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언제 용서받는가를 묻기에는 아직 이르다.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duck52@jinbo.net)
지난 상반기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성폭력 사건의 발생과 그 해결을 위한 활동으로 매우 분주했던 시간이었다. 가깝게는 내가 속한 단체에서 또 각종 연대모임에서 그리고 지난 6월에는 운동사회의 성폭력 사건의 심각성을 함께 공유하고 그 처리 방안을 모색하고자 하는 토론회가 진행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토론회의 성과물로 (가칭)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100인위원회가 발족을 앞두고 있기도 하다.
운동사회내 성폭력 문제가 뭐 그리 새삼스런 문제일까. 10년 전의 사건도 아직 해결이 되지 않아 그 당시 얘기들이 전설(?)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기도 한 현실에서. 그렇다. 성폭력 사건은 아직도 끝나지 않는 전쟁처럼 피해자들의 가슴속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가해자들이 떳떳하게 대중들 앞에서 신자유주의 분쇄를 목청 높여 외치며 훌륭한 활동가로 추앙 받을 때 생존자는 아예 운동판을 떠났거나 아니면 가까스로 운동의 언저리에서 힘든 날개 짓을 하고 있을 뿐이다. 억울했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따가운 사회의 눈초리 아니면 조직보위를 위해 참아줄 것을 강요했던 운동사회의 더욱 따가웠던 눈초리는 차마 작은 소리마저도 눌러버리기 충분했던 것이다. 생존자 스스로도 결국은 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픔을 스스로 견뎌보려 하지만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그 사건으로 가해자는 또 다른 피해자들을 만들어내며 다시 생존자는 그 아픔을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해결되지 못하고 묻혀버린 그 사건은 결국 계속 그 생존자를 따라다니는 나이트메어가 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러한 악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무리 100년 전의 사건이라도 가해자는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
오래 전 벌어졌던 수원대 성폭력 사건에 1차 적으로 종지부(박진홍 6개월의 징계기간 마침)를 찍으면서 많은 응어리들이 녹아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어쨌든 징계기간을 상대적으로 성실히 수행해준 가해자에 의한 것이기도 했고 기간 해결 과정에서 온전히 2차 피해자인 여성활동가들의 몫으로만 방치되었던 것을 다른 활동가들과 공유할 수 있어서이기도 했다. 이 과정들은 가해자들의 사과문을 받고 징계를 결정하고 행하는 것에서 끝났던 이전의 경험을 뛰어넘어 가해자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생존자와 2차 피해자들이 징계처리 이후 겪을 2차 가해로부터 많은 부분 완충적인 역할을 해주었다. 또한 박진홍의 스스로 스터디 모임을 꾸리는 등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모습은 정말 다른 가해자들에게 “좀 봐라. 보고 우리에게 뭘 해달라고 징징거리지 말고 스스로 알아서해라”라고 말해주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성실하게 징계를 수행했다 하더라도 징계 이후 당연히 해당 단체로 복직된다는 수순은 애초부터 논의 자체가 우스운 것이었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빨간 줄을 계속 가지고 다니며 모든 사회 생활로부터 제약을 받듯이 빨간 줄만 쳐있지 않을 뿐이지 이미 성폭력 가해자로서의 운동 사회에서 위치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활동을 벌이는 것은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 다른 2, 3차 피해자(그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 피해자가 될 수 있다. 활동하면서 만날 수도 있고 안 만날 수도 있지만 그로 인해 불편할 수도 있다.)들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단체에서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것이 운동의 전부는 아닌 것처럼 그는 자신의 조건(성폭력 가해자이며 끊임없이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자신의 상황)에서부터 다시 운동을 만들어 나갈 수 있다. 그것은 굳이 사회변혁이라는 거대한 모토를 내걸지 않더라도 자신 스스로가 변화해 나가는 과정에서 조용하지만 힘있게 다가올 것이다.
손가락과 발가락을 총동원해도 다 세지 못할 만큼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지금도 해결 과정에 있는 사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어떤 사건도 흡족하게 해결되었다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최근 “가해자는 언제 용서하는가?” 혹은 “가해자는 언제부터 다시 운동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많이 접하게 된다. 형식적인 징계기간이 끝나고 평가하는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건 게시판의 가해자가 너무 불쌍하다고 하는 어떤 후배의 안타까움이건 반성폭력 운동은 가해자를 매장하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남성의 웃기지도 않은 주장이건 모든 질문에서 “지금 생존자의 심정은?” 혹은 “이번 사건으로 피해 받은 모든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용서할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최근 한 생존자로부터 가해자 재교육 프로그램에 관한 상담전화를 받고는 더욱 그 답답한 마음을 어찌할 바를 몰랐다.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그 시작도 그 과정도 모두 생존자와 주변의 2차 피해자들의 온전한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 모두들 너무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생존자와 2차 피해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가해자에 의해 파괴된 그들의 인권이 회복되었는지를 돌아보는 것 보다 쉽게 가해자를 용서하고 한 발 앞서서 나가는 것인지.
성폭력의 문제는 높은 수준의 여성적 관점을 요구하는 사건이 아니다. 성폭력은 엄연히 범죄이기 때문에 마땅히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일반 사회가 아니라 운동 사회라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 도 없다. 모든 것은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창원을 영원한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에 우리는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으며 5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투쟁에 이제는 잊어버리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가해자는 용서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러한 질문들은 생존자와 2차 피해자들에 목소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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