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를 읽는 키워드 ⑩ 민주주의
민주주의와 보건의료정책
민주주의란 ‘다수 인민에 의한 지배’, ‘국민주권’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사회의 다수가 국가를 지배한다는 내용의 정치이념이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 민주주의 위기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한편으로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대표의 실패)로, 다른 한편으로는 ‘관료주의’라는 문제로 나타난다. 전자는 국민의 의사가 대표자의 전횡에 의해 훼손되고 왜곡되고 있는 현상이며, 후자는 행정관료들의 재량권이 늘어나면서 시민의 자율영역이 침해당하고 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최근에는 의회나 행정부가 가진 권력을 국민들에게 다시 분배하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예컨대, 교육 문제에 대한 결정권한을 의회, 행정부, 재단에서 교육관련당사자(학생, 학부모, 교사, 교직원)에게로 이전시키려는 시도(학교운영위원회),행정절차에 시민들의 심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는 것(행정절차법)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적어도 ‘정치적 민주주의’의 수준에서는 질적으로 뛰어난 대안들이며, 이것이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와 결합 되었을 때, 우리는 민주주의의 완성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의료개혁을 둘러싼 의료계의 주장과 정부의 정책은 이러한 ‘민주주의의 확대/발전’이라는 잣대로 볼 때 매우 우려되는 점이 많다. 먼저 의료계가 상설적인 의결/집행기구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보건의료발전특별위원회’에 의사가 과반수 이상이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해하기 힘들다. 의료정책의 또다른 당사자인 노동자, 농민, 소비자가 동등한 자격으로 그 결정과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측면에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의료계의 ‘지역의약협력위원회’ 철폐 요구도 문제가 많다. 이 위원회는 의약품선택권에 국민들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장치이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지역의약협력위원회는 관변단체나 지역유지들에 의해 구성되고 있다는 문제를 안고 있기는 하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의사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료 부담액을 무려 3조 7천억 정도 인상했는데, 이 과정에서 국민적 합의가 전무했다는 사실은 보건의료정책이 과연 ‘국민’을 위한 것인지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는 의사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우리의 경우 정책결정과정에 있어 전문집단조차도 독재정권과 행정관료에 의해 배제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과학기술정책에는 과학자들이, 문화예술정책에는 예술인들이 배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이 우리 현실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정책에서 소외되어 왔던 의사들이, 그동안 복지부 관료가 독점하고 있던 보건의료정책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겠다는것 자체는 분명 민주주의의 진전이다. 하지만 이것이 보건의료정책에 있어서의 의사들의 독점권 주장(이른바 ‘배타적 전문주의’)로 왜곡되고, 결과적으로 노동자, 민중, 소비자가 배제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민주주의의 퇴행을 가져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민의 지배’를 확대하는 것이지, ‘특정계층의 입장’을 배타적으로 관철시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성수 /제2대학 중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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