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이후 한국 군수산업의 현황
손상열 (평화인권연대 상임활동가, alterite@hanmail.net)
요즘 군수기업들은 회사이름을 바꾸느라 정신이 없다. 레이더 등 항공 전자전 장비와 군 통신장비등을 생산하는 LG정밀은 지난 5월 회사명을 ‘LG이코텍’으로 바꾸었다. ‘OO정밀’자가 들어간 기업가운데에는 군수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삼성항공도 지난 3월 ‘삼성테크윈’으로 회사이름을 바꾸었다. 이 회사는 항공기엔진과 자주포, 상륙 돌격용 장갑차등을 생산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군수기업이다.
물론 이들 군수기업들은 회사이름을 바꾼 이유가 “사업구조상 방위산업이외의 다른 부문의 비중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즉, 남북정상회담이후 변화하고 있는 남북관계 속에서 ‘군수기업’이라는 이미지를 탈색하려는게 이들 기업들의 본심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테크윈 관계자는 “남북 화해무드가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방산업체임을 부각해서 득될 게 없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편, LG이노텍 관계자는 “방위산업은 통일이 되더라도 필수산업이기 때문에, 그 중요성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해, 스스로 회사이름바꾸기 이면에 깔린 얄팍한 속셈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위기’를 느낀 무기생산업자들
멀게는 탈냉전이후, 가깝게는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군수기업들이 벌이고 있는 회생전략은 단지 ‘이름 바꾸기’에 국한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군수기업들이 위기를 느끼고 회생전략을 적극적으로 입안했던 시기는 IMF 금융위기를 전후해서이다. 그럼 도대체 IMF 금융위기가 군수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던 걸까?
99년도 국정감사자료에 의하면 “그동안 국내방산물량의 한계로 적정가동율 유지가 어려웠던 군수기업들의 가동률이 IMF이후 환차손 등으로 급격히 저하되었으며, 전반전인 경제불황으로 부도가 발생된 군수기업도 상당히 증가”되었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국내 군수산업 가동률은 96년 55.7%에 이르던 것이 98년에 이르러서는 52.8%로 떨어졌으며, 96년 1개업체에 불과했던 부도업체수도 98년에 이르러서는 11개 업체로 늘어났다. 이 대목에서 “군수산업의 상황이란 것이 민간기업에 비하면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것”이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국군수산업이 경쟁체제가 아니라 81개 기업에 의한 독과점생산체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 이같은 수치는 무기생산업자에게는 ‘위기’로 인식될 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커넥션 : 군수기업과 정부
그렇다면, 침체되고 있던 군수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해 군수기업들은 어떤 전략을 택했을까? 이 점에 대해선 당시 삼성항공이 제출한 ‘빅딜보고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삼성항공은 13쪽 분량의 보고서를 통해 ‘민수부문의 산업적 능력이 뒷받침 되는 분야에 있어서는 업체간 자유경쟁원리를 도입해 효율화를 기하고, 정부의 집중육성이 필요한 첨단정밀분야에서는 1개 업체에 자원을 집중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통신, 기동과 같이 민간부문의 기술과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 분야는 자유경쟁체제를 도입시키고, 항공기, 미사일, 유도무기등 첨단군수분야는 구조조정을 통해 독점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삼성항공의 구조조정안이 국방부가 같은 기간동안 추진하고 있었던 군수산업 구조조정방안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군수업계 관계자들은 이 일과 관련해 삼성항공이 이 보고서를 바탕으로 국방부와 산업자원부를 상대로 로비작업을 벌였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군수산업 구조조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군수산업 구조조정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우선 정부는 “군수요가 적거나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독과점체제를 유지시켜 중복투자를 해소하겠다”고 밝히고 있어, 군수기업간의 합병과 빅딜이 늘어날 전망이다. 이같은 정부정책의 사례를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지난 98년 설립된 한국항공우주산업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삼성, 대우, 현대의 항공기 제작부문이 동등한 지분으로 통합된 단일법인으로서 브리티쉬 에어로 스페이스같은 외국의 대표적인 군수항공회사를 모델로 만들어진 회사이다. 한국항공우수산업은 설립과 함께 정부로부터 대대적인 재정지원을 받아왔으며, 올해 2월에는 방위산업특별조치법에 의해 국내 항공기 물량 발주에서 독점적 지위를 같는 전문화업체로 발탁되기도 하였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여러 회사의 동종 군수생산부문을 결합해 효율성을 제고하려는 경우인 반면, 계열 3사를 합병한 대우통신은 약간 다른 합병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대우통신의 사례는 민간부분의 첨단기술력을 합병을 통해 끌어들여 군수품 생산에서의 경쟁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의 전형을 보여준다. 즉, 대우통신을 합병된 대우정밀등의 첨단민수기술을 활용해 전투함용 레이더같은 군수품을 첨단화를 꾀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는 그동안 해외자본의 투자를 원칙적으로 금지해왔던 군수산업부문에 대해서도 적대적 M&A를 포함한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즉 “방위산업체는 경영형편이 비교적 양호하기
때문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도 클 것으로 예상”되므로, “국가안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초래하지 않는 한도내에서 외국인 투자를 전면적으로 허용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에 따른 첫 번째 조치로 군사용 통신기기 등을 생산하는 대우 통신에 대해 다국적 투자펀드인 팔로미노펀드의 직접투자를 승인하기도 했다. 삼성전자와 프랑스의 대표적 군수기업인 톰슨사와의 합작회사 설립도 정부의 이런 정책에 따라 가능해진 것이다. 톰슨사의 합작사 참여는 한국의 무기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높히 평가한데에 따른 것으로 앞으로 초고속 정보통신기기 및 디지털 신호처리장치 등을 공동 개발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정부는 무기수출을 강화시킬 계획으로 각종 수출지원제도를 마련하는 한편, 잠재적 무기시장국에 대한 군사세일즈외교에 나서고 있기도 하다(본지 기사 ‘한국정부의 군사세일즈외교’ 참조).
무엇을 겨냥하는 것일까?
SIPRI연감 2000’에 따르면, 한국의 무기생산은 세계 9위로 집계되어 있다. 다만 다른 대표적 무기생산국과는 달리 내수용 무기생산이 90%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결국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군수산업 구조조정은 군수생산의 효율성 확보를 기반으로 적극적인 무기수출을 감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어차피 내수용 군수물자의 한계가 명확한 바에야 이윤창출이 가능한 수는 이것밖에 없을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군수산업 활성화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문제이지만, 한국이 개발한 대부분의 무기가 동남아시아로 흘러들어가는 상황에서 한국제 무기가 인권탄압에 그대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이런 예는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을 챙긴다는 명목으로 인도네시아에 팔아먹었던 수류탄이 동티모르 민
중의 생명을 앗아가는데 사용되었다는 사실. 국내적 수준의 사회복지확충이라는 차원뿐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 민중의 인권문제와 연결지어 군수산업과 무기거래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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