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 ‘통일내전’은 없다.

1.

‘6.25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이제껏 여러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통칭)’좌우’를 막론하고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대부분의 주장에서 전쟁세력들, 즉 그 전쟁행위를 결정하고 실행했던 당사자들, 즉 한반도의 두 국가와 그들을 지원한 냉전의 맹주들의 주관적 진술이나 그들에 대한 호교적 논리들이 충분히 제거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주장들이 ‘친남적 혹은 친북적’이거나 ‘친미적 혹은 친소적’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무의미한 차이로 생각한다.

전쟁당사국 국가권력들과 그 지원/동맹국가들의 공식적 견해는 물론이고, 나아가 이를테면 미국 내부에서 미국의 군사패권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주장된 ‘수정주의적 연구들’ 또한 ‘한국전쟁’의 피해자이자 그 전후질서의 희생자인 ‘한반도 민중들’의 시점에서는 대단한 변별성을 지닌 것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한반도 국가(들)의 입장이 아니라 한반도 민중들의 입장에서, 즉 ‘전쟁세력의 입장이 아닌 전쟁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그 전쟁을 다시 평가하는 것이다. 물론 ‘문외한’인 내가 할 수 있을 법 한 일은 아니고, 진보적 역사연구자들이 그렇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에 더 가깝다.

“전쟁세력으로서 한반도 국가권력들(과 그 지원세력들)의 입장이 아닌, 전쟁의 피해자로서 한반도 민중의 입장”이라는 문구를 써놓은 다음 우리가 일차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되는 사실의 하나는, 그 내용의 표면적 차이를 불문하고, 한국전쟁에 대해 그 전쟁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따지는 기존의 주장들 중 상당수가 근본적으로 (‘순 이념적 지향’으로서의 문제가 아니라) 한반도 민중들 자신의 경험과 입장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는 그 논의들이 지닌 하나의 결정적인 정치적-윤리적 문제점에서 시작함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일정한 조건과 절차의 충족을 통해 국가권력이 전쟁행위를 결행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사고를 은연중에 전제한다.

즉 ‘좌, 우’ 혹은 ‘친북-친남’을 따지기에 앞서 기존의 주장들 중 상당수는 근본적으로 평화지향의 입장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그리고 평화지향의 결여야말로 6.25 전쟁에 대한 해석을 한반도 민중의 시점이 아닌, 전쟁세력으로서 두 국가권력의 호교적 주장에서 결정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그러나 (특히, 중앙집권적 국민국가가 지배적 정치형태로 자리잡고, 그에 따라 ‘총력전’의 양상이 등장한 이래로) 전쟁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국가권력의 일이고, 지배계급의 일이지 민중의 일도, 민중의 이해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역사연구자도 아닌 ‘문외한’의 입장에서,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행위의 결정권자들과 실행자들이 ‘한국전쟁’에 대한 역사적 파악에 뱉어놓은 주관적 진술들과 전쟁주도세력들에 대한 의도적인, 혹은 의도되지 않는 호교적 주장들을 할 수 있는 한 모두 제거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한반도 두 국가권력의 시선 밖에서 이후의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나 나름의 ‘영점’을 제출하는 것 뿐이다. 이제 임금님을 발가벗겨 보자.

2.

먼저 짚고 넘어갈 것은 이른바 ‘한국전쟁의 국제전적 성격’이라는 이야기에 대해서이다. 우선 그것은 어떤 전쟁이 국가 간 전쟁이냐 내전이냐는 규정과는 전혀 별개의 내용이다. 즉 ‘국제전적 성격’이 그 전쟁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을 대체하지는 못한다.
나아가 ‘냉전의 대리전쟁’과 같은 표현에 대해 일정한 사실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해도, 즉 한국전쟁이 냉전 맹주들의 직,간접적 후원과 개입을 동반한 전쟁이었다고 해도, 그렇다고 그 전쟁이 ‘두 Korea 들’사이의 전쟁이 아닌 어떤 것이 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한국전쟁’이 일방의 군사적 승리로 귀결되었다면 한반도는 미국 혹은 소련의 배타적 ‘세력권’이 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미국 혹은 소련의 ‘영토’가 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전쟁에 대한 ‘대리자들’의 이해관계는 결코 사소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국제전적 성격이라는 주장에 대한 불필요한 확대해석은 결국 한반도 두 국가들에 대한 면죄부로 작용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3.

하지만 ‘한국전쟁’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사항은 그 전쟁은 국가 간 전쟁, 지극히 전형적인 국가 간의 정규전이었다는 점이다.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의 구별에는 ‘사회적, 역사적 문제’가 일차적인 것이 아니다. 애초부터 ‘내전’과 ‘국가 간 전쟁’의 단어 그 자체는 전쟁양상과 교전 당사자들의 법적, 군사적 측면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이를테면 ‘도둑질이나 다름없는 행동’이라는 문구가 가치평가를 담은 문학적인 수식어이지 법률적 판단이 아닌 것과 동일하다. ‘한국전쟁에는 내전적 성격이 있다’는 ‘해석적, 가치평가적 진술’과 ‘한국전쟁은 내전이다’는 진술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이를테면 한국전쟁이 ‘내전’이라면 이승만의 ‘반공포로 석방’이나 북조선 정부의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불인정도 마냥 부당한 일이 아니게 된다. (게릴라나 민병대를 포함하는 ‘비국제적 무력충돌 희생자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 협약 추가의정서Ⅱ’는 1977년에 채택되었다.) ‘피그만 사건’당시 격추된 미군 폭격기의 조종사가 (상부의 명령을 어기고) 미 공군 신분증을 지닌 채 출격한 이유는 만에 하나 쿠바군에게 생포되었을 때 미국 군인의 신분임을 입증할 수 없으면 포로가 아닌 스파이가 되기 때문이었다.

살펴보자. 한국전쟁에서 전황을 주된 측면을 이끌어간 주된 교전세력들은 그 누구도 ‘반군’ 혹은 ‘민병대’ 등의 법외적 지위를 지니지 않는 ‘정규군’이었다. 대한민국 혹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영역 내에서 벌어진 일련의 ‘빨치산 전투’는 부수적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그 조차도 전쟁발발 이전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정규군의 낙오, 잔류부대나 교전상대국의 지휘체계와 일정하게 연결된 침투전의 양상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 전 기간 동안 어떠한 형태의 자발적 대중 동원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국가의 군대를 제외한 한반도 주민 대다수는 강제적 동원과 점령통치 그리고 학살의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마지막으로 전쟁이 개시되기 이전 한반도에는 거의 동시에 수립을 선포한 두개의 국가가 이미 존재했으며, 그들 중 누구도 스스로를 상대국가에서 분리해낸 존재 혹은 상대 국가의 반정부 세력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그들 모두는 자신들의 영토 내에서 ‘합법적이고 유일한 정부’임을 주장했다. 물론 그들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한 한반도에서 국제법상으로도 둘 중 하나만을 합법적 정부라고 배타적으로 인정할 근거는 없었다. (“UN 감독하의 자유선거가 실시된 지역”의 의미는 그 실시지역에 한하여 대한민국 정부가 유일한 합법적 정부라는 의미였을 따름이지, 그 선거가 실시되지 않은 지역에 대해 영토권을 승인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거 – 의회구성 – 헌법제정 – 정부수립’이라는 순서가 지니는 기본적 의미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의도된 착각’에 불과하다. 한국전쟁 당시, 이승만 정부가 ‘이북’지역에 지사를 임명한 행위에 대해 다름 아닌 UN이 항의한 바 있다.)

4.

즉, 적어도 전쟁 자체와 연관된 사실관계의 영역에서 1950-53년의 한반도에는 ‘통일내전’ 따위는 존재한 적도 없었다. 다만 ‘통일’이라는 언명을 내걸고 민중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던 국가들, 정부들만이 존재했을 따름이다.

전쟁에 일정한 책임을 지닌 주체들의 정당화 담론을 일단 걷어낸 자리에 존재하는 것은 앙상하기 이를 데 없는 최소한의 군사적 국제법적 사실만이 남는다.
그 ‘사회적, 역사적 의미’를 놓고 학설과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해석의 방대함과 상관없이, 한국전쟁이 실제 사건들 자체를 통해 지탱해 줄 수 있는 결론은 아마도 “냉전의 영향에 의해 과잉결정된 한반도의 (2차 대전)전후 신생국가 사이의 영토확정전쟁”정도 일 것이다. 그리고 그 전쟁이 동반하던 ‘통일’이라는 문구는 결국 두 국가의 상호배제적인 영토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수식어에 불과하다고 이해할 수밖에 없다.

보는 사람에 따라 이런 결론은 좀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혹은 군사적, 국제법적 사실만을 나열한 듯한 주장에 대해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의미’에 대한 해석을 포기할 수 없다고 반박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 그동안 적잖은 사람이 시도했던, ‘한국전쟁’이라고 명명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과 성격, 그 의미’에 대한 해석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은 아마도 그 전쟁이 ‘사실상 종결’된 지 50년이 넘게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어느 전쟁보다도 보편적인 규정을 산출하기 어려운, 당사국들, 특히 그 지배집단의 자기 정당화를 크게 넘지 못하는 엇갈리는 주장들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사건에 단일한 의미부여만 존재할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한국전쟁”의 경우 문제는 그저 보다 주요하게 일반화 할 수 있는 측면 혹은 주장을 선별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흔히 주장되어 온 ‘매우 복합적인 성격 때문에 단일한 성격과 의미규정이 어렵다’는 이야기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나는 ‘한국전쟁’이라 불리는 사건의 의미나 성격 규정에서 발생하는 곤란은 복잡성이 아니라 반대로 ‘공허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발생한 사건들 그 자체 속에, 그 전쟁에 대해 ‘국가권력들의 충돌’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들이 의미부여의 계기로 삼을 객관적 근거들 자체가 실제로는 모호하거나 심지어 부재하는 것이다.

즉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의 해석에서, 특히 누군가 그것을 한반도 두 국가의 지배적 담론에 거리를 두고 해석하려 할 때 발견하는 것은 “한국전쟁”이라는 사건 속에 한반도 두 국가를 포함한 전쟁당사국의 자기 정당화를 포함해 어떤 해석이나 의미부여를 지탱해줄 버팀목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동안 적잖은 사람들에 의해 역사해석상의 주요쟁점으로 다뤄져온 이른바 ‘전쟁의 배경, 성격과 의미’에 대한 부분은 우리가 ‘권력의 시선, 전쟁의 당사자인 두 국가의 지배적 담론의 밖에서’라고 시점을 정하는 순간, 당혹스럽게도 ‘공허’로 등장한다.

5.

이를테면 “한국전쟁”을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성립 이전의 역사적 과정과 결부 지을 고리는 전쟁의 객관적 양상 속에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빈번한 국경충돌이나 사회적 갈등을 언급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이다. 사회적 갈등을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모두가, 언제나 하는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거의 ‘전시나 다름없는’ 국경충돌과 전면전 자체는 같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국경충돌을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여차하면 전쟁을 할 수 도 있다는 의지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즉 그것이 말해주는 것은 권력집단의 전쟁의지 밖에는 없다.

결국 6.25 전쟁이 지배계급의 이해에 의해 추동 된 평범한 국가간 전쟁이 아니라고 말할 만한 모든 내용들은 전쟁수행에 대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한 권력집단의 주관적 진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관적 진술 속에만 존재하는 것의 진위는 결국 전적으로 확정할 수 없으며, 역사적 지식으로서 거의 무가치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이라고 말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실제로 무엇을 행했는가 이기 때문이다.
:즉 이를테면 방아쇠를 당길 결심을 한 북조선 지도부의 ‘조국해방전쟁’주장의 진정성을 “한국전쟁”의 성격과 의미에 대한 규정의 근거로 삼으려 한다면,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아시아 침략은 “대동아 공영권”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북조선 권력자들이 실제로 실행에 옮겼고, 당시 남한의 정권도 어쨌든 입으로는 항상 외치던 “한반도의 무력통일”시도라는 것은 결국 국가와 국가의 전면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고 한반도 민중은 그에 걸맞게, 원치 않는 전쟁 속에서 일방적으로 학살되었을 따름이다. 그리고 이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두 국가의 수립 이전에, “민족적 통일”을 주장하던 인사들이 경고한 38선 이남, 이북에서의 단독정부수립의 파국적 결과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이 실제로 의미하는 것은 1945-48년 사이의 한반도 단일국가 수립 노력의 연장선의 그 무엇이 아니다. 도리어 그것에 정확히 배치되는 운동의 귀결이다. 즉, 한반도 주민 전체의 의사에 따른 단일국가 수립의 “역사적-정세적 불가능성”(역사에 가정은 무의미하다, 달성되지 않은 것은 달성될 수 없는 조건의 결과이다) 속에서 그것을 대체하는 한반도에서의 탈식민지 국가수립의 또 다른 경로로서, 냉전 맹주의 후원을 받으며 수립된 패권적 권력들의 충돌을 의미할 따름이다. 한국전쟁의 교전당사자로서 한반도 두 국가가 주장한 것은 실상은 ‘통일전쟁’이 아니라 ‘통일=전쟁’이라고 읽어야 할 그 어떤 것이다. 쌍방이 별개의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그 권력의 자발적, 평화적 포기 가능성을 전제하지 않은 채 말하는 ‘통일’이란 점령에 불과하다. 그러나 지배집단이 스스로 권력을 포기하는 것은 역사상 일어난 적이 없는 일이다.
‘어떤 객관적인 이유에서’ 한반도에 평화적, 자주적 방식으로 단일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바로 그 시점에서 ‘통일/한반도 단일국가 수립’은 ‘인민적이므로 민족적인’ 그 무엇이기를 그치고 민족주의적 수사에 의탁한 국가주의적 패권추구의 표현이 된 것이다. 한반도 민중의 사회적 역량의 민주적, 자주적 결집이 사라진 자리에 탱크와 포와 비행기의 결집이, 그리고 상대국의 민중을, 그것도 동족이라 불리는 이들을 살상하기 위해 민중의 강제적 동원이 시작된다. 구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질서를 대체하는 냉전적 진영패권의 질서는 그 위에 이른바 ‘이데올로기 대립’의 그림자를 부과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전쟁 중 진행된 수많은 국가폭력은 물론이고, 민간 수준에서의 ‘폭력적 좌우대결’의 양상 속에서 그것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바의 이데올로기 대립과는 별로 닮은 것이 없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전황을 따라 전선, 즉 ‘국경’이 오르내리는 와중에 수많은 민중들에게 ‘좌익과 우익’이라는 것은 사회적 투쟁에 연루된 지향과는 무관하게 국가폭력 앞에서 오직 생존을 위한 적응의 몸부림에 불과했다. ‘국군/인민군이 왔는데 실수로 인공기/태극기를 들고 나갔다 총 맞아 죽었다’는 매우 친숙한 회고담처럼 말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아마도 할머니에게 들었을 것이다.) 혹은 ‘대한민국 세상’과 ‘인민공화국 세상’이 조변석개하는 와중에 한 마을 주민 수십, 수백 명이 살상된 학살과 보복학살의 배경에는 계급도, 이념도 아닌 집안사이의 오랜 갈등이 투영된 씨족간 대립이 존재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언젠가 역사학을 전공하는 선배에게 들은 일화일 것이다.) 만일 이 사건을 ‘이념갈등에 의한 내전적인 무엇’ 따위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이론적 정확성의 문제 이전에 정치적 윤리성의 문제에 속한다. 아무도 나치스와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이 내전을 벌였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만 ’50-53년의 한반도에서는 전황에 따라 학살자와 희생자의 역할이 교대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다른 상황이라면 비교적 사소할 수도 있는 갈등들의 틈새로 스며든 국가폭력 미시적 확산이 낳은 결과였다.

6.

다시 한번 정리하자. ‘한국전쟁’에서 즉 교전당사자인 한반도 두 국가의 지배집단과 그 후원자들의 정당화 담론을 걷어내는 순간 ‘한국전쟁’에는 아무런 의미도 남지 않는다. 그저 냉전에 편승한 상호 배제적인 권력들의 대결과 수동화 된 민중에 대한 일방적 학살만이 남는다. 물론 전쟁을 후원한 냉전 맹주들에게는 지정학적 혹은 세계전략상의 이해가 존재했다고 여전히 말 할 수 있다. 직접적인 교전당사국인 두 국가의 지배집단에게는 한반도 전역에 대한 지배권이 걸려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면 권력의 이해, 지배집단의 배타적 이해에 의해 추동 된 전쟁이라는 것은 도리어 일반적이다.

문제는 그동안 한반도 두 국가 내에서 한국전쟁을 그런 일반적인 전쟁, 즉 지배집단에게는 위기를 모면하거나 혹은 독점적 이익을 획득하기 위한 모험적 시도에 속하고 민중에게는 강요된 불행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평범한 악’으로서의 전쟁으로 의미화 하려 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문제는 우리가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 설령 그 교전당사국의 일방의 입장만을 옹호하는 것일지라도 지배집단과 대중이 공유하는 공통의 의미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즉 ‘한반도 민중’의 고통과 불행이 아니라 그것을 ‘민족사적 비극’으로 의미화 하고 이해하려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한반도 민중과 그 외 참전국의 이름 없는 병사들을 제외하면 그 누구에게 실제로 물리적, 역사적인 고통과 불행이 되었을까?

20세기 한반도에서 동족상잔은 벌어진 적이 없다. 권력이 민중을 학살했을 따름이다.

7.

이 지극히 평범스러운 국가간 전쟁의 과정에 어딘가 내전의 면모가 있었다면, 그것은 아마도 그 정부들이 자국의 민간인도 학살했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나아가 그 국가들이 이후 대내적으로 준-전시체제의 지속을 민중통제의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 그 전쟁에 들러붙은 ‘내전적 면모’의 실체일 것이다. 즉 한반도의 두 국가들이 자국민에 대해 내전적 수단을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한국전쟁은 ‘내전’으로 계속 다시 쓰여져 온 것일지 모른다. 어쨌거나 분명한 사실은 한국전쟁이 ‘통일내전’이라는 주장보다 더 국가보안법의 유지에 정당성을 주는 주장도 없다는 것이다.

물론 전쟁의 교전 당사자인 북조선이나 한국 정부는 그 전쟁을 ‘민족내부’의 전쟁으로 간주한다. 나아가 전쟁을 결행한 북조선 측은 적극적으로, 한국 측은 암묵적으로 그것을 ‘통일전쟁’으로 여긴다. 그러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식은 사건을 설명하는 배경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자체로 사건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나아가 그것은 잘해야 “전쟁세력”으로서 국가권력들과 그 운영에 관여하던 엘리트 집단의 시각에 대해 말해줄 뿐이다.
바로 그 때문에 한국전쟁에 대한 ‘민중들’의 진술은 대체로 한마디로 요약된다.
“난리”(!). 즉 그들의 의지에 반해서 강요된 인위적 재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전쟁에 피해를 입은 아시아 민중들에게 ‘대동아 공영의 성전’은 그 진정성을 따질 이유조차 없는 제국주의 지배집단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아시아 민중에게 결국 ‘식민주의자 주인’의 피부색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이고,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건 일본제국주의의 군사적 팽창은 식민주의적 억압에 전쟁이라는 참화를 더 얹어주는 것 이상의 실제 의미는 없다.

8.

한반도 민중들에게는 오직 강요된 고통과 불행에 불과했던 그 전쟁을 소위 ‘민족적 비극’으로서, ‘가치 있는 희생’이라 의미화 하기 위해서 말해지는 것이 그 전쟁을 ‘민족통일전쟁’으로 즉,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수립된 필연적 귀결로 간주할 것을 요구하는 해석방식이다. (‘단정수립의 결과는 전쟁이요, 영구분단’이라고 경고하던 사멸한 ‘민족적 통일론’의 잔상은 이제 ‘한반도라는 공간에 두개의 국가는 너무 많다’는 신종 ‘생활권Lebensraum’ 주장으로 변조되어 ‘민족적 비극/민족통일전쟁론’의 배경담론으로 활용된다.)
그 전쟁이 ‘민족적 비극/민족 통일전쟁’이 되어야 할 이유는 그 무엇보다, 그것이 아니라면 전쟁을 물심양면으로 예비하고 실행한 한반도 두 국가권력의 행위가 역사적 범죄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의미화 되는 ‘민족적 비극’은 매우 위험스러운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전쟁이 일어났다는 것이 비극적이라는 것이지만, 다른 하나는 전쟁 상대였던 또 하나의 한반도 국가가 여전히 실존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그 전쟁이 이른바 ‘통일’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다시금 꼬리를 물고 한국과 북조선 두 국가의 한반도 전역에 대한 독점적 영토주장에 대한 승인으로 이어진다. 한국전쟁이 민족적 비극이라는 주장은 그렇게 한바퀴 돌아서 다시금 그 전쟁에 대한 지배적 담론의 최종지점인 ‘상호배제적 영토주장’의 재확인으로 돌아온다. 바꿔 말하면 ‘평화적 공존가능성에 대한 대내적 거부의지’로서 말이다.
물리적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사실상 종결된 것이 맞다. 실효적 의미에서 두 국가의 영토는 ‘1953년 정전협정선’에서 멈춘다. 하지만 ‘민족적 비극’의 역설적인 되울림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민족적 비극’의 주장은 그렇게 새로운 비극의 준비로, 전쟁지속의 선언으로 역전된다.

9.

1948년의 시점에서, 이미 한반도에서 두 국가의 분립을 현실로서 수용하거나, 아니면 스스로의 권력을 포기하거나 하는 것 이외의 것은 전쟁을 만드는 것이 될 수밖에 없었다. ’45-48의 국내외적 조건에서 이른바 ‘분단’, 즉 구 일본제국의 식민지였던 한반도 지역에서 두개의 국가가 수립되는 것은 객관적으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전쟁조차도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까?
실패한 ‘민족적 통일론자’들이 전쟁을 예언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그들 자신이 바로 “Korea”가 두 개인 상황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미 성립된 국가권력들을 통합하는 방법은 궁극적으로 일방이 타방을 힘의 우위로 복속 시키는 방법일 수밖에 없다는 추론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국가권력들이 냉전의 구도에 깊이 자리한 이상 통일전쟁/무력병합의 성공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현재의 시점에서 말하자면 최소한 그들은 무력통일이 한번 실패한다면, 그 다음에 그것을 다시 반복하자는 주장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정도의 윤리성은 지녔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단독정부와 전쟁 다음에 오는 것은 (2차 통일전쟁)이 아니라 영구분단이라고 말했으니까. 전쟁을 치르고도 달성이 불가능하다면 ‘통일/국가간 통합에 의한 단일국가 수립’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요, 또한 그 자체로서는 추구해서도 안 되는 일이 된다는 것은 지극히 상식적인 합리적, 윤리적 판단에 속한다.

문제는 당연히 38도선 이남, 이북의 단정추진 세력들이다. 그들이 통일/한반도 단일국가의 수립이라는 것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을 지녔는지는 알 수 없다. 물론 역시 타인의 두개골 안에서 벌어진 일이므로 객관적 지식으로서 성립될 만한 문제도 아니다. 그 대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은 현실적으로 단독정부를 수립했지만 그 정치적 부담은 지지 않으려 했다는 추론이다. ’48년의 상황에서 선택지는 결국 두 가지였다. 통일/단일국가의 당위성을 포기하느냐, 아니면 전쟁을 맞을 것 인가였다. 한국전쟁에 대한 파악에서 왜 두 국가권력이 아닌 한반도 민중의 입장을 따질 것인지, 왜 그것이 평화지향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는지의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10.

사실 1945-50년 사이 한반도 민중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과연 정말로 ‘한반도 단일국가수립’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정한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이를테면 1945-48년이라는 한반도 역사에서 가장 유동적인 시기에조차 ‘민족적 통일운동’이 정치적으로 소외된 채 실패를 겪어야 했다면, 그것은 그 운동 스스로 충분한 대중적인 사회역량을 구성하지 못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거꾸로 말하자면 그것이 민중적으로 절실한 관심사의 영역이 아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 매우 당연한 것인데, 종족적, 문화적 공통성을 지닌 국가의 숫자나, 그 영토의 크기 자체가 민중에게 생활상의 중요한 문제가 되는 일은 원래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식민지 조선’의 영역에 수립될 탈식민지 국가의 형상으로서 ‘한반도 단일국가’는 하나의 당연 전제로서는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조선왕조/대한제국의 영토가 분할 없이 일제에 점령되었다면 독립국가가 그 영토적 단일성의 연장선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1910년에서 1945년 사이에는 중대한 변화가 존재했고, 그 결과로 독립국가의 현실은 그 당연 전제를 충족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전쟁이나 제국주의나 국내 지배계급의 폭압과 착취처럼 민중의 생활상의 중대한 문제는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로서, 즉 새로 탄생할 한반도의 탈식민지 국가권력들의 정당화 서사에는 무시 할 수 없는 손상이 될 수 있다.

현실의 부르주아 국가의 지배적 형상은 국민국가이다. 즉, 지배계급, 특정 지배적 자본분파의 이해를 경향적으로 공통이해로 관철하기 위해 상상된 종족적-공동체적 표상을 통해 ‘합의되지 않은 공통이해’를 구성하며, 그것은 우연적인 역사적 정세의 산물로서 현실의 국가들을 자연적 필연성을 주장하는 허구적-서사적 기원으로 회귀시키는 운동에 의해 가능해 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1948년 한반도의 역사적 정세 속에서 탈식민지 국가의 수립을 주도할 수 있는 세력들은 왜 그들이 주도하고, 그들의 국내적, 국제적 후원자들의 이해가 경향적으로 관철되는 국가를 역사적 우연의 산물로서 폭로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남의 사적 자본가, 지주계급과 북의 국가/의사Psedou-부르주아 모두에게 전혀 탐탁스런 상황이 아닌 것이다.

영화든 소설이든 허구적Fictive 서사물의 첫 번째 규칙은 ‘일관성’에 있다. 그러나 1948년, 한반도에 신생 국가권력의 수립을 주도한 세력들은 그 서사적 일관성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 즉, ‘단일국가수립’ 그 자체가 ‘민족의 비원’이라서, 민중의 이해와 관심사여서 문제가 아니라, 1910년에는 예정에 없던 ‘두 개의 Korea”라는 상황 그 자체가 그들을 단지 역사적 우연을 통해 관철된 지배계급/지배집단의 담지자로서 노출시킬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기, 정당화 서사의 위기가 문제인 것이다.
이런 지배이데올로기의 곤경이 두 ‘단독정부들’에게 ‘단일국가수립’을 포기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 한반도 국가들의 지배담론에 통합된 ‘단일국가수립’은 이미 존재하는 국가들의 (자발적 권력포기 없는) 재통합의 주장, ‘병합’의 주장이 될 수밖에 없다.

11.

1948-50년의 선택지는 ‘단일국가수립의 포기’ 혹은 ‘전쟁’ 중 하나였다. 그리고 한반도 두 신생국가 지배세력은 다른 무엇이 아니라 지배이데올로기의 곤경을 회피하기 위해 전쟁을 선택했다. 6.25 전쟁은 한반도 두 국가의 지배세력이 민중에 대해 저지른 역사적 범죄에 다름 아니다.
타인을 속이기 위해 먼저 자신을 속여주기 위해 필요했을지 모를 희망적 오판을 근거로 북조선정권은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고, 그렇게 시작된 전쟁이 그 필연적 결과로서 아무런 성과 없이 종결될 상황에서 남한 정권은 종전협상을 방해했다. 그 전쟁은 국가들의 전쟁이었고, 진영간의 전쟁이었으며, 전쟁세력들의 호교적 정당화 주장 속에서 통일전쟁이라 불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6.25 전쟁은 한반도 두 국가 지배세력들의 한반도 민중에 대한 전쟁이었다. 그것은 그 전쟁이 남긴 실제적 결과가 알려주는 진실이다.

그들은 그 6.25 전쟁을 통해 상대의 영토를 정복하지는 못했지만, 대신 전쟁의 파괴력과 공포를 통해, 전쟁상황을 통한 저항세력의 물리적 말살을 통해 자국 민중을 정복했다. 더 이상 민족적 통합의 이름이 아니라 패권적 병합의 다른 이름으로서 ‘통일’을 내세운 전쟁은 그 자체의 명목적 목표의 달성에는 거의 필연적으로 실패했지만, 어떻게든 지배세력들에게 이데올로기적 곤경을 벗어나게 해 주었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정치적, 사회적 폭리의 원천이 되었다. 때문에 외부적으로, 물리적으로 더 이상 수행이 불가능해진 ‘통일내전’ 한반도 남북의 두 국가들 속에서 대내적으로, 오직 대내적으로, 결국 자국 민중을 대상으로 한 준 전시적 통제, 아니 사실상 일종의 점령정책의 형상으로 지속되었다. 그 명분은 물론 당연히 ‘통일’이었다. (왜 그런지는 대한민국 현행 헌법과 국가보안법만 혹은 북조선의 유사한 법 조항 등을 다시 살펴보는 것으로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내적 갈등을 ‘외부의 적/민족내부의 불순물인 상대국의 비정규전’으로 각색할 수 있는 내적 저항세력의 비가시성이 그 성립의 내적 조건이었다면, 냉전맹주들의 핵우산이 제공하는 역설적인 평화가 이런 전쟁을 대내적으로 지속하는 해괴한 전후체제를 가능케 해준 외적 조건이 되었다.
이 해괴한 전후체제의 이름을 한반도 두 국가는 보통 ‘분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분단’이라는 단어, 자국을 (영토적 단일성이 손상된) 분단국가라 부르는 자학적 지배이데올로기의 결론은 대립하는 패권적 국가권력의 일방이 와해되는 그 날까지 한반도 민중에게는 평화도 인권도 사회적 변화를 위한 진지한 내적 시도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군정포고령’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UN회원국 대한민국과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그 국가들 자체로서 대체 어디를 봐서 어떻게 ‘분단국가’인가? 국제법상 성립될 수 없는 대내용 영토주장의 지속만이 그것을 버텨줄 뿐이다. 우리는 흔히 ‘일본정부가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한반도 두 국가는 60년 가까이 상대국가의 전 영토를 분쟁지역화 하려 하고 있었다고 말 할 수 있다. 그것이 한반도 두 국가권력에 의해 말해지는 스스로가 ‘분단국가’요 ‘통일’이 국가적 지상과제라는 언명의 실제의미이다. 그 주장은 지난 전쟁의 구호이자, 한반도 민중을 ‘지속되지 않으나 끝내지도 않은 전쟁’의 잔영 속에서 무의미한 고통을 감내하게 만든 기반이다.
’38선을 베고 누워’ 죽어버린, 6.25 전쟁 이전의 ‘민족적 통일론자’들 예언을 다시 음미하기 바란다. 왜 ‘단정수립’의 귀결이 전쟁, 그 다음 다시 ‘2차, 3차 통일전쟁’이 아니라 영구분단이라는 것인가? 왜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인가? 왜 그것은 어떤 이론적 올바름의 문제 이전에 최소한의 이성과 윤리성의 문제인가? 전쟁을 이미 한번 치르고, 전쟁의 종결을 (주로, 대내적으로) 부정하는 비틀어진 전후체제의 수 십 년을 살아온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공존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또 한번의 물리적, 사회적 재난을 겪거나 그 공포속에 살아야 함을 말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이성적 판단과 윤리의식을 가진 이들에게 후자는 선택될 수 없는 것이다.

12.

6.25 전쟁이 발발한지 어느새 60년이 가까워지고 있다.
혹자는 그것을 ‘민족의 비극’이라고 부른다. 그 혹자들은 대체로 그것이 ‘민족사적 소명으로서 통일’이라는 것과 관련된 내전적인 무엇이라는데 적극적, 소극적으로 찬동하는 이들과 겹친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그 전쟁을, 그 전쟁이 남겨준 것을 비극과 고통으로 체험한 것은 오직 한반도의 민중들과 참전국의 이름 없는 병사들 – 군복을 입은 민중 들 뿐이다. 장군들을 훈장을 얻었고, 군수산업은 호황을 누렸으며, 냉전의 맹주들은 세계의 패권적 분할을 정당화 할 소재를 얻었다. 그리고 한반도 두 국가권력과 그 지배세력은 정당화 서사의 곤경을 넘어섰을 뿐 아니라, 그 후 수 십 년 간의 준-전시적 민중통제 속에서 세상 그 어느 나라의 지배집단이 부럽지 않을 정치적, 사회적 폭리를 취했다. 6.25 전쟁과 그 전쟁이 남긴 것은 오직 민중의 비극이고, 한반도 민중에 대한 두 국가권력의 역사적 범죄이다. 나치스의 인종주의가 홀로코스트에 대해 유죄라면, 300만 한반도 민중의 피가 뭍은 모든 전쟁의 명분들 역시 유죄이다. 그것이 무엇이건.
6.25 전쟁에 대한 오늘날의 해석에서 전쟁세력의 호교적 주장, 혹은 그것에 직간접적으로 봉사하는 모든 것은 그것이 무엇이건, 일단 거부되어야 하고 일단 의심받아야 한다. 평화가 그 자체로 언제나 민중의 현실적 필요이기 때문에, 그리고 평화지향에 입각한 해석(만)이 전쟁세력의 모든 정당화 담론에 저항할 수 있기 때문에 (‘통일지향’ 같은 것이 아니라) 6.25 전쟁에 대한 그동안의 역사적 평가들은 ‘평화지향’을 원칙으로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절대로 가 6.25 전쟁을 소위 ‘민족적 사명’과 연루된 ‘통일전쟁/통일내전’으로 정의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의 시점’이 한반도 질서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민중적, 평화지향적 원칙에 입각해 다시 생각해 봐야할 필요와 일치한다. 그 한가지 화두는 초강대국의 핵우산에 의해 유지되던 역설적인 냉전적 평화의 시기, 한반도 국가들 자신의 노력 없이 지탱되던 공짜 평화의 시기가 이미 끝났다는 것이다.
자, 결코 장미 빛 희망의 언어만이 될 수 없는 ‘탈냉전’의 한반도에서, 전쟁을 대내적으로, 상상적으로 지속하는 사회와, 그것에 기반 한 국가들이 과연 스스로 평화를 지탱할 수 있겠는가? ‘협력과 교류’조차도 ‘지난 전쟁의 구호’를 통해 이룰 수밖에 없는 사회, 그런 국가들의 과연 얼만큼의 ‘평화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가?
그리고, 과연 탈냉전의 한반도에서 평화을 지속하는, 평화에 기반 한 질서를 지시하는 단어는 무엇인가, ‘통일’인가 ‘공존’인가? 물론 혹자는 이런 질문은 지나친 것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의 현행 영토조항을 실정적 영토에 맞추어 수정하는 것이 ‘북조선이 붕괴했을 때 그 영토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수용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 당신은 무엇을 느끼는가? (과연 대한민국이 북조선의 영토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무슨 짓인가를 한다면, 대체 그것이 실제로 어떤 행동을 의미할 수 있다는 말인가?)
당장은 물론이고, 가까운 장래에도, 할 수 있는 일, 해도 되는 일들이 사실상 이른바 ‘평화적 분단관리’를 넘을 수 없고, 또 넘어서도 안 된다는 ‘현실’을 언제까지 우회적, 소극적 표현에 가두어 둬야 하는가? 한반도 민중의 항상적이고 실질적인 관심사로서 평화 그 자체와, 그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적 조건으로서 안정적, 지속적 공존은 왜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한반도기를 흔들며 눈물 속에 부르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 그런데 그 노래가 북진-무력통일을 외치던 이승만 정권이 보급한 노래라는 건 혹시 기억되고 있는지. 눈물 흘리고 얼싸 안으며, 동시에 ‘너희 나라 빨리 망해라’를 소원으로 비는 이율배반은 치정살인의 논리와 무엇이 다른지, 처음부터,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 이산가족을 죄인처럼 면회소에서 만나게 하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조약도 협정도 아닌 기념사진과 공동선언문이 쾌거라 떠들어지는 이 어처구니없는 한반도, 53년 간 종전을 거부한 두 국가권력들. 그들이 이 결코 웃을 수 없는 살인적인 소극을 무엇으로 치장했던가? 그리고 300만 민중을 죽음으로 내몰며 무엇이 그들이 죽을 이유라고 말했던가?
6.25 전쟁 발발 56년이 지났다. ‘통일내전은 처음부터 없었다. 오직 한반도 민중에 대한 남북 두 Korea 지배세력의 국가테러가 있었을 따름이다. 그렇다 그것은 ‘내전’이었다. 권력의 민중에 대한 내전으로서. ‘정전협정선’의 포성은 멈춘 지 수 십 년이 지났지만, 민중을 전쟁의 공포 속에 내모는 전쟁사회, 전쟁질서는 끝나지 않았다.
그럼 전쟁은 언제 끝나는가? “존 레넌”이 이미 알려주지 않았던가? 전쟁은 당신이 원할 때 끝난다고. 당신이 또 다른 민중에 대한 살상명령을 거부할 때 그 범죄적 전쟁은 끝날 것이다. 당신이 그 전쟁을 일으킨 자들이 주장한 정복사업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길 때 그 전쟁은 끝날 것이다. 포성은 멈추었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서 강제로 지속되는 이 전쟁을 끝내자. 게다가 탈냉전의 한반도에는 스스로의 평화능력 없이 지속될 수 있는 공짜평화는 더 이상 없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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