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과 시선의 문제

김상철 (평화인권연대 회원)

누구나 알고 있듯 노벨 평화상은 다이너마이트의 발명자 노벨이 제정한 상의 일부이다. 본래 그는 다이너마이트를 광산에서 채취작업을 용이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다이너마이트가 전쟁에서 ‘사람을 죽이는 일’로 사용되었고 그 때문에 노벨은 많은 후회를 했다고 전해진다. 일정정도 후세의 윤색을 감안하더라도, 노벨이 전쟁을 위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결국, 노벨 평화상이라는 것은 탄생될 때부터 야누스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역대의 노벨 평화상 면면을 보더라도 많은 수상자가 세계의 각종 분쟁지역에서 배출되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은 노벨 평화상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런데, 남한의 일등주의는 세계의 권위 있는 그럼에도 하나의 상일 뿐인 노벨상에 너무 많은 권위를 부여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한 전국적인 관심은 우리에게 팽배해있는 비정상성의 일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엇을 기대해서 주는 것이 아니라 특정 결과에 대해 주어지는 것이다. 실제로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케 했던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의 평화협정은 일촉측발의 위기상황으로 전개되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노벨 평화상이 한반도의 평화유지를 보장해 주리라는 기대는 헛된 것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의 특징적인 사건에 대해 주어지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수상은 6-15 공동선언이라는 그 사건 자체에 대한 의미 부여인 셈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던 남한의 기형적인 노벨상 심리는 김대중대통령의 모든 것에 대한 보증표인 양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지뢰협약’에 ‘전쟁 가능성’을 이유로 가입하지 않았음을, 통일 후에도 주한 미군이 존재해야된다고 공언을 했다는 사실을, 그리고 김대중 대통령의 재임시에 최근의 민혁당 사건이 보여주는 것처럼 여전히 많은 공안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너무나 쉽게 잊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럼에도 김대중 대통령의 수상을 둘러싼 논쟁들은 언제나 기존의 친김대중이었나 아니면 반김대중이었나라는 갈등선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그리 미덥지 않은 반응을 보일라치면 으레 ‘뭐가 그리 불만이 많나’라는 시선을 아니면 ‘사실 김대중이 그만한 자격이 되나’라는 식의 정치 공세(?)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가장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김대중의 수상은 축하할만한 일이다 그런데..’라는 단서를 사용하면서 그 양자의 함정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이라는 개인의 특정 부분을 긍정하고 동시에 특정부분을 부정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다시 말해서, ‘통일 후에 주한미군이 주둔해야 된다라는 말에는 반대이지만, 일단 남북 공동성명은 환영한다’라는 말이 정말 타당한 논법일까. 전후의 관계를 따지자면, 통일 후 미군 주둔은 ‘남북 공동성명’의 전제라고 볼 수 있다. 공동성명 후 김대중 대통령의 공개적인 언급도 그렇고, 김정일은 무반응으로 그러한 전제에 대한 동의를 보였다. 그렇다면, 현재의 남북화해무드는 이미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중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한 방향의 물줄기를 놓고 ‘이 물줄기는 바람직하지만, 저건 나뻐’라는 말이 실효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이 든다.

이는 결국, 시선의 문제를 야기 시킨다. 위에서 보면 원으로 보이다가도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보이는 원뿔의 원리라고나 할까. 여전히 휴전선 주변에 숨어있는 대인 지뢰들에 시선이 가있는 사람이라면, 김대중대통령의 노벨평화상은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통일한국보다는 국가보안법이 없는 남한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면 지금의 통일논의는 허상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평가들이 한 개인을 향한 것이라면 다양한 시선이라는 것은 그 개인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에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 분명하다. 이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 방법은 한 개인의 여러 측면을 몇 가지 부분으로 계열화시키고 자신의 특정한 시선에 합당한 부분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한다. 다시 말해,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계열화되는 맥락은 김대중 대통령의 평화정책이라는 것으로 계열화하고, 남북 공동성명에 가중치를 부여한 사람은 노벨 평화상 수상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할 것이고

국가보안법이나 휴전선 지뢰 혹은 군축에 더욱 큰 시선을 두는 사람은 평화상 수상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일 것이다.

매우 당연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는데, 경제문제나 신경 쓰라고 딴죽거리는 야당이나 언론이 대표적이다. 도대체 ‘갖다 붙일 때 갖다 붙이라’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이 정말 평화상을 수여할 만한 인물인가라는 논쟁은 시작되지도 않았고, 그에 따라 남한의 인권·평화단체의 그간 주장들은 묻혀버렸다.

다만, 남한의 정신수준을 한없이 떨어트리고 있는 ‘주막강아지’의 외침이 만이 허한 웃음을 안겨주는 우스운 정국에 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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