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을 잃은 ‘제3의 길’: 진보적 통치에 관한 베를린회의

[세계사회주의 웹사이트] 6/8 페터 슈바르츠

6월 5일 독일의 사민당 총리 게르하르트 슈뢰더의 주재 하에 “21세기의 진보적 통치”라 명명된 회의가 네 개 대륙 13개국의 “진보적인” 정부 수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클린턴의 독일 방문 일정의 정점으로 기획된 세 시간동안의 이번 회합은 “제3의 길”의 진전을 상징하는 일련의 유사한 회의들 중 한 축을 이루도록 계획된 것이었다-제3의 길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와 클린턴, 슈뢰더 등과 연관된 정치를 나타내는 상표이다.

하지만 상황은 그런 식으로 전개되지 않았다. 오히려 회의는 “제3의 길”이 위기에 처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비슷한 회의가 다시 열릴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독일의 주간지 [디 자이트]가 비아냥거리며 지적했다시피 앞으로는 어쩌면 회의를 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한 “진보적 정부들”이 존재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11월 플로렌스에서 열렸던 이런 종류의 지난 번 회의에 참석했던 여섯 명의 정부 수반 중 두 명이 베를린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갓 태어난 아들 때문에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는 토니 블레어의 변명은 그다지 설득력있게 들리지 않았다. 애초 5월로 예정되었던 회의가 블레어의 요청으로 자식 출산 이후로 미뤄졌었기 때문이다.

또다른 불참자는 이탈리아의 마시모 달레마였다. 사민주의로 정리한 구공산당 지도자인 달레마는 지난 회의 이후 총리직을 사퇴했던 것이다. 대신 사회당의 줄리아노 아마토가 참석했지만 그는 전적으로 과도기적 인물로 간주되고 있을 뿐이다. 심지어 회의에 무게를 더해줄 것으로 여겨졌던 빌 클린턴조차도 이제는 “레임덕 현상”에 빠진 대통령으로 이야기되고 있다. 그의 임기는 내년 1월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제3의 길”이라는 용어는 회의의 최종 성명에서도 언급되지 않았다. 새로운 표어는 “현대적 정부”와 “진보적 통치”였다.

수사적 변화는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회합은 토니 블레어가 아니라 프랑스의 리오넬 조스팽의 필체로 새겨졌다. 경제와의 관계에 있어서 국가가 좀 더 큰 역할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되었다. 그래서 베를린 성명은 국제 금융시장에 대한 “효율적인 규제, 감독과 회계관리, 윤리헌장” 등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심지어는 “부와 기회에 대한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국제적 재분배”를 요청하기까지 한다.

정상회담에 뒤따른 기자회견에서 클린턴은 빈곤과 질병, 불평등의 극복 필요성과 사회 정의에 대해 역설했다. 한편 슈뢰더는 시장의 정치 지배를 비판하며, 금융시장에 대한 좀 더 효율적인 규제와 감시를 요청했다.

하지만 이것을 “좌경화”나 전통적인 사민주의적 개혁정책으로의 복귀로 보는 것은 오산일 것이다. 베를린에 모인 정부 수반들의 정치적 실천은 사회 정의에 대한 이들의 가장된 신념의 흉내내기일 따름이다. 회의 성명에는 어떻게 빈곤과 싸울 것이며, 어떻게 시장을 규제할 것인지에 대한 단 하나의 구체적 표시도 없었다. 그것은 클린턴-블레어-슈뢰더 류 정치의 전형적인 산물이었다. 어느 해설자의 표현처럼 그것은 진지한 듯한 공언과 텅 빈 수사들, 그리고 흔해빠진 진부함으로 가득 찬 비현실적인 어떤 것일 뿐이다.

어조상의 이런 변화는 정책상의 변화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애틀의 세계무역기구 회의에 맞선 지난 가을의 시위를 비롯한 여러 저항들처럼, “제3의 길” 지도자들이 추구해온 정책들의 결과에 대한 점증하는 반대에 직면한 또 하나의 반동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좀 더 작고 경제적으로 허약한 나라들, 그리고 소위 (진보로의) “시초 단계 국가들”이 “진보적 정부들”의 대오에 합류하게 된 것도 제국주의 열강의 경제 지배에 대해 높아져가는 비판을 달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타보 음베키 대통령과 “시초 단계” 정부의 수반인 브라질의 페르난도 카르도수와 아르헨티나의 페르난도 델 라 루아, 그리고 칠레의 리카르도 라고스가 베를린으로 초청받게 된 것이다.

대중적 이미지상의 이러한 표면적인 변화는 사민주의 정당들이 점점 더 큰 압력을 받고 있음을 나타낸다. 이들은 1990년대 선행 보수정당들의 경제적, 사회적 정책들에 대한 반대를 등에 업고 권좌에 올랐으며, 득표를 위해 보수정당의 정책들로부터 자신을 구별시켜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적 개혁 정책으로 복귀할 의향도 능력도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제3의 길”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제3의 길”의 비밀은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외피로 복지국가에 대한 공격을 포장하는 것이며, 한편으로는 그에 대한 공격을 가속화하는 것이다. 통치 기술은 연기 기술이 되었다. 여론조작의 전문가들이 전에 없이 불려내졌다. 클린턴과 블레어, 슈뢰더는 정치 전략가로서가 아니라 정치 세일즈맨으로서 탁월했다. 그들의 힘은 미디어를 다루는 능력과 잘 연출된 대중적 이미지, 조작된 환상에 있었다.

이런 방법들은 성공적인 것으로 보였다. 블레어와 조스팽, 슈뢰더의 승리와 함께 사민주의자들은 대부분의 유럽 국가 정부를 장악했다.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자신들의 노력보다는 선임자들에 대한 혐오와 기성 정치체제 일반으로부터 대중이 광범위하게 소외되었던 데에 기인한다. 이런 사실은 얼마간 이들을 자신들의 정책에 대한 대중적 반대를 못본 체하게 했다.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을 인용해보자. ‘몇몇 사람들을 영원히 속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얼마간 속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미망에 기반한 정치는 단명할 사업인 것이다.

영국에서 블레어는 첫번째 중대한 패배를 당했다. 블레어의 전폭적인 반대 운동에도 불구하고 켄 리빙스턴이 런던 시장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집권을 위해 50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던 구 스탈린주의 공산당이 집권 후 단 몇 달만에 신임을 잃고 말았다. 독일에서 사민당-녹색당의 연립정부는 집권 일년만에 심각한 위기에 부딪혔으며, 보수 야당의 부패 스캔들과 그에 따른 위기 덕분에 간신히 버텨가고 있다. 프랑스에서 조스팽 정부는 대규모의 파업 사태에 직면해있다.

공허함과 희극적인 성격을 분명히 드러낸 베를린 회의에 대해 많은 부르주아 언론조차 비웃음을 퍼부어대고 있다. “제3의 길”이라는 허울이 벗겨진 후 이제 진정한 사회적, 정치적 이슈들이 전면에 부상하고 있다. 사민당 체제 아래 쌓여온 격렬한 사회적 분쟁과 적대감들은 이제 정치적 형태를 취할 필요성이 요구될 것이다.

미래의 정부는 특정 계급의 이익을 대표하는 자신의 진정한 역할을 보다 공공연하고 솔직하게 드러내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러시아에서 이미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러시아는 베를린 다음으로 클린턴이 방문하게 될 곳이었다. 러시아의 새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선임자의 민주적 위장막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이제 “법의 독재”라는 이름으로 권위주의적 국가를 건설하려 하고 있다. 이러한 사태 진행은 현재의 사회 구조에 대한 진정한 대안이라는 의제를 대중의 주된 관심사로 복귀시키게 할 것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