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UNAM) 침탈에 항의하며 10만 명 시위
「주간녹색좌파」2/18 데이비드 베이컨
지난 2월 9일 메히코에서는 약 십만 명의 사람들이 수도로 몰려와 지난 9개월간 국립자치대
학(UNAM)에서 동맹휴업을 벌이다 구속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행진을 벌였다.
이 거대한 시위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대화보다는 ‘가혹한 폭력(mano dura)’을
사용하는 정권의 전통적인 방식에 대한 거부였다.
이번 파업과 행진은 또한 메히코를 분열시키는 (빈부간, 도시·농촌간, 그리고 경제 개혁으
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자들과 희생당하고 있는 사람들 간의) 거대한 틈이 전례 없이 깊어지
고 있다는 극적인 증거였다.
라틴아메리카 역사상 가장 장기간 격렬히 진행되었던 투쟁 중의 하나인 우남 동맹휴업은 2
월 5∼6일 주말 동안 연방 정부가 745명의 학생과 교수를 체포하기 전까지는 대중적인 지지
를 많이 잃었다는 것이 통설이었다. 정부 당국은 사회 질서의 수호자로 나타남으로써 선거
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 학생들의 대량 구속을 단행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행위
는 오히려 시위 학생들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더 확산시키기고 말았다.
‘사회 안정’
1994년 집권 제도혁명당(PRI)은 치아파스 주에서 일어난 사파티스타 봉기와 좌파 야당인 카
르데나스의 민주혁명당(PRD)과의 제휴에 힘입어 에르네스토 세디요를 대통령으로 선출시키
는 데 성공했다. 제도혁명당이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장투쟁과 사회적 불안 상태를 두려
워한 국민들이 사회 안정을 선택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카르데나스는 8월에 있을 총선에서 민주혁명당의 대통령 후보로 다시 나서 PRI의 프
란시스코 라바스티다와 경쟁을 할 예정이다. 라바스티다는 사파티스타 봉기를 탄압으로 막
아섰던 세디요처럼 점증하는 사회 혼란에 대한 대응으로 우남 학생들의 체포를 지시했다.
민주혁명당은 지난 4년 동안 메히코시티를 통치해왔고 제도혁명당은 이 시기가 사회분열로
점철되었다고 공격해왔다. 메히코시티의 첫 시장이었던 카르데나스는 1년 전 대통령 입후보
를 포기하면서 로사리오 로블레스에게 시장자리를 넘겨주었다.
연방 정부가 학생들의 시위를 탄압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면서 로블레스는 캠퍼스에 진입해
학생들을 체포하기 위한 경찰 병력을 투입하라는 압력을 받았다. 그녀는 거부했지만 이는
병력 투입이 메히코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보다는 민주혁명당 지지자들이
그것을 정치적 배신으로 보리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제도혁명당 정부는 마약퇴
치 기동부대원들과 군인들에게 경찰 제복을 입혀 투입했다.
학생들에 대한 체포 이후 라바스티다는 시장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PRI는 학생들의 파업 분쇄를 PRD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확실한 솜씨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메히코시티에서 군과 경찰의 캠퍼스 난입은 역효과를 낳았다. 그것은 1968년 폭력과
피로 점철된 학생들에 대한 대량 학살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충돌 없이 파업을 종식시
키기 위해 모색 중이었던 대화의 과정은 이로써 끝이 났다. 라틴아메리카 대부분의 국가들
처럼 메히코는 군대가 캠퍼스에 진주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학 자치의 전통을 가지고 있다.
동맹휴업 기간 동안 교실 몇 개만 파손되었을 뿐 피해정도가 크지 않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
하는 것이었지만 85명의 학생들은 “테러 행위”로 고발되었고 보석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이
들 이외에도 400명의 학생활동가들에게 체포 영장이 발부되었다.
2월 9일에 있었던 행진에는 거대 노조에서 파견한 노동자들이 학생들 사이에 흩어져 들어가
정부가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학생들의 체포를 막아섰다.
빈곤
메히코시티 주민들의 이러한 폭발적인 지지는 경제적인 상황에 기인한다. 학생들이 동맹휴
업을 벌이면서 밝힌 주요 요구는 무상 교육 제도에 수업료를 도입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것
이었다. 학생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교육 민영화라는 더 거대한 프로젝트의 한 부분으로 교
육비를 부과하려는 시도이자 IMF의 차관 조건으로 강요된 다른 조치들과 연계된 정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부는 한 학기에 800페소의 수업료는 상징적이리 만큼 적은 액수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최
근 정부의 가계 수입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3명의 전일 노동자를 가진) 평균 5인 가족의
한 달 수입은 최저 임금의 4배 수준인 약 5∼6천 페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국민들의 평균 생활이 그리 넉넉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라고 우남
의 경제학자 알레한드로 알바레스 베하르는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을 해도 자신들
의 부모와 사는 것이 보통입니다. 혼자서는 살아가기에 충분한 수입을 벌어들이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이런 지점이 우남 동맹휴업의 주요 주장이었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학생들의 동맹 휴업에 대한 제도혁명당의 공격은 다가오는 자치시 선거에서 라바스티다의
승리의 기회나 민주혁명당이 장악한 시 행정부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는 기회를 잃게 할지
도 모른다. 이번 시위에서 가장 많이 울려퍼진 구호는 “제도혁명당에 낙선을!”이었다.
그러나 메히코 농촌지역은 훨씬 더 보수적이서 정부의 이번 공격이 메히코시티 시민들(
chillangos)을 겨냥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메히코 농촌의 수입은 도시보다 훨씬 낮다. 정부는 4천만 명이 빈곤하게 생활하고 있을 것
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그중 2천 5백만 명이 극도의 빈곤 상태에 놓여있고 그들 중 거의
대부분은 농촌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들 소도시와 촌락에서는 제도혁명당의 사회 안정 공약
이 소규모 부유층의 충성 유지와 그들의 통제 아래 있는 표를 획득하는 열쇠이다.
부
알바레스에 따르면 1994년 이래 메히코 상위 10%의 부자들의 재산은 계속 증대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나머지 90%의 빈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다.
우남은 엘리트 집단이 자식들을 교육시키는 장이자 그들이 노동자 및 중간 계층의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는 메히코 사회의 유일한 공간이었다. 무상 교육과 교육 기회의 개방은 지난
세기 초에 있었던 메히코 혁명의 물결 속에서 헌법으로 보장된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 간 부자들은 자녀들을 점차 사립대학에 보내기 시작했고 이는 계속해
서 급격히 증가했다. 메히코에서 대학을 마친 부유층의 자제들은 흔히 미국에서 대학원 과
정을 밟는다. 엘리트 집단이 아직까지 라틴아메리카 내 최대 규모이자 명문 대학으로 이름
난 우남의 공립성을 포기함에 따라 우남의 명망성과 접근 가능성을 유지할 책임마저 포기하
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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