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가 02년 월드컵 응원이 일련의 사회 변혁이라 서술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그냥 응원일 뿐) 하지만, 스포츠가 스포츠로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이야기 되는 것에 대하여 적절한 비판을 한 것에 대하여 매우 동감한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 대한 ‘애정’은 어느 정도 있을 수밖에 없고 사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이 현 사회의 모순에 대한 인지를 차단하는 방식의 맹목적인 ‘충성’이 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국가와 민족의 논리가 시민권과 민주주의에 우선할 때 ‘폭력’은 시민들에게 내면화 되고 ‘우리'(도대체 ‘우리’의 경계는 누가 그은 것이며 그 구성원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가 아닌 ‘타인’에 대한 배타적이고 폭력적인 행위들이 자행되는 것이다. ‘민족감정’이 가장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국가와 민족에 대한 ‘충성’이 애국심이란 이름으로 포장될 때, 이 사회의 빈부양극화의 고리는 더더욱 고착되게 된다. ‘착취’는 은폐되고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멀어지게 된다. 노동의 결실은 노동한 자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체제의 상층부로 수렴되어 버린다. 양극화는 더욱 심해지고 일상이 되어버린 삶의 불안정성은 시민들에게 ‘원한의 정치’만을 남겨놓을 뿐이다. 이른바 ‘대중추수주의’, ‘인민주의’, ‘미디어 정치’
스포츠는 스포츠에서 머물러야 한다. 승리의 영광이 국가와 민족으로 모두 환원되는 것보다는 선수 개개인의 땀방울에 대한 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물론 같은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기뻐할 수 있는 있을 것이다.) 경기에 승리한 것이 무슨 상대방 국가를 정복한 것인 마냥, 그리고 상대방 국가의 구성원들보다 자신들이 더 우월한 것임을 알리는 것인마냥 이야기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스스로의 사고를 차단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는 사이 언젠가 당신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에 의해 배신을 당하고 말 것이다.
시민권은 ‘국가’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명철한 이성과 행동으로 ‘쟁취’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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