더 넓어짐을 의미하며, 개인들의 정치적 소외가 정보사회에서 자동적으로 해결되기 힘들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전자감시사회에 대한 입장은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대안적인 가능성을 배제한다기 보다는, 정보사회를 둘러싼 자본주의 메카니즘의 권력유지 경향에 대한 중요한 경고라고 보아야 한다.
현대사회와 감시
물론, 정보사회라는 말과 상관없이 전통적이고 봉건적인 사회에서의 초보적 형태의 감시는 현대에 와서 크게 강화되고 철저히 체계화되었다. 개인들의 일상은 전에 없이 투명해지는 반면에 국가장치 및 조직들의 감시능력은 계속 향상되었고, 이제 감시는 현대 사회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이 된 것이다. 따라서 기든스, 푸코 등은 근대성의 주요 요소를 기록문화(정보)에서 발견했으며, 이러한 정보의 운영 및 감시 그리고 이를 통한 권력화가 근대국가를 유지한 주요 핵심이라고 언급한 것이다.
실제로 감시 영역에서의 전자기술의 영향은 이미 1980년대 훨씬 전부터 인식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전화통신은 20세기 초기부터 경찰활동과 정부 행정, 또 영리적인 기업체를 크게 강화시켜주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의 마이크로 기술의 발달은 정보통신기술에 의한 감시를 한층 심화시켰다. 디지털을 활용한 정보통신기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일상적인 감시를 가능하게 해주었고, 국가와 기업은 이를 통해 개별 시민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감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패러다임 혹은 정보화 사회에서는 첫째, 감시환경에 디지털 기술이 적용되면서 감시능력의 비약적인 신장이 이루어졌고, 둘째 정보사회에서 국가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개인 및 집단에 대한 데이터 수집과 관리를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으며, 셋째 이를 위해 각종 통계기관 및 정보기관을 동원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정보사회에서는 감시의 새로운 대상으로 정치와 관련된 영역뿐만 아니라 개인들의 소비 일상영역이 주요 대상으로 취급되고 있다.
하지만 전자감시사회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현대 사회에서 감시가 가지고 있는 이중성의 문제이다. 이는 푸코가 언급한 것이기도 하지만, 권력이라는 것이 결코 ‘억압가설’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억압을 통해서만 권력이 형성되고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의 권력의지 혹은 권력에 대한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처럼, 감시를 위한 정보제공 역시 우리들 스스로의 자발적인 필요성 속에서 진행된다는 점이다.
감시의 이중성
다시 말해 권력의 문제에 대한 답변의 일부는 감시능력이 권력에 의한 일방향성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감시는 시민권의 추구와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을 추구하는 국가 통제활동의 결과라는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관계 속에서 생겨났으며, 그런 양면적인 경험을 우리는 지금도 하고 있다. 즉 자신의 정보를 제공하여 감시 가능한 조건을 우리 스스로가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의료, 상업, 교육서비스 등의 각종 편의를 위해 감시가 제공해 주는 권리에 대한 보호와 획득에 동의하면서도 간섭적인 관료주의가 우리의 사적인 공간을 침범할 때는 방어하거나 우리의 자율성을 가로막는 위협에 분노하는 것이다. 이는 정보와 관련된 감시기능이 권력에 의한 일방향적인 관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안에 따른 감시 상황에 우리 스스로가 ‘대응할’ 문제라는 것을 의미한다. 감시는 생활에 편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자율성을 억압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감시를 통해 획득되는 정보의 가치는 사회 내에서 진행되는 정치적인 문제들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더욱이 정보통제의 문제가 아직은 정치적 중심이 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향후 정보사회의 가능성을 인식한다면 이러한 우려가 왜 그토록 중요한지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정보사회에서의 정보는 이중적이다. 이는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서는 국가나 기업에 대해 우리 스스로가 개인정보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며, 반면에 이렇게 제공된 정보가 개별 존재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것에 사용되는 것은 부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자감시사회 혹은 정보지배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에 대한 일방적인 거부나 기술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가 아니라 시민정보권의 획득을 통해 정보의 공적윤리에 입각한 활용을 우리 스스로가 강제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인정보 제공에 대한 신중함, 정부와 기업의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역감시, 그리고 사회적 공공성에 입각한 정보인프라 구축 등을 모색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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