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의원 총리 지명에는 물론 그녀가 여성이라는 상징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총리 1호가 될 뻔 했던 장상 전 이대총장의 경우와는 확실히 달라지는 지점들이 있다.

한명숙 의원이나 강금실 전장관의 경우는, 그 전에 여성이라는 상징성을 업고 온통 남성들뿐인 지배집단의 “구색맞추기”를 위해서 여성들을 잠시 활용하던 단계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다른 단계에 진입했음을 징후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사회운동 토론회(참세상 기사 참조)에서 아무개가 민노당을 두고 “남성적 패권주의”에 쩔은 “아빠 정당”이라고 한 비판은 새겨들을 만한 데가 있다.)

한명숙 총리지명자는, 비록 부르주아 페미니즘 어쩌고 하는 겁나게 좆중심적인 좇같은 비판들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여성들이 오랜 동안의 고되지만 지속적인 투쟁을 통해서, 싸움을 통해서만 증강될 수 있는 실력에 의해서, 총리자리까지 갔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유의미하다. (물론 전윤철이나 김병준이 아니라 정치인을 이번에도 총리도 지명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그리고 그녀의 개인적 편력은 장상 전 총장의 그것과도 다를 뿐더러, 바끄네나 아시아의 공주-대통령, 명예남성 알고보면 여자판본의 마초 전여옥과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무늬만 여성인, 소위 여성주의 의식을 검증받지 모한 여성들의 정치참여가 과연 여성운동에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비판은, 부분적으로는 한명숙 총리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비판이거니와,

이 논쟁은 이미 02년 대선을 두고, 고은광순과 같은 순진해서 멍청한 여자들의 바끄네 대통령 운운하는 삽질이 불어일으킨 사건들로 이미 한 번 정리가 된 바 있다.

전여옥, 바끄네 같은 년들이야 명예남성-여성마초이므로 논외로 치거니와,

설사 한명숙 총리가 무늬만 여성이라 칠지라도 여성 관료들의 양적증대는 중요하다 (우리나라 여성인권은 세계 최하위권-3등-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인 것은 무시해도 좋을 만한 사소한 항목이 아니다.

(진보정치 조직/연구소들의 여성활동가/이론가들이 종종 보여주는 안타까운 행태처럼) 몸이 여성인 것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는 것이야말로 여성혐오증의 뒤집힌 형태이자 (여성일 경우) 내면화된 형태이기 십상이다.

여성관료, 여성활동가들이 조직 내 중요한 자리를 차치하는 것이 늘어나면, (밤늦게 보란듯이 룸살롱에 가서 지배집단들, 자본가들과 난리부르스를 떠는 등의) 부패와 연결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틈새가 늘어날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원래 “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여성들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배제되어왔으므로 부패할 수 있는 정치적 환경을 만들 기회가 적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여성관료나, 진보조직들에서 여성대표/지도부의 증가는 소위 ‘보스’정치, 학맥, 지연, 혈연, 계보, 정경-정언유착등에 바탕하여 권력구도를 재생산해 온 기존 남성들의 방식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한명숙 총리 지명자가 60세가 넘어가는 동안 ‘부르주아’에 해당할 수입과 재산을 가지게 되었으며 (쁘디)부르주아 계급이라 할 지라도,

여성운동이 여성의 지위와 권익을 향상시키겠다는 <젠더 당파성>을 분명히 표방하고 나온 정치운동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젠더 당파성>에 기반한 정치로서 여성운동은 결코 “순수한” 시민 사회운동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사심가득하며(interested) 결단코 편파적이며, 그 정치성이 계급당파성만으로 확보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여성운동에 대한, “남성 패권/주도주의”에 쩔은 좆중심적 비판들의 단골메뉴의 논리는 매우 빈약하며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이다. 그 단골메뉴란 여성운동의 중산층화이다. 좆중심적 진보진영들은 자기들의 존재가 잊혀질만하면 혹은 영향의 불안에 스스로 잠식당할 때마다, 02년에 삐급꼴통좌파 김규항이 그랬던 것처럼, 페미니즘의 중산층화를 “우려해주신다.” 즉, 여자들을 힐난하고 남성우월주의를 다시한번 확인함으로써 쫀쫀하고 찌질시렵게스리 자기들의 진보성을 확인받고자 한다.

남성 패권적 진보진영의 비판은 이렇다. 여성운동은 계급당파성으로 돌아오라. 즉, 젠더당파성을 그 핵심으로 하는 여성운동에게 그 스스로이기를 포기해야만 진정한 여성운동이 된다는 협박질. (이런 협박성 판단이야말로 겁나게 좆중심적이지 않은가? 이들은 젠더권력에서 지배적 위치를 점하기 때문에, 젠더권력에 관해서는 지배자의 시각밖에는 가질 수가 없다. 맑스가 피지배자들의 시각은 최소한 이중적이라고 지적했던 것처럼 –피지배자는 지배의 시각에서 뿐만 아니라 피억압자의 경험을 통해서 세상을 본다–, 여성들의 시각들은 계급뿐만 아니라 젠더를 통해서도 세상을 본다. 한 마디로, 세상을 보는 눈이 여러 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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