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적인 기준도 여성들은 비껴간다?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duck52@jinbo.net)
최근 단연 검색어 순위 1위는 ‘백지영’이랍니다. 어떤 해커에 의해 Lock이 풀리면서 안본 사람이 없을 정도라죠? 저는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투시카메라 어쩌고 하는 기사를 하도 많이 봐서 이번에도 조작된 사진이겠거니 스치고 지나갔었거든요. 그 때는 백지영씨 측에서 고소하겠다며 완강히 아니라고 했구요. 근데 사건이 정말 우습게 역전되지 않았습니까? 그 비디오에 출연하는 남자가 보무도 당당하게 ‘그 사람이 바로 나요(이름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데 백지영씨 처음 매니저였던 사람이라고)’라고 지껄였다죠? 그리고‘비디오 속의 여자는 백지영이 맞다’고 했고요. 그래서 백지영씨 측에서 완강하게 자신이 아니라고 거부하다가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던 거구요.
저는 이 기사를 읽기 전까지 개그맨 주병진의 성폭력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는 입에 개거품을 물고 있었습니다요. “아니 할 짓이 없어서 여자를 패?”, “패는 것도 모자라서 억지로 성폭행을 해?”, “주병진이 평소에 인간성이 안 좋아 보였어…” 등등의 얘기를 술안주 삼아 얼마나 여성으로 살기가 힘든 사회인가 악을 써가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었죠. 그리고 얼마 후 이 사건이 터진 것이야요. 근데 너무나 웃긴 거는요, 주병진 사건이 그냥 쏙 들어가 버린 거예요. 그리고 보였던 언론이나 주변의 반응도 웃겨요. 주병진 사건의 경우 상대 여성이 꽃뱀이었다느니, 처음부터 계획된 사건이지 않으면 병원 가서 정액까지 채취했겠냐는 등 갖은 억측을 부려 주병진을 감싸기 급급했으면서 백지영씨 사건의 경우는 글쎄 대번에 “백지영이 단란주점 출신이라며?”하는 거 있죠?
이번 사건을 보면서 작년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O양의 비디오’ 사건을 떠올리게 됐어요. 너무 비슷하잖아요? 조금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작년의 오현경씨에 대한 무지막지한 질타와는 조금 다르게 ‘백지영 안됐다’론이 조금 우세하다는 것. 그래서 한국에서 메스컴과 도덕론자를 가장한 마초들에 의해 추방당한 오현경씨와는 다르게 기자회견도 할 수 있었고 다시 활동하고 싶다는 의사를 조심스럽게 비췄다는 것. 뭐 이런 것들이 다르다면 조금 다른 상황인 것 같군요.
그래도 역시나 말도 안 되는 ‘포르노’ 운운하거나 공인으로서 어떻게 운운하는 사람들은 적은 수는 아니더군요. 그리고 꼭 아이들 교육상… 하는 말도 빼먹지 않고요.
뭐 연예인이던 아니던 지가 성생활을 담은 비디오를 찍고 싶으면 찍는 거지요. 상업적 목적을 갖지도 않은 건데 ‘포르노’니 뭐니 하는 것도 웃기고요. 누구든 남의 성생활에 간섭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여기서 작년 오현경씨 사건 때와 마찬가지로 참 웃긴 공통점 하나를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요, 그것은 그 비디오에서 남자주인공들의 태도입니다.
때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짠’하고 나타나 ‘내가 바로 걔요’라고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이번 사건 있기 전부터 나는 유명했었노라고, 그러니까 오해하지 말아달라고 하며 그녀를 진정 사랑했었노라고 부르짖으며 화려하게 컴백을 하죠. 아! 이쯤에서 백지영씨 비디오의 그 남자도 가수로 컴백(무슨 발라드 가수였다고 하네요)하는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도 별로 무리는 아닐 듯 싶군요. 이런 생각을 해봐요. 어떤 잘 나가는 남자 가수나 영화배우의 성생활이 담긴 비디오가 인터넷에 공개되었다면요 과연 잘난 대한민국 사회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 비디오의 여자주인공들이 지금 오현경씨나 백지영씨 비디오의 남자주인공들처럼 당당하게 자신을 밝힐 수 있었을까. 물론 못 밝힐 것도 없겠지만 밝히고 난 이후에 오현경씨 비디오의 그 남자주인공(또 이름이 기억나지 않네. 지금 어떤 인터넷 성인방송국에서 맹활약중이라고 하던데)처럼 새롭게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꿈에도 그리던 방송계로 진출할 수 있었을까. 어림없겠죠?
백지영씨가 스타가 되기 위해서 성 상납을 했다는 얘기도 왜 있잖아요. 뭐 일리 있는 말이죠. 제가 연예계 쪽에 정통하진 않아도 가수면 노래 잘해야 하고 영화배우면 연기 잘해야 한다는 것은 이제 그야말로 지나간 옛노래 아닌가요? 한 번이라도 더 TV에 출연하려면 피디들에게 잘 보여야 된다는 얘기는 더 이상 놀라운 얘기도 아닌데요. 어디 그런 것이 연예계뿐이겠어요? 뭐. 그 쪽이야 뭐 워낙 일상화된 관례처럼 되어 있다고 하지만 교수와 학생 혹은 조교와의 관계(예전 신교수 사건도 직위를 이용해서 조교를 성적으로 희롱한 경우잖아요? ‘아줌마’라는 TV 드라마를 보니까 거기도 나오던데요. 교수와 조굔지 학생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고 그런 관계), 직장 간부와 부하 여직원과의 관계… 작년 사건이지만 보건의료노조 성폭력 사건에서도 마찬가지로 새로 뽑힌 노조 간부가 그 전대 노조집행부에게 새로 구성될 노조에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하며 성폭력을 범한 사건도 있었죠. 너무나 일상화된 얘기예요.
근데 이 대목에서 웃긴 게 있어요. 무엇이든 논리적으로 구조적으로 분석하기 좋아하는 사람들도 어째서 이런 성적인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그 사건을 둘러싼 구조적 모순에 관해 말하지 않고 어째서 여성 개인의 품행의 문제로 돌리려 하냐는 거죠. 남성들의 화려한 여성 편력은 능력 있는 사람쯤으로 취급되면서 여성들이 당한 명백한 성폭력 문제에서 ‘그럴 만 하니까 그런 일을 당하지’라고 대뜸 말이 나오는 것은 뭔가 잘못되고 한참 잘못된 것 아닌가요? 짧은치마 입고 늦은 밤길을 걸어가면 다 성폭행 당해도 싸다는 얘긴가요? 남이야 짧은치마를 입던 말던 무슨 상관들이죠? 어째서 성폭행 가해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이 상황에서만큼은 피해자 여성 개인의 몸가짐 문제로 문제를 돌려지는 건가요. 백지영씨 사건만 해도 백지영씨가 단란주점에서 일했으면 했고 안했으면 안한 거지 그게 이번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입니까. 어째서 그 비디오 테입을 자신의 돈벌이 목적으로 유포한 사람이나 친구들끼리 신나게 동영상 돌려보고 나서 ‘여자가 말이야’하면서 술자리 안주로 씹는 사람들을 욕하지 않는 겁니까.
백지영씨가 다시 가수생활 하든 하지 않든(제가 원래부터 상품화된 백지영의 모습은 아주 싫어했었거든요) 별로 관심은 없지만 백지영이 나오는 걸 보면 비디오 생각이 날 것이고 아이 교육상 아주 좋지 않다는 사람들에 의해 밀려서 못나오는 거라면 저라도 가서 풍선 흔들어주고 싶네요. □
이 기사가 마음에 들었다면, 좋아요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