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짙은 저녁, 조계사 법당 옆에 자리잡은 허술한 천막들에 불이 켜지고, 주름살 하나 하나에 한국 노동운동의 역사를 담고 계신 노동자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처마 밑에는 빨래들이 길게 늘어져 있고, 천막 한쪽

에 크게 적혀 있는 커다란 글귀가 선명하다. “총파업 92일째!!!”

현대중기산업 노동자들은 60년대이래 중동과 월남, 산간 오지 그 어디에든 파견되어 엄청난 노동강도와 초착취를 감내했던 ‘수출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오늘날 고단한 공사현장에서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지내던 노동자들 앞에 ‘퇴출’이라는 재앙이 닥치고, 이러한 결정은 결국 소박하고 성실하던 노동자들을 불끈 일어나게 하였다.

이것은 정부의 무원칙한 퇴출기업 선정에서 나타난 문제 때문이다. 정부는 퇴출기업 선정기준으로 ▲ 3년 연속 적자 ▲ 차입금의 연간 매출액 초과 ▲ 최근 결산일 기준 납입방식 완전 잠식상태을 내세웠다. 그러나 현대중기산업은 오히려 흑자 기업이다. 차입금이 연간 매출액을 초과하지도 않고 매출액이 두 배나 된다. 납입자본이 잠식되지도 않았다. 순전히 재벌이 제시한 기업수 줄이기 계획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퇴출 발표 이후 현대중기 노동자들은 조계사와 현대 계동 본사, 현대그룹 정몽주 회장 자택으로 자리를 옮겨가며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 중이다.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에 진정도 해보았지만 돌아온 것은 “소관사항이 아니다, 관계부처에 이야기하라”는 무책임한 대답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구사대와 폭력 경찰의 만행으로 조합원들이 병원으로 후송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한편 현대중기노조의 고용안정 투쟁에 대해 자본과 정부는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가령 노조측의 집회신고에는 보완통보, 불허통보 등으로 일관하면서 회사측의 집회 신고는 편파적으로 받아주는 그것. 이에 노동조합은 추석 귀향도 포기한 채 정몽주 회장 자택 앞에서 추석 투쟁을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현대중기노조는 ▲ 부당 퇴출 철회하라 ▲ 불법 파견근로, 위장 내부거래를 위한 ‘금강관악건선’ 철회하라 ▲ 현대건설로 전원 고용승계하라 ▲ 현대건설은 합의서를 이행하라는 구호를 내걸고 있다.

들 뜬 기분으로 귀향을 해야할 때, 그러나 현대중기 노동자들은 사과 몇 개와 밥 몇 술로 쓸쓸한 추석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현대 중기 노동자들은 당차게 대답한다.

“승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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