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절대 보내지 맙시다

아침에 비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설걷이를 하다가 울컥했다.

아이는 ‘나는 조기유학 아닌 만기유학’이라며 대학공부를 위해 담담히 외국행 비행기를 탔지만 엄마인 나는 섭섭한 마음, 가눌 길이 없었다. 아이는 자신의 미래를 위해 간다면서도 가끔 ‘진짜 가기 싫다’고 말했고 조기유학경험이 있던 주변친구들이 “이제 혼자 있는 것, 지긋지긋하다.”고 한탄한다고 했다.

아이가 출발하기 전 몇 주 동안 나는 내가 아는 젊은 시절 경험과 지혜(?), 대학생활, 연애, 된장찌개 끓이는 법, 패션 요령까지 … 내 경험과 과거를 일부 들추어내며 아이에게 기회있을 때 마다 알려주었다. 옆에 두고 있으면 천천히 알려주어도 되련만 … 가급적 세속버젼으로 말했다. 급기어는 사귀던 남자애가 조금이라도 속 썩이면 이 말을 절대 명심해라 ‘그는 너에게 반하지 않았다, ‘세상은 넓고 남자는 많다’ 최대한 세속적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어차피 습도와 온도가 최적 상태였던 온실 속 같은 생활은 아이가 비행기에 몸을 싣는 순간, 더 이상 없을테니까… 목이 메었다.

아이 키우기 22년차, 두 아이 모두 대한민국교육부가 하라는 대로 아이를 키웠다. 적당히 창의적, 적당히 비판적, 공부도 적당히 잘했다. 그랬더니 한국대학이 아닌 미국대학에서 입학허가서가 왔다. 지난 여름부터 대입 수시1학기, 수시2학기 둘 다 1차 시험 2배수를 통과했으나 2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다니던 고등학교등급이 나빴나? 아이가 지원한 그 대학은 지난 2004년 고교등급제를 야만스럽게 적용한 학교였다. 그러나 버선속이니 뒤집어볼 수도 없고 지난여름에 수험생부모로서 애가 많이 탔었다.

그동안 나는 교육운동하며 경쟁교육과 낙오, 차별없는 학교가 되어야한다고 오랫동안 주장하였다. 그래도 교육부는 묵묵부답, 학교와 교사들은 별 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4년 전, 자립형 사립 고등학교를 반대했었다. 그래도 정부는 시범실시를 결정했다. 나는 정부가 건너서는 안될 강을 건넜지만 기왕에 전국 6개-민사고, 포철고, 광양고, 현대 청운고, 전주 상산고, 부산등 시범실시하고 3년의 유예기간을 주기로 했으니 남은 기간동안 최선을 다해 공교육혁명의 기틀을 마련해야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정부는 그 시간도 헛헛히 흘러 보냈다. 7차 교육과정 도입여건도 안된 채 시행해서 망쳤다는 소리가 드높지만 정부는 부분 수정한다며 그대로 강행하고 있었다. 공교육이 변화를 바라기에 지친 학부모, 학생, 교사들이 더 이상 한국의 공교육을 견뎌낼 수 없으며 대안교육이나 조기유학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나 그래도 조기유학은 가족해체로 이어진다는 사실에 애써 눈감는 부모들을 보면 가슴이 아렸다. 주변에서는 웬만한 대기업, 전문가직종에 있는 사람들이 자녀들을 유학 행렬에 합류시켰다. 몇년전만 해도 아이 세 명을 유학 보낸 강남 사모님이 점심외출을 줄인다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지만 요즘에는 사회양극화가 심화되어서인지 점심 먹으러 가면 주변 여성들이 어제 친 골프이야기로 꽃을 피운다. 한 아이 당 한 달에 현금 삼백만원, 세 아이면 천만 원을 송금해야하는데 한국에서 돌아야할 그 많은 액수의 돈이 다달이 국외로 나가는 것이다. 지난 6년 사이 조기 유학생이 10배로 늘었다는 보도가 뒤따랐다.

지난 2005년, 한 가지 희소식이라면 한국학생들의 학력이 세계적으로 높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쪽에서는 ‘이 성과는 모두 사교육의 힘!’이라고 빈정댔지만 막상 그 문제들을 보니 난이도가 높고 창의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풀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에서는 한국학생들 학력이 형편없는 것처럼 폄하하고 기회있을 때마다 고교평준화해체, 교육개방을 들먹이고 있다. 우리가 우리 교육과 학교를 존중하지 않는데 비해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교육을 인정하고 있다. 새로운 눈으로 우리교육을 평가해야할 때가 된 것이다. 주변에서는 토플만점의 윗집애가 특목고입시에 떨어졌는데 특목고 본고사 영어시험 에세이주제가 ‘사랑은 시작할 때 자신을 속이고 끝날 때 타인을 속인다’ 였다’ 며 거의 당황스러워했다. 남부러울 것 없이, 대학원생같이 젊어 보이는 또한 엄마는 이번에 초등 4학년이 되는 작은 아이를 1년 예정으로 사천만원 들여 밴쿠버에 보내기로 했다며 걱정 반, 기대 반 하는 표정이었다.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며 나는 마음 한편이 아렸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서서 당황해할 아이들 때문에 특히 그랬다. 부모들의 조기영어욕구와 아이들이 글로벌시대를 살아갈 힘은 어디에 있을까? 믿을 것은 정말 부모의 돈과 힘밖에 없을까?

(김정명신, 2005.8.25에 쓰고 2006.1.4 수정)

아이가 대학공부를 위해 만기유학 떠나던 날(2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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