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경비구역 JSA> 빨갱이와 빨갱이의 적, 그 거리를 어떻게 메울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보초를 서다 친구가 된 남북한 병사 네 명은 밤이면 북측 초소에 모여 같이 재미나게 놀았다. 어느날 밤, 남한 병사가 준 초코파이를 먹던 북한 병사가 말했다. “우리 조국은 왜 이 맛난 걸 못 만드나 몰라” 그러자 남한 병사는 “귀순해, 그럼 초코파이 많이 먹을 수 있잖아”하고 농을 건넸다. 갑자기 정색을 한 북한 병사가 차려 자세로 고함을 질렀다. “다시는 그런 말 꺼내지도 말라. 내 꿈은 우리 조국이 이보다 더 맛있는 초코파이를 만드는 거이야.”
반목과 대결의 분단 반세기를 보낸 남북한 두 사회는 한 민족이라고만 부르기엔 참으로 다른 문화와 정서를 지녔다. 그저 다르기만 한가. 양자는 서로에 대해 뿌리깊이 불신하며 적대적이다. 그래서 초코파이 하나도 더 잘 만들어야 하고, 축구를 하면 반드시 이겨야 하고, 국기 게양대도 더 높이 세워야만 속이 편하다. 내 또래만 해도, 이승복 기념관 방문은 수학여행의 필수 코스이며 인민군을 늑대나 승냥이떼에 비유한 ‘무찌르자 공산당’ 포스터를 숱하게 그리며 자라난 세대였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그렇게 다른 환경 속에서 20년이 넘게 자라온 양쪽 젊은이가 만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비무장지대 수색 도중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된 이수혁 병장은 북한 테러리즘의 흉기처럼 길러져 세계 각지의 특수전 교관으로 떠돌다 온 오경필 중사의 도움으로 살아난다. 목숨을 구해주고도 담배한 개피에 만족하며 돌아서는 오중사의 소탈함에 신뢰를 느낀 이병장이 편지에 “형이라고 불러도 돼죠?”하고 적어서 돌팔매로 북측 초소에 던지면서 남북간의 위험한 우정은 시작된다. 인생의 황금기를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져 군에서 2년, 혹은 10년 넘게 썩어야 하는 열혈 청년들이 좁은 초소에 모여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술 마시고, 닭싸움하고, 초코파이 나눠먹고,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며 서로를 위로하는 것뿐이다. 그러다 어느새 호칭도 ‘동무’에서 ‘형’으로바뀌고 바야흐로 경계를 초월한 우정이 한창 꽃필 무렵, 예기치 않은 북한군의 등장으로 총격이 벌어지면서 위험한 만남은 비극으로 끝난다.
이념과 체제를 초월한 우정의 결말이 비극인 것은 비단 형, 동생 하던 누군가가 죽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건이 모두 끝난 뒤에도 남아 있는 진짜 비극은 닭싸움을 할 때도, 술잔을 나눌 때도, ‘이등병의편지’를 같이 들을 때도 드러나지 않다가 결정적인 순간 이빨을 드러낸 분단 반 세기의 지독한 이데올로기 주입의 효과다. 각자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게 된 서글픈 순간, 울먹이면서 “어차피 우린 적이야”를 외치던 이병장이 그랬고, “내가 수혁이였다면 내가 먼저 쐈을 겁니다”하고 고백하던 오중사가 그렇다.
한 개인이 자신이 처한 물질적 환경과 조건을 완전히 초월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상에는 빨갱이와 빨갱이의 적, 두 종류의 인간만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수 십년을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베어버린 그 무엇은 남북한 정상이 만나 악수를 하고, 이산가족이 만나 눈물을 흘리는 순간에도 불신과 적대의 희미한 자락으로
끊임없이 남아 있다. 그래서 ‘만세’를 열창하며 우는 평양시민들을 보면 ‘짜고치는 고도리가 아닐까’ 의심하고, 평양소년예술단 공연을 보면서도 ‘획일화된 집단주의의 광기’때문에 마음이 불편하다.
그쪽 사람은 무슨 말을 해도 도무지 100% 순수하게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영상물등급심의위가 ‘북한군을 미화해 청소년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연소자 관람불가 판정을 내렸을 만큼(!) 친근하고 소탈하게 그려진 영화 속의 북한 병사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우리를 가로막고 있는 실정법이란 얼마나 우스운 것이며, 당신과 내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상기시킨 것만으로도 <공동경비구역JSA>는 잘 만든 영화다. 특히 젊은 관객들의 반응이 엄청나다고 한다.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 통일에 대한 별다른 낭만을 지니지 않은 세대에게도 가슴 절절하게 호소하는 감동어린 휴머니즘 영화인 셈이
다. 그러나 모든 차이를 상쇄하는 휴머니즘에 기초한 가슴절절한 감상은 때때로 얼마나 위험한가. 통일 후 독일에는 가난한 동독인을 비웃는 ‘오씨’라는 속어가 생겨났다. 서독의 기업이 동독 사람들을 저임금으로 착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통일로 가난한 동독 사람을 부양하게 되어 불만인 서독인, 마찬가지로 괴로운 동독인들도 많다. 그러나 통일 당시에는 어땠을까. 갑작스럽게 불어닥친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낭만적인 감상은 그모든 부담과 비용을 감당하게 독일인들을 부추겼다. 그리고 환상이 물 건너간 자리에 남은 것은 오랜 분리 기간이 남긴 배척과 이해득실을 따지는 경제 논리였다. 수 십년간의 분리 상태를 극복할 어떤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경제, 정치적 이해 관계로 불거진 갑작스런 통합이 남긴 씁쓸한 상처였다. “우리는 어차피 적”이라고 외치던 이수혁 병장과 오경필 중사의 수십년 간의 거리를 메워줄 것은 순간의 감상도, 돈도 아니라는 말이다.
<장성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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