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체 사상과 북한 사회
북한식 개발 이데올로기로 강요된 주체 사상
주체사상은 북한 정치권력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정당화 이데올로기이자 사회를 지배하기 위한 지배 이데올로기이다. 그리고 주체사상은 북한 사회에 흡수되지 않았으며 사회는 주체사상이 호명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에 반대하는 것은 북한 정권과 한국의 보수반공주의자, 그리고 북한(정권에만) 우호적인 세력들이다.
우리는 이에 개의치 않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주체사상은 한마디로 ‘혁명과 건설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혁명과 건설을 추동하는 힘도 인민대중에게 있’으며 ‘자기 운명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며 자기운명을 개척하는 힘도 자기자신에게 있다는 사상’이다. 1982년에 김정일이 발표한 [주체사상에 대하여]이며 주체 사상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철학적 원리, 사회역사 원리, 지도적 원칙으로 그 기본체계가 꾸려져 있다. 철학적 원리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라는 두 가지 테제로 이루어지며, 이에 기초해 사회역사의 운동법칙을 밝히는 사회역사 원리는 ‘인민대중이 사회역사의 주체’라는 테제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민대중이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령)의 지도를 필요로 한다고 한다. 지도적 원칙은 ‘자주적인 입장의 견지’, ‘창조적 방법의 구현’, ‘사상을 기본으로 틀어쥐어야 한다’는 3개 테제로 구성된다. 이러한 기본체계에 더하여 주체사상은 주체사상, 혁명이론, 영도방법의 3대 구성으로 이루어진 전일적인 체계를 형성하면서 맑스레닌주의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그것을 대체한 독창적 개념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주체사상은 언제 형성되었을까. 북한의 공식입장은 그 시점을 항일무투로 소급시킨다. 즉 1930년 만주 길림성 장춘현 카륜에서의 ‘공청 및 반제청년지도간부회의’에서 김일성이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고 이후 실천을 통해 혁명 지도사상으로 완성되었다 한다. 그러나 이 입장은 매우 정치적 주장일 뿐이고, 주체사상이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하고 북한의 지배이데올로기로 자리잡는 과정을 검토해야만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북한의 ‘주체’기획은 국내외적 배경으로부터 독립적이지 못했다.‘주체’기획을 강제한 요인으로는 먼저 56년 후루시쵸프의 탈스탈린화로 인한 중촵소, 조촵소 분쟁과 이로 인한 공산주의진영의 분열이다. 북한은 이에 탈소련화와 스탈린화로 대응했다. 즉 소련의 맑스레닌주의로부터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스탈린식 개인숭배로 나아간것이다. 이것은 해방이후 북한 정권 사상 최대의 위기였던 56년 ‘8월 종파사건’을 발생시키게 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외세’인 최창익과 박창옥 등 소련파와 연안파가 최종적으로 숙청된다.
한편, 1962년 쿠바 미사일위기, 베트남전, 5·16군사쿠데타 등 일련의 사건들이 북한에 불안정감을 증폭시켰다. 66년의 조·중 갈등은 베트남전에 대한 중국의 대응에서 비롯되었고 이는 북한의 자력갱생식 의지를 강제했다. 때마침 발생한 중국의 문화혁명은 홍위병이 국경을 월경하면서 중국노선의 수용을 강제했는데 북한은 ‘자주성을 옹호하자’(66.8.12)는 슬로건으로 대응한다. 무원고립의 상황에서 정권의 도덕성을 확보하고 인민들에게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방식은 ‘주체’ 기획 외에는 없었다. 이를 ‘강요된 주체기획’이라 하면 심한말인가.
주체사상은 크게 4단계를 거치면서 발전했다. 1950년대는 내재적 주체성 확보를 위해 주체확립이 제기된 시기이다. 55년 12월 28일 김일성은 ‘다른 나라의 혁명이 아니라 조선의 혁명을 하고 있다’고 하면서 ‘주체’가 혁명의 원칙과 경험의 북한에로의 적용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이는 소련과 북한간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북한 국내에서 무력화시키고자 했던 정략적인 시도였다. 60년대에는 조선로동당과 정권의 자주성 확립문제로 확장되고 이것이 곧 주체사상이라는 개념으로 비로소 제시된다. 주체사상은 맑스레닌주의를 조선혁명에‘창조적으로 적용한’ 로동당의 혁명사상으로 제시되었다. 60년대 후반에 주체사상은 김일성의 유일지도체계형성이라는 정치변동에 영향을 받으면서 이론적 체계화(철학과 역사관으로 인식의 확장)와 함께 김일성의 통치담론이 되었다. 특히 67년은 양파껍질을 벗겨내듯 당내숙청이 재개되고 1인 절대권력체제의 전면화와 개인숭배구조가 정착된다. 70년대 중반 주체사상은 김일성주의를 천명하고 자기완결성을 갖는 논리적 구조를 갖추게 된다. 그 결과 맑스레닌주의를 ‘대체한’ 사상·이론·방법의 전일적 체계사상으로 천명되었다. 82년 김정일이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발표하면서 주체사상이 완성되었다. 남한의 변혁운동에 주체사상이 활용된 것은 이로부터 몇년 안 걸렸다.
이상으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주체사상(김일성주의)은 스탈린주의, 마오주의와 마찬가지로 맑스레닌주의의 민족적 토착화였다. 루마니아 사회주의의 주체 기획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의 마오주의가 그랬듯이 주체사상은 언필칭 ‘주체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내외부로부터 ‘강요된 사상’이다. 심지어 그것은 북한식 발전노선을 위한 개발 이데올로기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남한의 유신 이데올로기와 마찬가지로 권위주의 정권의 지배이데올로기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여 변혁을 추구하고자하는 그 모든 시도는 철저히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일 수밖에 없다. 북한 사회에서 주체사상의 사회 침투력은 거의 제한적이며 사회는 자체의 동력으로 돌아가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차문석/성균관대 강사,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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