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에서 대대적으로 사찰을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은 4월 중순 서울시내 일선경찰서 정보과에 공문을 보내 80년 이후 운동권들에 대해 재학 당시의 사상적 성향과 직책, 직장, 거주지, 한총련의 관여여부를 파악토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국민일보 7월4일자에 ‘운동권 출신 5천명 사찰’이라는 제목으로, 월간 말 8월호‘긴급문제제기’로 6쪽에 걸쳐 실렸다. 이중 월간 말에는 경찰청에서
지시한 사찰 대상자 명단 5백75명이 모두 게재됐다.
얼마나 사찰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할 일이 그렇게도 없습니까? 대체 국민의 세금을 받아서 하는 일이란 게 고작 뒷조사나 하고.” 작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박경렬씨는 총선이 끝난 직후 고향집으로 형사가 찾아와, 요즘 뭐하냐, 다른 일은 안 하냐, 이것저것 묻고는 심지어 부모님에게 이제 다른 일하지 않도록 단도리를 잘해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일장 훈계를 하고 돌아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뿐만 아니다. 일선 경찰이 가장 열심히 ‘자료를 수집했다’는 경희대는 올해 학생회장들까지 모두 사찰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구자훈씨(경희대 한의대학생회장)는 “청량리 경찰서에서 형사가 찾아왔었다. 한총련 대의원 관련하여 주로 한총련에 대해 묻고 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자훈씨에게 형사가 찾아온 것은 ‘총선 전’이었다고 말했다. 사찰지시가 있기 전부터 광범위한 사찰이 이뤄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이 사건을 취재한 월간 말 구영식 기자는 “5백75명의 명단은 급조된것이 확실하다. 실제로 얼마나 될런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말에서 인터뷰한 국민일보 기자의 말에 의하면 1만명선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구영식 기자는 덧붙여서 “이것(사찰)이 단순한 정보수집의 차원인지, 아니면 다른 활동의 일환인지 의혹이 생긴다. 예컨대 80년대의 학원팀이 실제 가동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러한 사찰에도 불구하고 사찰을 당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사찰을 당했는지 모르고 있거나 사찰을 당했다는 증거가 없다. 경찰청에서 당당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사찰을 ‘지시만 했지, 증거는 없’기 때문이다. 월간 말 8월호에 공개된 명단과 내용을 가지고는 불법 사찰이라고 보기에도 미약하거니와, 소송을 내기도 힘들다.
심지어 87년 집시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후 10년 동안 사찰을 받아오자 이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소송에서 승소판결을 받은 음영찬씨의 경우, 검찰은 자료를 파기시켜 자료가 없다고 발뺌을 하거나 ‘안보’ 차원에서 밝힐 수 없다고 버티고 있다.
이런 명단 발표가 있고서도 별다른 대응이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공개된 명단을 보고 자신이 사찰 대상이었다는 것을 알게된 이혜경씨(97년 동덕여대 총학생회장)는 “우선 너무 놀랬다. 그간 누가 찾아오거나 한 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사찰을 받고 있었다고 하니 어디에서 누군가가 날 쳐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들어 불안하다”고 말했다. 이혜경씨는 98년 1월 한총련 대의원 불탈퇴
로 집행유예를 받고 작년 8월 15일 복권됐다. 그러나 정작 이 불안감을 걷을 길이 없다. 명단이 포함된 5백75명은 평생 ‘보이지 않는 눈’의불안감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사찰은 ‘으레 있어 왔던 것’이라는 운동권의 의식이다. 학생회장이 되거나 학생회 간부가 되면 당연히 ‘보위’에 신경써야 하는 처지이다 보니, ‘사찰 정도야 피하고 조심하면 되는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의 박래군씨는 “법적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모든 관찰 행위는 불법 사찰이다. 보호관찰이라던가 현행범이라던가 하는 감시의 근거도 없이 단순히 전력만을 가지고 사찰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말한다. 특히나 운동권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은 헌법에 보장된 신체와 사상의 자유를 노골적으로 억압하는 공권력의 대표적인 폐해다.
<현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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