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대로 생각해봤고, 앞으로 고려되어져야 할 몇가지 문제들이다.
1. 지속적이고 경미한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피해자의 경우는 그 이전의 폭력 상황까지 참작해야 한다. 폭력의 정도에 대해서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물리적인 수단이 동원된 폭력, 쉽게 말해 진단 나올 정도의 폭력이 계속되는 경우는 말하면 입아프고, 남성적인 시각에서 별거 아닌 (뒤에서 다시 얘기하겠다.) 폭력도 고려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지속적이고 경미한 폭력’ 에 해당되는 경우로는, 내가 생각하기에, 주로 동거나 혼인관계가 대부분이며, ‘너 맞고 살구나’ 하며 불쌍히 여길 정도에 미치지는 않지만 심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게 만드는 사소한 폭력들이 – 물론 언어 폭력도 포함된다 – 일상화된 피해자들은 이미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어떤 종류의 폭력이든 사람의 인지기능까지 마비시키는 참으로 무서운 것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면서,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면, 이러한 경우 성관계 당시 가해자의 강제력도 없었고, 피해자의 저항 역시 없었고 그저 수동적이었다는 이유로 무죄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이전의 지속적인 폭력 상황은 피해자의 저항 의지 자체를 박탈해 버린 것이다. 거절한다면 반복될지 모르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순종하는 것이며, 이 점에 있어서 좀더 심리학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그 당시 상황만을 가지고 심리한다면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과 매한가지다.
결론은, 단순강간의 경우 가해자가 행한 이전의 폭력도 함께 참작해야 한다.
2. 폭력과 성행위 (강간은 수반되는 다른 종류의 폭력도 폭넓게 포함하므로 성행위 자체만으로 한정시킨다.), 둘을 분리해서 생각한다.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저항했다간 맞을 것 같고, 맞느니 그냥 하고 말지 이런 식은 곤란하다. 강간에 있어서 성행위 자체가 폭력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대개 사람들은 그 자체는 폭력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심각한 폭행과 원하지 않는 성관계. 어느 것이 더 가혹한가를 따질 수 있을 것인가. 피해자들은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한다. 물론 둘 다 인 경우도 허다하지만.
결론은, 이미 말했다. 강간에 있어서 성행위 자체가 폭력이다.
3. 마지막으로 책에서도 말했지만, 저항의 기준을 남성의 시각으로 상정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여관을 따라 들어갔다거나 가해자의 집으로 자발적으로 들어간 경우, 성관계에 대해 암묵적으로 동의를 한것으로 여긴다. ‘그 다음에 무슨 일 일어날지 당연한 거 아니야?’ 이렇게 생각한다. 남녀불문하고. 얼마나 남성주의적인 시각인가.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강간죄의 공범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정도까지 되었는가. 설령 스스로 옷을 벗었다 하더라도 ‘피해자의 자연스러운 자존심에 비추어보아 굴욕적이고 역겹고 싫은’ 것이라면 충분히 강간이 성립될 수 있어야 한다. 남성들의 마초 문화의 틀안에서, 치고 박고 피흘리며 싸우는 장면 속에서 ‘저항’의 개념을 정해놓으면 안된다.
끝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 몇마디.
to men
강제적이고 억압적인 성행위에 대해 포르노 따위가 보여주는 이미지는 버려라. 일반적인 여성의 의지를, 성관념을 왜곡시켜 남성적인 환타지로 그려낸 것일 뿐이다. 혼자 영화찍지 말고, 넘겨짚지 말고, 짐작하지 말라.
to society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지극히 당연하고 사변적인 이야기지만. 유교 사상에 얽매인 그 순결 이데올로기 좀 버려라. 그리고, 피해자가 원인 제공했다는 식의 눈초리 제발 그만. 폭행 피해자들한테 ‘니가 맞을짓 했으니까 맞지’ 라고 탓하는거 봤냐
마지막으로 여성들이여.
수동적이고 생각을 안에 숨기고 있는 모습이 다소곳하고 여성스럽다는 생각을 버리길. 그리고,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순결 이데올로기에 옭아매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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