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수배된 후 우리가족 서울본부 조직부장 한혁씨네
“김밥 팔아 키운 내 자식 잡으려고 형사끼리 쌈박질”
여기 예순을 앞 둔 어머니가 있다. 김밥을 팔아 네 남매를 공부시킨 어머니가 있다. 힘겨운 고생 끝에 자식만 바라보며 살아온 어머니. 그에겐 자랑스런 아들이 있다. 어디가서도 자랑하고픈 아들이 있다. 연세대학교를 졸업한 아들을 어머니는 항상 “공부 잘하는 장남”이라며 주위에 자랑하고 다녔다.
여기 이런 아내에게 자식자랑 하는 게 아니라는 아버지가 있다. 아내에게 핀잔을 놓는 아버지가 있다. 하지만 아버지의 속마음도 다르지 않다. 부부에겐 네명의 자식이 있다. 첫째와 둘째만 그들의 피를 이어받았고 셋째와 넷째 자식은 일찍 부모를 여읜 조카를 입양해 키웠다. “공부 잘한다”는 장남은 세명의 동생을 끔찍이 아꼈다. 형제들 간의 다툼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부부는 말한다. 부부는 장남을 믿고 또 믿었다.
부부가 그토록 아낀다는 장남은 민주노총 서울본부 한혁(31) 조직부장. 경찰은 그를 6월2일 집시법 위반자로 전국에 수배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몸에는 현상금 5백만원과 1계급 특진이 걸렸다. 부부의 곁에는 사랑하는 장남대신 현상금과 1계급특진을 노리며 삵쾡이의 눈빛을 가진 형사들만 어지러이 가득하다.
부부와 인터뷰하기는 어려웠다. 서울본부 박상윤 조직국장은 “수배령이 떨어진 자식 걱정 때문에 누구와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며 난감해 했다. 전화인터뷰는 어떠냐고 물어도 박국장은 어렵다고 말했다. “전화도 힘들어요. 얼마 전에는 경찰이 민주노총 대협실장이라며 어머님한테 전화를 해서 가족사를 다 물어봤어요. 어머님이 나중에 속았다는 걸 알고 이제는 누구에게 전화가 와도 경찰이라고 생각해요.”
결국 박국장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고 10초 내에 기자가 전화를 해서 기자의 이름 석자를 암구호처럼 말하기로 약속하고 나서야 인터뷰가 이뤄졌다.
“20일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금요일(15일)에 혁이에게 전화가 왔어요. 내가 ‘엄마보고 싶지 않니, 집에 좀 들어와라. 밖에 있어도 밥은 잘 챙겨 먹어야 한다’고 말했어요. 수배중인 줄은 정말 몰랐어요.” 한부장의 어머니 김순자씨의 목소리가 벌써 떨린다. “월요일에 혁이가 수배당한 걸 알았어요. 가게 경비아저씨가 ‘이상한 사람들이 와서 편지함을 뒤지고 갔다며 아들을 집에 오지 않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어요. 그때서야 가게에 왔던 사람들이 형사인줄 알았어요.”
월요일(18일)에도 화요일(19일)에도 형사들은 가게에 와서 김밥을 시켜먹었다. “발을 의자위에 올려놓고 음식을 시켰어요. 내가 ‘아저씨 나한테 할 얘기 있어왔죠’하고 물었어요. 그렇다고 하더군요. 밖에 나가서 기다리라고 했어요.”
김씨는 마음을 다잡고 공원에 나가서 형사들과 얘기를 나눴다. 삼일째 부부를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형사들은 남편이 새벽기도를 가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명함을 건네줬다. 명함에는 서울시경 강력반장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우리 아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졌느냐, 화염병을 던졌냐”고 김씨가 물었다. “아주머니, 이건 국가의 존폐가 걸린 문제예요. 시위차원이 아니란 말입니다. 국가가 뒤집히느냐 아니냐의 문제요. 더 이상은 보안이라서 말해 줄 수 없어요.”
김씨는 너무도 기가막혀 형사에게 소리를 쳤다. “그래요? 난 그럼 우리 아들 참 자랑스럽네요. 국가를 전복시킬 수 있을 정도 아들이면 굉장한 아들을 내가 둔 거죠. 참 훌륭한 아들이네요.” 서울에서 파견나온 형사들이 돌아가면서 “전화로 웬만한 얘기는 하지 말라”고 말해 김씨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그 뜻을 아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목요일(21일)이 되자 분당경찰서에서 형사가 왔다. 형사는 서울시경에서 형사가 이미 왔었다는 말을 듣자 김씨에게 화를 냈다. “아니 왜 자기 관할도 아니면서 와. 아주머니 절대 다른 사람에게는 대꾸하면 안돼요. 알았어요. 그 사람들 현상금 때문에 그러는 겁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잡기 위해 형사들은 서로 싸우고 있다. 도청하는 것을 일부러 알려 주며 분당경찰서 형사를 따돌리려는 서울형사와 시경사람들에게 대꾸하지 말라며 자신이 진짜 담당이라고 큰소리치는 관할 경찰서 형사.
“혁이 동생들에게는 얘기도 못했어요. 동생들이 얼마나 혁이를 잘 따르는데요. 애들이 알면 정말 큰일나요. 저기, 우리 혁이 잘 있겠죠. 밥은 잘 먹겠죠. 차라리 빨리 잡히면 밥은 먹지 않을까요. 아니, 수배당해도 밥은 잘먹고 다니나요. 기자니까 이런거 잘아시지 않으세요. 아참, 이 전화 도청당하니까 말못할 수도 있겠네요. 그래도 혁이는 잘 있겠죠.”
수배자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목소리와 함께 흘린 눈물이 수화기에 가득 묻는다. 그래서인가, 들고 있는 수화기가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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