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진보적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극우주의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가’라는 화두를 두고 논쟁이 한창이다. ‘정희진의 공부’ 편집장 정희진은 경향신문 칼럼에서 “극우에 대한 단호한 대처는 진짜 내전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면서, “지금 한국 상황에서 최선은 공존에의 의지”이고, 이때 공존이란 “나와 생각이 다른 상대방의 ‘존재’를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역사사회학자 강성현은 슬로우뉴스 칼럼에서 “극우를 인정할 필요는 없”으며, 폭력적 행동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극우와의 공존은 상호인정에 기반하지 않으며, 혐오와 증오의 확장을 막고 고립시키는 것이 공동체의 과제라고 덧붙인다. 극우의 논리와 수법을 폭로하고, 담론 투쟁을 통해 극우의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소수의 극렬 극우와 입장을 또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 잠시 극우세력의 주장에 흔들리는 다수(보수)는 구분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신뢰를 쌓은 상대와 얼마나 관계 맺고 대화하느냐에 따라 변화하고, 잘못된 방향에 흔들린 사람들과도 폭넓게 관계 맺고 소통해야 한다.
동시에 우리는 극우주의자들의 혐오와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성소수자나 이주민들에게 그것은 이미 현실이었다. 우리 사회가 이를 방관하는 사이 극우는 성장할 수 있었다. 즉, 폭력과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처벌은 필요하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공고하게 하는 길이다.
단호한 대처와 공존은 대립하지 않는다. 둘을 능동적으로 잘 해내는 것, 광장과 풀뿌리를 넓게 조직하는 게 바로 사회운동과 정치의 과제다. 그래야 극우로의 변침을 막고, 사회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