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노동 가운데 일부는 사무실이나 금융 거래소가 아닌 우리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돌봄 노동자는 노인이나 장애인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돕는다. 부모가 출근한 뒤 아이를 달래고 보살피는 보모도 있다. 이처럼 돌봄 노동은 식사를 준비하는 일부터 누군가가 존엄성을 지키며 목욕할 수 있도록 돕는 일까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돌봄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깊은 유대감을 형성하는 일이다. 가사·돌봄 노동자들은 출산, 이사, 사고, 질병 진단 등 인생의 중대한 전환기에 우리 삶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가장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집을 이들에게 믿고 맡긴다. 그러나 이처럼 우리 삶에 깊이 관여하며 돌봄을 제공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서 노동권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노동의 가치를 가장 낮게 평가받는 노동자 집단에 속한다.

전 세계 돌봄 경제에는 3억 8,100만 명의 노동자가 종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최소 7,560만 명이 가사·돌봄 노동자이며, 절대다수는 여성과 유색인종 여성이다. 가사·돌봄 노동자의 80% 이상이 비공식 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어, 수백만 명이 다른 노동자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노동권 보호와 사회보장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사·돌봄 노동자 5명 중 약 1명은 이주민이다.

2021년 워싱턴 D.C에서 열린 전미가사노동자연맹 집회. 출처: 세라 앤더슨(Sarah Anderson), 정책연구소(Institute for Policy Studies)

돌봄은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만,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돌봄은 가족과 공동체, 경제를 연결하고 국경을 넘나든다. 전 세계 여성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아 고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가정과 아이들, 노인과 장애가 있는 가족을 돌보는 노동자가 된다. 그러는 동안 정작 고국에 남겨 둔 자신의 가족은 친척이나 다른 돌봄 노동자에게 맡겨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관계는 ‘글로벌 돌봄 사슬(global care chain)’이라는 더 큰 구조의 일부다. 글로벌 돌봄 사슬이란 유급 또는 무급 돌봄 노동을 매개로 전 세계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관계를 뜻한다. 그러나 이 용어 뒤에는 누가 돌봄을 담당할 것인지, 누가 돌봄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누가 일자리를 찾아 집이나 고국을 떠나야 하는지,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놓고 수백만 명이 나누는 대화와 선택이 있다.

준 배럿(June Barrett)은 이러한 돌봄 사슬의 여러 연결 고리를 직접 경험했다.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준은 십 대 시절부터 가사노동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이후 미국으로 이주해 마이애미에 정착했으며, 보모로 일하다가 재가 돌봄 노동자로 일하게 되었다.

준은 돌봄 노동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짊어졌다. 그러나 돌봄 노동이 지닌 존엄성이 일터에서 노동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준은 고용주의 집에 입주해 돌봄 노동을 하던 중 성희롱과 성폭력을 겪었다. 다른 많은 가사·돌봄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준 역시 피해 사실을 신고하면 생계 수단을 잃을까 두려웠다. 준에게 일자리는 주거와 건강을 유지하고 해외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지원하는 데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준이 겪은 고립은 가사·돌봄 노동자들이 마주하는 가장 대표적이면서도 복잡한 취약성 중 하나다. 다른 사람의 집이 일터인 경우 곁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가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고용주의 사적인 요구와 노동자로서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노동 기준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없는 경우도 많다.

이주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체류 신분 때문에 고용주와의 권력 불균형을 더욱 심하게 겪는다. 특히 합법적인 체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고용주에게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이러한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그러나 준의 이야기는 고립된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연대할 때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현재 준은 전미가사노동자연맹에서 조직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준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가사·돌봄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고 힘을 모아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서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위해 싸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국제가사노동자연맹의 제2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전 세계 가사·돌봄 노동자 지도자들과 함께 모든 노동자의 존엄성과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전미가사노동자연맹 집회에서 연설하는 준 배럿. 출처: 국제서비스노동조합(SEIU)

준이 자메이카의 가사노동자에서 마이애미의 돌봄 노동자로, 다시 조직 활동가이자 국제 노동운동 지도자로 성장해 온 과정은 가사·돌봄 노동자 운동이 끊임없이 발전해 온 역사를 보여준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가사·돌봄 노동을 고립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로 여기며 노동 기준이나 사회적 관심의 대상에서 배제해 왔다. 이에 맞서 가사·돌봄 노동자들은 언어와 국경, 정치적 차이를 넘어 조직적으로 연대해 왔다.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이유로 돌봄 노동의 가치를 다른 노동보다 낮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가사·돌봄 노동자들과 지지자들이 오랫동안 조직적으로 활동한 끝에, 국제노동기구(ILO)는 2011년 제189호 협약을 채택해 가사노동에 관한 최초의 국제 노동 기준을 마련했다. 이어 2019년에 채택한 제190호 협약은 누구나 폭력과 괴롭힘이 없는 일터에서 일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국제 조약에 명시했다.

이러한 국제 기준을 마련한 것은 중요하고 환영할 만한 진전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루려면 공공 투자를 확대하고 돌봄 체계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

그동안 많은 정부는 돌봄을 각 가정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여겨 왔다. 아이를 돌봐 줄 사람을 찾고, 나이 든 부모를 부양할 방법을 마련하고, 돌봄 비용까지 어떻게든 감당하라는 식이다. 미국에서만 가족이 제공하는 돌봄 노동의 경제적 가치는 약 1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적으로 우리는 이미 과도한 돌봄 부담을 짊어진 가족 구성원들과 낮은 임금을 받는 돌봄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 더 나은 돌봄 경제를 만들려면 돌봄이 누구에게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사회 전체가 돌봄을 우선 과제로 삼아 함께 투자해야 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이러한 공동의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브라질은 국가돌봄정책을 도입해 돌봄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권리이자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일로 인정했다. 또한 돌봄 노동자의 양질의 일자리 보장과 노동권 보호를 정책에 명시했다. 인도네시아는 가사노동자 보호를 위한 획기적인 법률을 제정한 데 이어, 아동 돌봄과 노인 돌봄, 사회보장, 휴가 제도 등을 포괄하는 장기적인 돌봄 경제 로드맵을 마련했다.

브라질의 가사노동자연맹 페나트라드(Fenatrad) 회원들. 출처: 국제가사노동자연맹

우루과이는 가사·돌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장 포괄적이고 진보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 가사·돌봄 노동자들에게 다른 정규직 노동자와 동등한 법적 지위를 보장하고, 하루 8시간 노동제와 초과근로수당 의무 지급, 최저임금, 유급휴가 등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우리가 13개 주와 2개 도시, 워싱턴 D.C.에서 가사노동자 권리장전을 법제화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 법률들은 일반적으로 가사·돌봄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과 초과근로수당, 휴게시간, 안전한 노동 환경 등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며, 일부 지역에서는 유급휴가와 차별 금지 조항도 포함하고 있다.

우리 모두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지만, 각국이 이룬 진전은 중요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돌봄을 더 이상 개인이 감당해야 할 부담이 아니라 국가의 사회·경제적 기반을 이루는 필수 요소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G20은 이러한 변화를 더욱 빠르게 이끌 수 있다.

G20 회원국들은 가사·돌봄 노동자를 위한 국제 노동 기준을 강화하고,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더욱 튼튼한 돌봄 체계를 구축하도록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또한 가사·돌봄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과 생계를 좌우하는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가사·돌봄 노동자 운동을 통해 배운 가장 중요한 교훈은 변화가 G20과 같은 국제 정상회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변화는 고립되어 있던 노동자들이 서로를 찾아 연결될 때 시작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조직적인 행동에 나설 때 변화가 시작된다. 다만 G20과 같은 국제회의는 이러한 변화를 앞당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전미가사노동자연맹은 가사·돌봄 노동이 있기에 다른 모든 노동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고, 자메이카에서도 마찬가지다. 브라질과 인도네시아, 우루과이는 물론 G20 회의에 참여하는 모든 국가에도 해당하는 사실이다.

세계 경제는 이미 돌봄 노동을 바탕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제 우리의 정책과 어떤 노동이 가치 있는지를 바라보는 인식도 마침내 이러한 현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

[출처] The Global Economy Runs on Care
[번역] 이꽃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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