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한문 공부를 위해 ‘사자소학(四子小學)’을 읽었다. 사자소학의 첫 부분에는 ‘아버님이 날 낳으셨고, 어머님이 날 기르셨다’는 내용의 글귀가 실려 있었다.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날 낳으신 것은 분명히 어머니인데, 어째서 아버지가 날 낳으셨다고 표현 했을까? 이것은 초등학교 시절 나를 꽤나 골치 아프게 했던 문제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었고, ‘아버님이 날 낳으셨다’는 얘기가 어떤 맥락에서 나올 수 있었던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남성을 ‘씨’로, 여성을 ‘밭’으로 생각하던 우리 전통 사회에서 아이의 생명이란 그의 아버지로부터 기인한 것이었으며, 그 생명은 육체적인 생명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생명까지도 포함한 개념이었다. 그렇기에 아이는 아버지의 성을 따르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었으며, 그의 친권이 아버지에게
귀속되는 것도 부자연스럽지 않았다. 이러한 부계 혈통주의는 여성의 성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성숙된 지금에 있어서도 우리 사회 전반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는 유교적 사회주의 국가라 불리는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정권 수립 초기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혁명정권의 수립 방법으로 ‘가부장적 전통에 바탕을 둔 상부구조로서의 사회적 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였다. 그에 따라 1946년 7월에는 <북조선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을, 9월에는 <남녀평등권에 대한 법령시행세칙>을 발표하는 등 법적 조처들을 취함과 동시에,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노력으로서 탁아소와 유아원의 건립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1980년대 들어 부계 혈통주의의 전통이 국가적 차원에서 환원됨으로써 많은 부분 그 의미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주체사상을 통해 김일성 유일체계를 구축하고 김정일 후계체계를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사회정치생명체론’과 ‘사회주의 대가정’ 개념이 도입되었던 것이다. 아버지 수령으로부터 인민의 사회적·정치적 생명이 기인했다는 것, 따라서 전 인민은 수령의 영도 하에 하나의 거대한 가족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 특히 ‘사회주의 대가정’ 개념은, 1980년대 북한의 경기 침체와 맞물려, 남성 가장의 사회적 불만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로서의 ‘여성의 재가정화’의 훌륭한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가족 내에서의 성별 분업이 전사회적으로 확대되었으며, 가족 관계에서의 부계제 전통이 부활하였다. 1990년의 가족법 개정에 부계 친족으로 더욱 확대된 금혼 범위, 부성추종의 원칙 등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이산 가족 상봉으로 통일에 대한 열망이 고조되고 있는 지금, 남과 북의 동질성 회복은 온전한 민족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초석으로 여겨지고 있다. 긴 단절의 시간 가운데서도 남북 양쪽에서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자리를 지켜왔던 부계 혈통주의가 이런 흐름에 힘입어 ‘민족적 동질성’의 전면에 부상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은 나만의 기우인가.
통일은 서로의 같은 모습을 발견하고 서로의 다른 모습을 이해하는 과정만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일 뿐이다. 통일은 남북한 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제반 모순을 해결하는 변혁적 과정이어야 한다. 따라서 동질적인 민족성일 수는 있으되, 결코 변혁적일 수 없는 전통들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이 통일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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