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여성활동가로서 적당한 선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좌파적이고 스마트한 것이지만 그 선을 벗어날 경우 예민한 여성활동가에 조직을 말아먹는 파렴치범으로 둔갑하는 것인가.
새로운 틀에 대한 합의, 부메랑이 가지는 효용과 얼마만큼 던질 것인가의 합의는 바로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길없는 거리로의 틀짓기, 특정방향에 대한 틀지움에 대해 지속적으로 반대해야 하며, 우리들이 지향해야 하는 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1차 가해자의 권력을 이용해 조직적으로 계획되기도 하며 1차 가해자의 권력에 2차 가해자들이 알아서 기기도 한다. 또 흔히 그것은 중간자의 탈을 쓰고 해결사를 자처하기 때문에(노기연의 경우는 오히려 막 나가는 경우다. 누가 봐도 가해자의 편을 들어주는 것이 확실하므로) 그것에 기댄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준다. 이번 김상복 사건은 이러한 2차 피해의 전형을 보여준 것이며 반드시 함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벌써 사건이 발생한 지 1달이 훌쩍 지나버린 지금, 아직도 틈만 나면 이대로 수사를 봉합해 버리려는 경찰과 검찰의 안이한 태도에서 법이라는 것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되묻고 싶다.
이주노동자는 별난 노동자가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부이고, 이 땅에서 억압받는 노동자의 일부일 뿐이다. 이주노동자는 여러분의 형제이고 동지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화는 G7정책을 똑같이 세계에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세계를 망라한 동일한 기구가 동일한 정책을 강요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각 나라마다 조건의 차이(아프리카의 특수한 상황 같은)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저항하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은 같다.
성폭력의 문제는 높은 수준의 여성적 관점을 요구하는 사건이 아니다. 성폭력은 엄연히 범죄이기 때문에 마땅히 처벌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일반 사회가 아니라 운동 사회라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 도 없다. 모든 것은 아주 상식적인 선에서 해결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신창원을 영원한 범죄자로 낙인찍는 것에 우리는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으며 50년이 지난 지금도 일본군 성노예 할머니들의 투쟁에 이제는 잊어버리자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가해자는 용서받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이러한 질문들은 생존자와 2차 피해자들에 목소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경제적 이익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에 팔아먹었던 수류탄이 동티모르 민 중의 생명을 앗아가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 국내적 수준의 사회복지확충이라는 차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민중의 인권문제와 연결지어 군수산업과 무기거래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하는 아이들이 갈등에 부딪혀 싸우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중재'라는 것을 통해 모두가 평화를 누릴 수 있음을 경험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건 갈등해결workshop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이기도 하고 유치원이 나의 멋진 실험실이기도 한 이유이다.
'라다크에서 배운다'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는 자본주식 개발을 통한 문명의 파괴를 라다크라는 지방을 통해 절실히 느끼면서 이에 대한 반경향 혹은 운동의 방향으로서 '반(反)개발'이라는 개념을 쓰기도 합니다. 어쨌든 개발 혹은 발전의 모델이 서구식 특히 미국이라는 단일한 문화로 집중되면서 다양한 토 착문명이 파괴되어지고 인간의 의식구조 역시 미국식 합리주의 속에서 그 다양성이 인정되지 않는 비인간화로 치닫고 있는 것에 대해 우리는 그 반경향을 적극적으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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