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바깥에서는 술취한 사내의 주정 소리가 들려와요. 그저께는 곤혹스러워서 혼났답니다. 어이, 아가씨, 뭐해, 하며 잔뜩 꼬부라진 혀로 말을 붙이면서 현관 안까지 따라와서 난동을 피우던 사내들 덕분에. 후다다닥 뛰어와서 빨리 문을 걸어잠궜기에 망정이지, 몹쓸 꼴을 당할 뻔 했어요. 모든 여성들이 성폭력에 대한 공포 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밖에 없지만. 이 도시는 너무도 위험해요. 두달동안 비슷한 일이 벌써 네번째고, 그럴 때마다 나는 방문을 걸어잠그고 부쩍 곤두선 신경으로 잠을 청하곤 하지만 쉽게 잠에 이르지 못하죠.

하지만 이 도시가 위험한 건 외국인들 탓이라는 말은 순전히 거짓부렁이같아요. 마주치고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조폭들도, 술에 절은 난봉꾼들도, 모두 한국인들이었는 걸요. 똑같은 사람들이라서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들도 섞여있기 마련인데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악한 행위를 해도 그게 부풀려지고 공포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이죠.

어제는 새 사업장의 면접을 보고, 이전에 있었던 사업장의 언니와 술을 마셨어요. 언니는 나에게서, 일전의 절친한 친구를 닮은 눈빛을 읽어내면서 알 수 없는 연민과 정 같은 걸 느끼는 모양이예요. 그녀에게 들은 말에 의하면, 이모는 업체의 차장을 만나기로 했다고 해요. 술 한잔을 사이에 두고 그에게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것”을 요청할 거라고. 나이 쉰 넘은 이모가 자기 딸래미뻘 되는 동료의 복직을 위해서, 한참 나이 어린 업체 차장에게 굽신거릴 모습을 생각하면 속이 쓰려와요. 어째서 나는 단호하지 못했을까, (오랜만에 만난 동지들 말대로) 얼굴에 철판 깔고 출근하는 최소한의 저항을 통해서 나 역시 경험을 쌓고 동료들에게도 눈에 확인할 수 있는 거리를 던져주지 못했을까. 너무 쉽게, 스쳐가는 업체에서의 해프닝 정도로 생각하진 않았을까.

그녀와 함께 했던 시간을 포함해 언니들로부터 자매애를 느낄 때면 말이예요, 적당히 선한 사람으로 살다가 이름없이 사라져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이 치밀곤 해요. 너무 따사롭기만 해서, 더이상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고 얼음나라의 성에 가두어 져서 가시를 비죽 일으키고는, 나만의 평온에 둘러싸여서 살아가는 게 어떨까 하는.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고 마는 건, 그런 삶이 진정으로 내가 바라는 삶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알고 있다는 걸.

시간이 늦었군요. 내일은 어떤 일이 우리에게 덮쳐올 지라도 노곤한 몸을 가누고, 세상에서 제일 달디단 꿈을 꿔요. 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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