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현장에서 발생하는 구조조정의 심리적 부담, 생산량의 증가, 안전작업 무시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유로 노동자의 노동강도는 강화되어 간다. 특히 몸으로 먹고사는 노동자에게 건강권의 문제는 더더욱 심각한 문제이다.

‘때리는 시어머니 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과 현장의 노동강도가 무슨 함수 관계가 있으랴? 하겠지만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본다. LINE, 또는 각 작업장에서 작업 도중 발생하는 저해요인(장비 고장, 자재 결품 등)들로 인해 정해진 생산물량이 나오지 않을 시 발생하는 중간관리자의 독촉, 작업자의 건강권은 무시한 채 생산량만 뽑아 내려는 중간관리자들과의 마찰에 대해 시비를 가리기보다는 말리는 척 하면서 무조건 중간관리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식의 윗분(?)의 중재는 모두 때리는 시어머니에 더 가까울 게다. 그럼 시누이는 누구일까? 중간관리자도 부서장도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 ‘알아서 하겠지’ ‘난 괜찮은데…’ ‘그냥 좀 참지!’ ‘내가 나서봐야? 뭐…’하며 애써서 외면하고 구경하는 동료들이다. 현장의 일에 현장노동자가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의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주위 동료들의 시선이 구경꾼으로 있을 때 가장 쓸쓸해진다. ‘우리 노동자들은 본래 방관자들’로만 구성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본적도 있다. 비단 노동자의 건강권뿐 아니라 현장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대해 노동자는 구경꾼이 되어서는 안된다. 내가 구경꾼으로 동료 노동자를 쳐다볼 때, 동료 또한 구경꾼으로 나를 쳐다 볼 것이다. 구경꾼이 만연한 현장은 우리 노동자들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 것이다. 구경꾼이 아닌 방관자가 아닌 따뜻한 동료애로 나와 내 주위를 돌아보자. 부당한 일은 부당하다고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일은 당당하게 못한다고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몸으로 먹고사는 우리 노동자의 건강이 지켜질 것이고, 우리 몸이 건강해야 가정의 안전(행복)도 지켜질 것이다.

경주공장 조합원 한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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