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와 유럽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경고가 수년간 이어져 왔다. 이제 전쟁이 실제로 그러한 상황으로 번질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이는 유럽인들의 생명뿐 아니라 전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태다.

서방 강경파는 러시아가 유럽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확대에 대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러시아를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러시아가 드론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들이 보복에 보복이 이어지는 확전의 위험을 과소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출처: Unsplash, Žilvinas Ka

유럽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4년 넘게 이어진 우크라이나 전쟁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자주 비교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서 벌어진 최대 규모의 지상전이라는 점뿐 아니라, 지난 6월에는 전쟁 기간마저 제1차 세계대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 두 차례의 참혹한 세계대전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 유럽의 다른 강대국들까지 끌어들이는 유럽 전역의 전쟁으로 확대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는 갈수록 불확실해지고 있다. 거의 5년 동안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유럽 회원국들은 서로 직접적인 전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 능력이 약화하면서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징후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군사적 긴장 고조와 우발적 사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퍼뜨리는 허위정보까지 뒤엉키면서 유럽에서 벌어지는 또 하나의 유혈 참사가 훨씬 더 파국적인 전쟁으로 번질 위험은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나토 회원국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러시아와의 더 광범위하고 위험한 대결로 빠져들고 있다고 수년 동안 경고해 온 반전론자들의 우려가 옳았음을 보여주는 씁쓸한 현실이다. 이제 중요한 문제는 그들이 경고한 최악의 사태를 막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위협과 우발적 사고

러시아와 유럽이 직접 전쟁을 벌인다면 그 결과는 엄청날 것이다. 전문가들은 오래전부터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 전쟁이 발생하면 빠르게 핵전쟁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해 왔다. 2022년 브라운대학교의 한 연구 보고서에서도 지적했듯이 러시아는 재래식 군사력에서 나토에 뒤처지기 때문에 오히려 핵무기 사용을 선택할 가능성이 더 높다.

이 보고서를 작성한 브라운대학교 왓슨 국제공공문제연구소의 선임연구원 라일 골드스타인(Lyle Goldstein)은 “주류 언론이 이러한 위험을 축소해서 다뤄왔다고 생각한다. 위험을 제대로 알리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가 크게 약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미국을 제외한 나토 회원국들이 보유한 실전 배치 핵탄두는 합쳐서 거의 5,000기에 이른다. 양측이 핵무기를 주고받는다면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을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세계 지도자들은 수십 년 동안 나토와 당시 소련 사이의 충돌을 막기 위해 공개 발언 하나하나까지 신중하게 조절하며 긴장을 억제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유럽과 러시아의 고위 당국자들이 서로를 공개적으로 위협하는 일이 거의 매달 벌어지고 있다.

지난 4월, 블라디미르 푸틴의 측근이자 러시아 전 대통령으로 현재 국가안보회의 부의장을 맡고 있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Dmitry Medvedev)는 유럽의 드론 생산시설 목록을 공개하며 이 시설들이 “합법적인 잠재 공격 목표물 목록”이라고 선언했다. 한 달 뒤에는 EU 시민들에게 “평화로운 잠은 이제 끝났다”고 경고하면서 유럽 지도자들이 “일방적으로 러시아와의 전쟁에 뛰어들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독일 공군참모총장은 전쟁이 발발하면 신속하게 러시아를 폭격하겠다고 공언했다. 폴란드 외무장관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Radosław Sikorski)도 유럽이 러시아의 정유시설을 “6일 만에” 파괴할 수 있으며,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더라도 “상당히 빠르게”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양측의 이러한 공개적인 위협은 지난주 위험한 정점에 이르렀다. 러시아 정부가 나토를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공식 경고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미 2년 전 핵무기 사용 기준을 공식적으로 완화한 바 있다. 이번 경고에서 러시아 정부는 나토가 “직접적인 무력 충돌을 촉발할 위험이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번 경고는 러시아와 나토가 전쟁을 벌일 경우 나토가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를 초기 주요 공격 목표로 삼을 것이라는 공개 발언과 유출된 군사계획이 나온 뒤에 이어졌다. 칼리닌그라드는 리투아니아와 폴란드 사이에 자리한 러시아의 역외 영토로, 러시아군의 핵심 군사 거점이다.

그동안 나토 회원국의 정부 당국자들과 정보기관에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이 임박했거나 심지어 이미 시작됐다는 경고를 몇 달째 잇달아 내놓고 있다. 발트 3국은 대규모 주민 대피 계획을 마련했고, 독일 병원들은 향후 전쟁으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국민들에게 식량과 식수를 비축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유럽 각국의 수도에서는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지는 전쟁에 대비하기 위해 징병제를 도입하거나 확대해야 한다는 논의까지 나오고 있다.

이처럼 양측이 거친 말을 주고받는 것은 양측의 대립이 갈수록 말 그대로 실제 전쟁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당국자들은 러시아가 지난 4월 메드베데프가 경고했던 대로 유럽 전역의 방위산업 시설과 기타 주요 시설을 겨냥해 잇달아 파괴공작을 벌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악명 높은 사례는 우크라이나에 보내는 나토 군수물자의 핵심 물류 거점인 라이프치히(Leipzig) 공항과 그 주변에서 폭발물을 탑재한 드론들이 발견된 사건이다. 독일의 한 시사평론가는 이 사건을 독일판 9·11 테러라고 묘사했다. 라이프치히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적절하지 않은 비유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선택했던 대외정책을 생각하면 불길한 비유이기도 하다.

여기에 우발적인 영공 및 영토 침범 사례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러시아가 수개월째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공습을 가하는 과정에서 러시아의 탄약과 드론, 기타 항공기가 나토 회원국의 영공이나 영토를 침범한 사례는 수십 차례에 이른다. 지난주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드론이 올해 들어 나토 회원국인 루마니아의 영공을 침범한 횟수는 23차례에 달했다. 이는 지난 3년 동안 발생한 침범 사례를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수치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생한 사건 중 어느 것도 2022년 11월만큼 위험한 상황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당시 폴란드 국경 안쪽에 미사일 두 발이 잘못 떨어져 농민 두 명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에는 러시아가 미사일을 발사한 것으로 잘못 알려지면서 전쟁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나토가 긴급회의를 열어 대응 방안을 논의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후 우크라이나가 실수로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위기를 가까스로 진정시킬 수 있었다.

스팀슨센터의 ‘미국 대전략 재구상’ 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인 에마 애슈퍼드(Emma Ashford)는 “지난 4개월 동안 발생한 사건 중 단 하나라도 2023년에 일어났다면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을 것이고, 모두가 크게 동요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이 전쟁이 계속되는 상황에 너무 익숙해져서 이제는 이런 사건이 발생해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더 심각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수도 있다. 지난달 발생한 또 다른 사건에서는 러시아 군함이 감시 임무를 수행하던 덴마크 헬리콥터를 향해 비상 신호탄 두 발을 발사했고, 신호탄은 헬리콥터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의 군사분석 책임자 제니퍼 캐버너(Jennifer Kavanagh)는 “이러한 하이브리드전 성격의 사건이 더 자주 발생하면서 실제 무력이 개입되는 정도도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양측 사이에 대화 채널이 없다면 러시아가 의도치 않게 한계선을 넘어 사태를 확대할 위험은 언제나 존재한다”고 경고했다.

보복에 보복이 이어지는 악순환

지난달 발생한 사건은 이러한 위험이 얼마나 현실적인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국경 인근에서 러시아 드론이 열차 일부를 파괴한 사건이었다. 미국과 유럽의 고위 당국자들이 그 열차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한 지 불과 몇 분 만에 공격이 발생했다. 러시아가 고의로 당국자들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도록 공격 시점을 조절한 것으로 보였지만, 조금만 상황이 달랐더라면 전쟁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전직 미국 중앙정보국(CIA) 관계자가 표현한 대로 전쟁으로 치닫는 ‘확전의 연쇄반응’을 촉발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캐버너는 “러시아는 유럽에 대가를 치르게 하려 한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입히는 피해에 보복하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는 유럽의 자금이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드론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푸틴이 직접 인정한 바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이러한 드론을 이용해 러시아 GDP의 1%에 해당하는 피해를 입혔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러시아 정유 능력의 절반을 마비시키기도 했다. 나토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가 이러한 공격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무기를 제공했을 뿐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정부를 통해 우크라이나가 공격 목표를 선정하고 러시아의 방공망을 피해 드론을 운용하는 데 필요한 정보까지 제공했다.

이러한 지원은 우크라이나의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고무적일 수 있다. 그러나 상당한 위험도 뒤따른다. 나토 회원국들이 자신들의 행동이라고 여기는 단순한 군사 지원과 실제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공동 교전국이 되는 것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정부가 이러한 지원을 얼마나 심각한 도발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 이해하려면 올해 초 러시아가 이란에 나토 회원국들이 현재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것과 유사한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를 떠올려 보면 된다. 당시 워싱턴과 브뤼셀에서는 거센 분노가 일었다.

또한 나토의 이러한 지원은 전쟁 확대 위험을 억제하기 위해 서방 당국자들이 전쟁 초기에 스스로 설정했던 한계선을 이미 한참 넘어섰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과 유럽의 당국자들이 우크라이나가 전투기를 확보하도록 돕는 것만으로도 지나치게 위험하다고 판단하던 시절은 오래전에 지나갔다. 당시에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까지 장거리 공격을 가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더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서방 지도자들은 지난 몇 년 동안 이러한 조치를 취했는데도 러시아가 보복하지 않자 점차 경계심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강경 성향의 애틀랜틱카운슬(Atlantic Council)이 주장했듯이, 러시아가 보복하지 않는 것은 “푸틴이 설정한 레드라인이 서방을 겁주기 위한 허세에 불과하다”는 증거라고 확신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서방 지도자들은 이제 확전 위험에 대한 신중한 태도를 사실상 내던진 듯하다.

캐버너는 “러시아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는데도 확전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망명 중인 러시아 언론인이자 푸틴 비판론자인 레오니드 라고진(Leonid Ragozin)은 “서방 안보 관료 집단 내부에는 러시아가 종이호랑이에 불과하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만큼 레드라인을 넘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러시아를 끝없이 자극해도 괜찮다고 믿지만, 결국 어느 순간 한계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모스크바에서 나오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 보면 러시아가 보복하겠다는 의사는 매우 분명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현재 유럽을 전쟁에 직접 끌어들일 위험이 있는 러시아의 파괴공작은 뒤늦게나마 억지력을 회복하려는 시도일 수 있다.

애슈퍼드는 “모스크바에서는 분명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유럽이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아무런 대가 없이 계속할 수는 없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러시아가 수년 동안 경고했던 행동을 이제 실제로 실행에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서방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러시아는 핵무기를 사용할 의사가 있다는 경고도 오랫동안 반복해서 내놓았지만, 서방은 그 경고 역시 여러 차례 대수롭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의 기디언 래크먼(Gideon Rachman)은 푸틴이 과거 핵무기 사용 위협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러한 위협이 이제 억지 수단으로서 “효력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전 CIA 국장 빌 번스(Bill Burns)와 전 미국 국방부 정책담당 차관 콜린 칼(Colin Kahl)은 모두 2022년 가을 러시아 지도부가 핵무기 사용을 매우 진지하게 고려했다고 밝혔다.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후원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세계가 ‘아마겟돈’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후에도 러시아 군사전략가들은 위험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서방을 상대로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계속 열어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러시아군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무기 시험과 군사훈련도 실시했다.

골드스타인은 “나는 수년 동안 러시아 해군 제독들이 크렘린에 ‘서방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러시아를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가르쳐 주기 위해 프랑스 호위함 한 척을 격침해야 한다’고 주장할 가능성을 우려해 왔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정말로 우리가 그런 순간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덧붙였다.

혼란 속에 심화하는 확전의 악순환

모든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지금의 사태는 충분히 위험하다. 그러나 전쟁 상황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혼란에 의도적인 허위정보까지 더해지면서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구분하기가 특히 어려워졌다.

골드스타인은 “양측 모두 상당히 체계적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핀란드, 덴마크, 에스토니아, 리투아니아의 정보기관과 지도자들뿐 아니라 나토 사무총장과 유럽연합 국방담당 집행위원까지 모두 러시아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위협은 없으며, 이를 뒷받침할 정보도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들 중 상당수는 정반대의 경고를 내놓으며 대중의 불안감을 키웠다.

라고진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소식통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면, 그들은 이러한 위기감 조성이 2028~2034년 유럽연합 장기 예산안 채택과 관련돼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들은 결국 앞으로 6년 동안 사용할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싸움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캐버너도 “독일과 영국에서 나오는 일부 발언은 주로 국방비 지출 확대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끌어내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일부 유럽 정부는 러시아와의 전쟁 가능성을 내세워 군사비 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 이른바 군사적 케인스주의를 추진할 기반을 마련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영국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신임 재무장관은 해군 기반시설 재건을 중심으로 “새로운 산업화 시대”를 열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폴란드에서는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가 시코르스키 외무장관과 도날트 투스크 총리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러시아에 대한 공포를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양측이 실제로 가장 강경한 발언을 행동으로 옮길 의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골드스타인은 “그들도 마음속으로는 전쟁이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부 유럽 당국자들은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준비가 아직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사실상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한편 장기간 이어지는 소모전에서 자신들이 승리하고 있다고 믿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유럽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실현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에 자신들의 정치적 위신을 걸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군사적 위기가 보여주듯이 당사자들의 의도가 언제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립하는 양측이 상대방의 행동을 잘못 해석할 뿐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비치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나토에 경고를 보내 억지력을 확보할 목적으로 파괴공작을 벌이고 있다면, 유럽과 미국 당국자들은 이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러시아가 나토의 결속력을 의도적으로 “시험”하거나 이를 약화하려 한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러시아에 대한 억지력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들도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의 이러한 행동이 푸틴에게 통하는 유일한 언어는 “힘”이라는 자신들의 믿음을 확인해 준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은 현재 러시아에 맞서 자신들도 일종의 ‘하이브리드전’으로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의 행동처럼 이론적으로는 전면적인 군사 공격에 미치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비슷한 수준의 고통”을 안겨주는 방식이다.

애슈퍼드는 “러시아는 유럽이 아무런 부담 없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할 수 있다고 지나치게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이를 경고하고 있다고 여긴다. 반면 유럽은 러시아가 자신들을 상대로 분쟁을 확대하려 한다고 받아들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캐버너는 “유럽은 자신들이 교전 당사자가 아니며,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상적이고 위협적이지 않은 행동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러시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 점을 분명히 알리려 한다. 유럽은 러시아 측의 모든 확전 행동에 주목하면서도 자신들의 행동이 확전의 악순환에 어떤 방식으로 기여하고 있는지는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이유는 유럽 지도자들이 실현 가능성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에 자신들의 정치적 위신을 지나치게 걸고 있다는 점이다.

모두에게 가장 바람직한 결과

우크라이나가 지난여름 드론 공격으로 러시아에 상당한 물리적 피해를 입혔지만, 이 작전 역시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또 하나의 군사적 승부수로 끝났다. 작전이 마무리된 뒤에도 우크라이나는 푸틴에게 종전을 압박하거나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 불안을 조성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우크라이나군이 일부 영토를 탈환하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전황이 우크라이나에 유리한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라고진은 “분명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지만, 전략적 차원이 아니라 전술적 차원에 그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우크라이나는 전장에서 끈질긴 저항력을 보여주고 있지만 돌파구를 마련하지는 못했다. 러시아에도 상황이 낙관적이지는 않지만, 우크라이나에는 상당히 암울하다”고 말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현재 갈수록 심각해지는 정치적 위기에 빠져 있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심각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으며, 때로는 말 그대로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막대한 재정 부족 문제까지 겹쳤다. 미국이 이란과 벌이는 전쟁으로 전 세계의 요격미사일 재고가 고갈되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공습을 막을 수단도 거의 없는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는 개전 이후 가장 가혹한 폭격을 가하고 있다. 유럽 지도자들은 수년 동안 우크라이나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하면 유럽 전체에 암울한 미래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우크라이나 당국자들조차 자국이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

골드스타인은 “유럽 지도자들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라는 이야기에 너무 깊이 매달려 있다. 지금까지 5년 동안 자신들이 해온 주장이 지나쳤다고 인정하면서 기존 입장에서 조금이라도 물러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언젠가 전세를 뒤집을 돌파구가 마련되기를 바라며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전쟁을 더욱 확대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 당국자들이 패배만큼이나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겨온 선택지, 즉 평화협상에서 고통스러운 양보를 하는 것이다.

라고진은 “러시아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조건을 내걸고 있는지는 이미 수년 전부터 분명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요구하는 조건에는 우크라이나가 나토 가입을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함께, 가장 논란이 큰 사안인 크림반도와 돈바스, 그리고 러시아군이 2022년 이후 불법 점령한 다른 영토를 포기하는 것이 포함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군사력으로 돈바스와 특히 크림반도를 탈환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바 있다. 그러나 평화협상에서 이러한 영토를 공식적으로 포기하는 방안은 여전히 우크라이나 정부가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다.

라고진은 “러시아의 문제는 자신들의 입장을 완강하게 고수하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러시아는 협상할 준비는 돼 있지만 타협할 준비는 돼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부당한 결과를 피하려는 희망으로 전쟁을 계속할수록 우크라이나의 미래는 더욱 암울해지고 있다.

폴란드의 투스크 총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군에서는 매달 2만 7,000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입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여성 징병까지 거론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공격적이고 국민의 반감을 사는 병력 모집 방식을 동원하고 있으며, 이에 반발하는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저항도 갈수록 폭력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전쟁 자체와 전투에 동원될 가능성을 피해 수많은 국민이 해외로 떠나면서 우크라이나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 현재 출생률은 사망률에 크게 못 미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 인구 구조와 연금제도, 노동시장에 심각한 위기가 닥칠 것임을 예고한다. 우크라이나 경제의 산업 기반도 무너지고 있다. 더 이상 제대로 막아낼 수 없는 러시아의 공습이 계속되면서 지난해 우크라이나 GDP의 약 5.5%를 차지했던 철강산업은 사실상 가동을 중단했다.

다시 말해, 아무리 불공정한 조건을 받아들여야 하더라도 협상을 통해 전쟁을 끝내려는 노력은 현재의 확전 악순환을 끊고 유럽 전역으로 번질 수 있는 재앙을 막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에도 이익이 될 수 있다.

캐버너는 “어떤 평화협정이 체결되더라도 그 조건이 좋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누구도 그 결과에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전쟁을 계속하는 것보다는 낫다”고 말했다.

[출처] The War in Ukraine Is Spiraling Out of Control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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