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Aakash Dhage, Unsplash+

불가리아의 뛰어난 공산주의 지도자 게오르기 디미트로프(Georgi Dimitrov)는 코민테른 제7차 대회를 주재하고 파시즘에 맞서기 위한 통일전선 전술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그보다 앞서 그는 독일에서 나치가 1933년 집권한 뒤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의 피고인으로 기소돼 투옥됐다. 디미트로프는 법원이 선임해 준 변호사를 거부하고 재판에서 직접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변론 과정에서 나치의 최고위 지도자이자 히틀러의 전쟁장관이었던 헤르만 괴링(Herman Goering)을 반대신문하고 싶어 했고, 법원은 이를 허가했다. 그의 반대신문은 매우 강력해서 어느 순간 괴링은 화를 참지 못하고 “이 악당아, 너는 교수형을 당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그러나 디미트로프는 침착하면서도 날카롭게 자신과 다른 공산주의 피고들에게 씌운 혐의가 조작된 것임을 폭로했고, 결국 법원은 그를 석방했다.

최고위 나치 지도자를 법정에 불러 반대신문하도록 허용했던 독일 판사의 태도와, 재판도 시작하지 않은 채 6년 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일부 젊은 피고인들에게 보석조차 허가하지 않는 인도 사법부의 태도는 이보다 더 극명하게 대조될 수 없다. 이런 수감자 가운데 한 사람이 아미트 샤(Amit Shah)를 법정에 소환해 반대신문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왜 두 경우 사이에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가?

그렇게 오래전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다. 불과 얼마 전 미국 법원은 미국 헌법 조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도널드 트럼프의 당초 관세안을 무효라고 판결할 ‘대담함’을 보였다. 바로 이 때문에 현재 인도와 미국이 무역협정을 다시 협상하고 있기도 하다. 트럼프는 화를 내고 불평했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다시 질문이 생긴다. 왜 미국 사법부와 인도 사법부는 이처럼 다른가?

왜 인도 사법부는 집권 초기였다고는 해도 나치 독일에서도 보기 어려웠던 정도로 행정부에 굴복하는가? 사실 1918년 수립된 바이마르공화국은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 재판이 시작됐을 때 겨우 15년 된 체제였다. 반면 인도는 공화국 헌법 아래에서 그보다 다섯 배나 긴 세월을 보내왔다. 그렇다면 사법부를 포함한 우리의 제도는 훨씬 더 견고해졌어야 한다. 그런데 왜 그렇지 않은가?

파시즘이나 네오파시즘은 독점자본과 파시스트 ‘벼락출세자들’ 사이의 동맹에 기반한 지극히 현대적인 현상이다. 여기서 ‘벼락출세자’라는 표현은 칼레츠키(Kalecki)의 용어를 빌린 것이다. 파시즘은 독점자본의 시대에만 등장하며, 그중에서도 체제가 위기에 빠지고 정당성을 잃을 위험에 처한 시기에 나타난다. 사실 파시즘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이해와 자유주의적 이해의 차이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파시즘이 사람들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담론을 제공하면서 독점자본의 헤게모니를 방어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을 인식한다. 이런 특징은 파시즘보다 네오파시즘의 맥락에서 더욱 뚜렷하다. 전자의 네오파시즘과 달리 후자의 파시즘은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는 담론을 제공하면서도 실제로 실업 문제를 해결했다. 파시즘은 재정적자로 조달한 대규모 국가 군사비 지출을 통해 전쟁을 준비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실업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파시즘과 네오파시즘 자체는 현대적 현상이지만, 이들이 끌어들이는 사상과 개념은 전근대적 태도를 반영한다. 이들이 동원하는 구체적인 전근대적 편견은 각 나라의 역사에 따라 달라진다. 오늘날 다수 집단 안에서 증오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표적으로 삼는 ‘타자’는 유럽에서는 흑인과 무슬림으로 구성된 이민자일 수 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타자’가 달리트(Dalit)와 무슬림이다. 이들은 이민자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그 나라에서 살아온 토착 주민이다. ‘타자화’한 공동체를 상대로 만들어내는 신화 역시 나라마다 다르다. 모든 경우에 그 나라 역사를 심하게 왜곡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나라별로 다르다. 바로 이런 차이가 파시즘과 네오파시즘에 국가별 특수성을 부여한다.

따라서 모든 파시즘과 네오파시즘은 대중에 대한 극심한 억압, 독점자본과의 긴밀한 결합, ‘지도자’를 둘러싼 개인숭배의 구축, 무력한 소수집단을 향한 증오 조성 같은 뚜렷한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각 나라의 구체적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인다. 요컨대 파시즘은 중세적 편견들을 개념 생산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현대적 현상이며, 그것이 촉발하는 사회적 반혁명의 구체적 성격은 바로 이런 편견들에 의해 결정된다.

인도의 네오파시즘이 활용하는 가장 분명한 중세적 편견은 사회적 위계에서 이른바 ‘하위’에 놓인 카스트 구성원을 열등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인도 네오파시스트들의 분노가 겉으로는 무슬림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하위’ 카스트를 향한 편견은 두 가지 분명한 이유 때문에 무슬림에 대한 편견으로 매끄럽게 이어진다. 첫째, 무슬림 인구의 상당 부분은 과거에 종교를 바꿔 카스트 억압에서 벗어나려 했던 사람들의 후손이다. 둘째, 사람들 사이에 본질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한 경우에서 다른 경우로 그대로 옮겨간다. 요컨대 네오파시스트들이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지 않는 태도는 카스트제의 불평등이 남긴 유산이다.

물론 모든 봉건사회는 인간 사이에 본질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일반 대중과 권력자를 대하는 엘리트의 태도가 인도라고 해서 서구 국가들과 특별히 다르지 않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인도 사법부가 행정부에 굴복하는 현상을 단지 카스트제를 떠받쳤던 것과 같은 계승된 봉건적 가치로만 설명할 수 없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여러 서구 국가에서는 철저한 부르주아혁명이 일어났고, 이 혁명들은 계승된 봉건적 가치에 강력한 타격을 가했다. 그 결과 엘리트 내부에서도 개인 사이의 평등에 대한 믿음, 따라서 개인 권리의 불가침성에 대한 믿음이 더 널리 자리 잡았다. 그 가운데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부르주아혁명 과정에서 개인의 평등이라는 사상을 근거로 집권 군주를 처형하기까지 했다. 당시 이런 사상은 폭넓은 호응을 얻었다. 인도에서는 사회적·정치적 평등에 관한 부르주아적 사상이 엘리트 내부에서 그에 견줄 만큼 우위를 차지한 적이 없다. 물론 부르주아적 평등 개념은 경제적 평등으로까지 확장되지 않는다.

그 결과 독립 이후 인도의 세속적이고 민주적인 헌법 아래에서 국민이 누려온 권리는 언제든 빼앗길 위험에 놓여 있었고, 사법부가 이런 권리를 지키기 위해 나설 것이라는 보장도 없었다. 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데 본래부터 기울어 있는 네오파시즘 정권 아래에서는 그 위험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진다. 따라서 매우 중요한 의미에서 오늘날 인도의 투쟁은 국민의 헌법적 권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이며, 이 투쟁에는 사법부가 사회를 위계적으로 바라보는 오래된 관점을 버리도록 만드는 투쟁도 포함된다.

최근 집권 세력이 국민의 권리를 빼앗은 두 가지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첫 번째는 마하트마 간디 국가농촌고용보장제도(Mahatma Gandhi National Rural Employment Guarantee Scheme)의 폐지와 관련된 사례다. 이 제도는 헌법상 권리는 아니었지만, 의회의 만장일치 결의를 통해 모든 농촌 가구에 요청할 경우 100일의 일자리를 보장했다. 그러나 정부는 어느 날 아무런 토론도 없이 하원에서 구두표결만으로 이 권리를 빼앗았다. 두 번째는 선거관리위원장이 무려 1억 3,000만 명의 유권자에게서 투표권을 박탈하려 한 시도다. 이는 모든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는 헌법상 기본권을 폐기하는 행위다. 이런 권리 박탈의 밑바탕에는 국민이 권리를 요구해서는 안 되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든 감사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두 경우 모두 사법부가 국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사법부의 태도는 10월 6일로 예정된 서벵골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의 투표권이 박탈된 문제에서 가장 충격적으로 드러난다. 대법원은 이번 선거가 단지 보궐선거일 뿐이므로 투표권 박탈 관련 이의제기를 법원이 서둘러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우선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영국에서는 최근 한 차례의 보궐선거 결과가 총리 교체로까지 이어졌다. 더구나 이런 태도는 사법부가 국민에게 헌법상 당연히 보장된 권리를 요구하기보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권리에 만족하라고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은 특정 시점의 사법부 태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사회를 위계적으로 바라보는 계승된 관점을 의식적으로 넘어설 필요성을 사법부가 깨닫도록 만드는 투쟁까지 포함해야 한다.

[출처] The Specificity of Neo-fascism | Peoples Democracy

[번역] 하주영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