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이라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귀농학교일기4)
엄익복 (평화인권연대 회원, iknow@netian.com)
일주일에 두 번씩 두 달간 진행된 귀농학교가 끝났다. 귀농학교일기도 벌써 네 번째 쓰게 되었다. 어설픈 글쓰기에 종이 낭비만 될 것 같아 처음에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귀농학교에 참여한다고 했을 때, 오리가 던진 한마디에 느낀 바가 있어서 자발적으로 쓰겠다고 한 것이다.
“혼자 하지 말고 함께 나눠봐 좀.”
그게 맞는 것 같다. 글을 잘쓰건 못쓰건, 내 생각이 옳건 그르건, 내가 경험 한 것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모두가 동의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저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 번 읽어보고 공감해 준다면 될 것 같다. 나중에 귀농을 하게 되면, 그때는 귀농학교일기가 아니라 귀농일기를 쓰게 되었으면 좋겠다.
귀농학교를 통해서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귀농이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 귀농하는 것이 생태환경과 어울리는 삶을 사는 길이라는 것,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살아야 귀농할 수 있다는 것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크게 배운 것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도 알고 보면 나의 기준일 뿐, 경우에 따라서는 다르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생협활동을 할 때도 생활 속에서 흔히 우리가 갖고 있는 인식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해주는 몇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생협에서 사과를 주문하면, 사과 크기도 다 다르고, 벌레 먹은 것도 섞여 있고, 윤기도 별로 없는 것을 주면서 값은 더 받는다. 일반 시장에서 사과를 산다면 더 예쁘고, 깨끗하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값이 싼 것을 고를 것이기에 생협에서 판매하는 사과는 그런 기준에 완전 미달이다. 하지만 일반 시장에 나와 있는 사과가 농약과 제초제, 빛깔 내는 왁스로 범벅이 되어 있음을 알고부터는 생협에서 판매하는 사과
들이 참 맛있어 보이게 된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사과를 먹을 때와는 전혀 다른 인식을 갖게 된 것이다.
얼마전 어느 후배가 이런 얘기를 했다. 배추가 맛있어 보여서 먹으려고 했는데, 배추아래 흙에 벌레가 우글우글한 것을 보고 입맛이 딱 떨어져 안 먹었다는 것이다. 나 같으면 배추에 농약이 안들어갔다는 믿음이 생겨 더 맛있게 먹었을 텐데… 마찬가지로 똑같은 사물을 보고 전혀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시골에 가면 참 불편한 것이 화장실이다. 재래식 화장실은 냄새나고 지저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세식 화장실이 얼마나 강물과 바다를 오염시키는지 어려서부터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오히려 수세식 화장실을 보면서 지저분하게 느낀다고 한다. 인도의 어떤 아이들 얘기인데, 내가 깨끗하다고 느끼는 것이 정말 그런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인도의 거리는 쓰레기가 널려있고 지저분하다. 인도를 방문한 한 환경활동가가 이것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왜 이렇게 환경을 파괴하는 거야?’ 하지만 금방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정말 환경을 파괴하는 것이 이들일까 하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인 인도는 쓰레기 처리도 엉망이고 거리도 지저분하다. 그에 비해 서구 부자 나라는 철저한 쓰레기분리수거와 쾌적한 환경 조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이중에 어느 쪽이 환경 파괴의 주범일까? 사실 현재 지구촌의 환경위기는 서구 부자 나라의 지나친 소비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질을 알고 보면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많다.
귀농학교에서도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고 생각을 전환하기 위한 많은 얘기가 있었다.
귀농학교가 끝날 무렵에 생태공동체와 자립적 삶에 대해 말씀해주신 푸른누리 공동체의 최한실 님은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단순 소박한 삶을 소개해 주셨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만큼만 농사를 짓는데, 농약이나 제초제, 화학비료, 농기계를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비닐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집안에서는 가전제품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며 최근에는 그나마 한가지 이용하고 있던 냉장고도 쓰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냉장고를 없애고 나니까 음식을 오래 보관할 수가 없어 꼭 필요한 만큼만 하게되니 더 좋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살다보면 돈도 필요한 법인데 너무 이상적인 얘기만 하는 것 아니냐, 현실적으로 볼 때 너무 지나치게 생태적인 것을 고집하는 것 아니냐 하는 질문을 쏟아 놓았다. 그때마다 최한실님은 성심껏 답변을 해 주셨는데, 그래도 사람들은 말만 조금 바꾼 똑같은 질문을 계속 쏟아 놓았다. 자신들이 할 수 없는 일을 비현실적이라고 규정하고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귀농을 하려고 마음을 굳히고 있다보면 여러 가지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처음에는 빈집에 들어가서 품앗이하며 살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가, 땅을 사려면 돈이 꽤 필요 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려면 농사 지은걸 팔아서 돈을 만들어야 할텐데 하게 되고, 아이들 낳아서 키우고 교육시키려면 이거 장난이 아닌데 하는 생각까지… 결국 현실적이라는 단서를 붙여 적당히 자신을 규정하게 되는데, 그랬을 때 우리는 그 규정에 스스로 갇혀 다른 사람의 삶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 이상의 문제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에게 이상적인 것이 남에게는 현실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나에게 현실적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이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머리 깎고 수도하는 사람의 삶이 이상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수도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현실인 것이다. 예수처럼 산다는 것은 성인들이나 할 수 있는 아주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예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현실과 이상은 정해져 있지 않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살아가라고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너의 삶이 비현실적이니 나처럼 살아가라고 하는 독선의 표현이고, 보통 사람들이 다 그렇다 하는 것은 자신의 삶이 보통의 삶이라고 하는 독단의 표현이다. 사람들은 모두 자기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나역시 귀농을 생각하면서 갖는 스스로의 규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총체적인 생태위기 시대에 살면서, 귀농해서 생태적으로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것과 실제 그렇게 해서 내 현실이 되는 것과는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도 한다.
모든 변화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작은 시도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는가? 한사람이 하고 두사람이 하면 모두가 할 수 있다. 물로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단 그 생각에 갇혀 있으면 그만큼 밖에 못하는 것이고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그 변화를 미리 규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더구나 이번 귀농학교에서는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생태적으로 올바른 삶을 실천해온 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었고,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했지만, 앞으로 그렇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귀농은 ‘현실적’이라고 하는 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부터 시작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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