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문학가 정휘창씨의 동화 <원숭이 꽃신>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사계절 식량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은 비옥한 땅에서 살던 원숭이가 척박한 땅에서 늘 식량 걱정을 하며 사는 오소리에게 꽃신 선물을 받게 되는 이야기 말이다. 약간 불편하긴 해도 신으면 따뜻하고 발을 보호해 주는 예쁜 꽃신을 공짜로 얻어 신게 된 원숭이는 오랜 세월, 거친 땅에 단련된 발바닥의 굳은 살이 사라져가는 것을 알지 못하고 꽃신의 편리함에 매료된다.

결국 원숭이는 꽃신 없인 한 발자국도 걷지 못할 처지가 되어서야 모든 것이 자신의 양식을 노린 오소리의 꾀였음을 깨닫지만, 꽃신을 만들 능력이 없는 그로서는 울며 겨자먹기로 오소리의 꽃신을 많은 양식과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근래 차세대 영상이동통신(IMT-2000)의 표준방식을 둘러싼 기업들의 대결이 화제가 되고 있다. 동기식이냐 비동기식이냐를 놓고 벌이는 이 싸움은 e-business 시대의 새로운 표준을 선점하기 위한 거대기업간 대결의 하나라고 한다. 기술변화가 빠른 e-business 시대의 특성에 비추어 “표준장악이 곧 성패의 열쇠”가 되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정작 어떤 방식으로든 이것을 이용하게 될 일반 소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극히 기술적인 문제여서 소비자가 개입할 여지 따위는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하거나 결국 기업들의 이윤 싸움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 같다.

이런 생각은 당연할 뿐더러 어쩌면 사실일 지도 모른다.

자동차를 운전하기 위해 엔진의 작동원리를 알 필요가 없고 컴퓨터를 사용하기 위해 CPU의 동작원리를 알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비자는 그저 생산된 완제품의 성능을 비교하고 취향에 맞춰 소비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디지털로 포장된 현대의 과학기술은 고도의 전문성을 내세워 그 개발과정으로부터 소비자를 소외시키고 고도로 분화된 작업과정을 거치며 생산자마저도 소외시킨다. 온라인 상에서 소비자 개인의 정보가 가장 가치있는 상품으로 거래되고 있음에도, 각 개인은 나름대로의 판단능력과 비판능력을 가진 소비주체가 아니라, 주어진 한계 내에서 산업자본이 판단한 가치를 선택하는 객체에 그치고 만다.

우리는 우리의 굳은 발바닥으로 어디든지 갈 수 있어야 하며 구태여 신이 필요하다면 거칠게나마 스스로 만들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만드는 일이 극히 비효율적이라고 반박한다면, 내가 신을 신의 디자인이나 성능에 최소한의 의견을 반영할 권리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꽃신을 제공하는 오소리는 저기 저 거대기업이 아닐 지도 모른다. 효율성을 내세우는 자본에 자신의 판단을 맡기고자 하는 나태와, 주어지는 선택에 만족하려는 내 안의 수동성이다.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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