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6.28,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 게재]
[*이 글은 북조선의 미사일 발사가 있기 전에 작성된 글이다. 미사일 발사 이후의 사태 전개를 보며 상당히 찝찝한 기분으로 시효가 지난 글을 자펌한다.]
1.
웬지 요즘은 6.15 근처 만 되면 항상 무슨 일이 생긴다.
생각해보니 작년 6.15 때 북조선은 주한미군의 스텔스 전폭기 배치를 이유로 남한 방북 대표단의 숫자를 확 줄여버린 바 있다. 올해는 광주에서 웃고 즐기는 가운데, ‘대포동 2호’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리고 작년 2월의 핵보유 선언의 낙진이 그러했듯, 발사를 하던 안 하던, 그것이 미사일이건 인공위성이건, 역시 그것에 맞는 것은 ‘서울’의 ‘햇볕’ 정치인들이 될 것이다. ‘남북관계가 어쩌고…를 읊조리며 이라크 파병에 발벗고 나선 (전쟁)참여정부는 그 스스로가 대량살상 무기와 정밀유도병기의 ‘부수적 피해’에 희생양이 된 셈이다. (어쩌면, 북조선 정부는 정말로 박근혜, 혹은 이명박과 잘 지내보고 싶은 모양이다.)
잠시 기억을 더듬어 보니, 아마도 작년 요맘때도 비슷한 주제의 글을 쓴 적이 있는 것 같다. 간단히 요약한다면 ‘핵 위기와 햇볕정세는 동전의 양면, 즉 본질적으로 핵볕정세’라는 요지의 (쓸데없이 긴) 글이었던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상당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작년 2월 북조선의 핵보유 선언을 듣고 든 생각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Bush Win!’ 이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뭔가 실제적인 결과가 나오느냐는 문제에 있어서는 핵 위기/핵 협상도 끝이요, 핵 위기/핵 협상을 배경으로 성립한 ‘햇볕’의 호시절도 끝이라는 것이었다.
좀 진부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잠시 지난 10여 년 동안 지속된 북-미간의 ‘핵위기/협상’과정과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되짚어 보았을 때, 이는 당연한 결론이라 할 수 있다.
구 사회주의권 붕괴 이후의 경제적, 외교적 고립상황에서 벗어나, (이른바 ‘국제사회’ 라고도 부르기도 하는)세계시장에 복귀하기 위한 북조선의 상품은 ‘핵’이었고, 그들이 원한 바이어는 미국(과 일본)이었다. ‘핵 협상’이 의미하는 바는 ‘핵소동’은 절대로 북조선의 ‘국제사회복귀’의 장애물 같은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것은 핵개발이라도 떠들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망하려나 하는 것 외에는 별 관심과 이해타산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동북아의 고립된 스탈린주의 국가의 유일한 수출품목이었던 것이다. (북조선이 ‘로동’ 혹은 ‘대포동’의 추진 로켓을 점화시키며, 분사구의 오렌지 빛 불꽃 속에서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 어쩌면 찬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말이다 – 내 생각에는 그건 ‘미제와 맞짱 뜨는….’같은 것은 아니었을 듯 싶다.)
불바다 파동과 제네바 합의 사이에서 망신만 당한 김영삼의 교훈은 김대중 정부에게 북-미 핵 협상 구도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도록 만들었다. 한국정부가 맡은 배역은 바로 ‘Good Cop’. 즉, ‘북조선에 호의적인 제스춰를 취해주는 미국의 동맹국’역이었다.
미국과 북조선 양자 모두 한국정부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역할은 결국 ‘시간을 벌어주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해 주는 것’이었지만, 북-미간에 협상이 진행되는 한 다소의 거품이 낀 한국정부의 국제정치적 역할과 발언력 또한 지속될 수 있었다.
2.
문제는 결국 절박한 것은 북조선이고, 바이어는 미국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었다. 미국정부가 동북아의 지역적 안정이라는 문제에 대해 얼만큼의 관심을 지니는가가 북조선의 ‘핵값’을 결정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금융자본 친화적’이라고 평가하던 클린턴 정부 대신 칼라일 – 핼리버튼 주주모임에 가까운 부시정부가 들어서자 사태는 일변했다.
부시정부의 대외정책상의 유일한 관심사는 간단히 말해 ‘파이프라인’이었다. 부시정부의 강렬한 우익 포퓰리즘적 수사는 그들의 분파적 성격에 대한 보충물이다. (때문에, 이라크 침공이나 이란에 대한 압박이 ‘미국의 패권을 위한 석유전쟁’이라는 이야기조차도 사실은 절반 정도는 냉소적이고 역설적인 형태의 호교적 정당화 담론일 수 있다. 이라크에서 ‘미국의 전쟁’이 실패하는 동안에도, ‘핼리버튼의 전쟁’은 고수익 업종이 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부시정부가 북조선을 ‘악의 축’ 클럽에 가입시킨 이유도 절대 평범하게 생각해서 간파될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학적’인 이유, 즉 ‘운율을 맞추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악의 축’은 고의적으로 2차 대전의 ‘추축동맹’을 연상시키기 위한 수사였던 만큼 ‘악의 축 클럽’의 회원국은 무조건 셋 이 되어야 했으니까.
부시정부의 북조선에 대한 ‘적대적 무시정책’은 때문에 아주, 매우 솔직한 정책이다. 그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바로 ‘무시’이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그렇다 치고, 왜 하필이면 ‘마이클 무어’의 영화 ‘화씨 9.11’에서 조차 ‘핵을 만드는 북조선도 있다는데’라는 이야기가 등장하는가?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국회의사당에서 시사회를 열었던 바로 그 영화에서 말이다. 네오콘들이 북조선의 핵과 미사일을 언급할 때 그것이 이를테면 MD추진에 유리하게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시정부의 이라크 침략을 비난하는 사람들 역시 일정한 계산을 근거로 북조선의 핵과 미사일을 언급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혹시 북조선을 언급하는 것이 부시정부를 괴롭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까? 오직 송유관을 따라 달리고픈 것이 부시정부의 소망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3.
따지고 보면 그동안 부시정부가 ‘북핵문제’와 연관해서 한 모든 일들은 단 하나, 협상을 결렬되게 하기 위한 노력에 가까웠다.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반드시 뭔가 다른 문제를 끌어들여 협상을 꼬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파장의 한 단계를 지날 때마다 ‘북핵협상’은 점차 동아시아 주변국들로 ‘이관’되어왔다. 먼저 한국의 (부담)몫이 커지고, 그 다음 일본이 자리를 채우고, 궁극적으로 북조선의 앞날 그 자체가 중국의 소관이 되어가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압박에 대해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북조선은 이미 60년 가까이 금수대상이었고, 이미 15년 가까이 경제적 곤경을 겪고 있다. (윈도우XP가 아니라, 윈도우95, 아니 DOS 시절에도 ‘North Korea’는 PC용 운영체제조차 수출이 통제되는 국가였다.) 즉 정말로 폭격이라도 하지 않는 한, 게다가 중국은 물론이오 한국조차도 동의여부가 불투명한 ‘대북압박’은 대단한 무엇이 될 수는 없다.
외교를 해서 얻고자 할 것이 없는 곳에서는,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없다. 2002년 이후 ‘앉은 채 고함치는’ 부시정부의 태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은 ‘북조선에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 어쩌면 부시정부가 바라는 것은 오직 북조선이 질려서 대미 협상에서 떠나 버리는 것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어쩌면 북조선도 이미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음을 인지하고 있을지 모른다. 작년 2월의 핵보유 선언에 대한 거의 유일하게 가능한 합리적인 해독방식은 그것 밖에는 없다.
북조선의 핵보유 선언 이후 유일한 관심사는 6자 협상이건 무슨 협상이건, 협상 자체의 존속 여부 밖에 없지 않았던가.
그것을 단순한 벼랑끝 전술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고 싶은 것은 아마도 대한민국 현 정부의 바램일 것 같다. 북핵위기/협상의 판이 깨어지면 북조선을 다독이는 존재로서 대한민국의 국제정치적 역할도 끝나기 때문이니까. 아무리 민족의 화해와 공조를 말해도 한반도의 전후 국가간 체제의 본질이 ‘(재)통일’즉 한반도 단일국가라는 그 궁극적 함의에서 패권적일 수밖에 없는 표상에 결부되어 있는 이상, 자국의 주도적 역할을 대내적으로 주장할 수 없는 정책은 정치적 자원이 될 수 없다. 엉뚱하기 그지없게도 FTA와 개성공단을 이종교배 하기까지 하는 현 집권세력이 근본적으로 ‘햇볕 2기 정권’으로 태어난 이상, 북핵을 둘러싼 협상이 형해화 되었다는 소식을 국민여러분께 솔직하게 전하기는 좀 힘들 것 같다.
4.
그럼 올해 6.15를 화려하게 장식해준 대포동 2호 소동은 또 무엇일까? 그것은 앞으로도 뒤로도 갈 곳이 없는 이 협상 테이블의 한가지 술수로 등장한 안건추가에 해당한다. 역사적으로 이미 확보한 핵 전력이 제대로 폐기된 성공사례는 없다.
그러나 미국도 북조선도 그것이 어떤 실질적인 성과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현재로서 협상테이블 자체를 완전히 엎어버릴 수는 없다. 이를테면 부시정부는 그들이 북조선의 핵문제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며, 또 할 의지도 없다는 것을 대놓고 공언할 수는 없다. 즉 무언가 하고 있는 듯 보이기는 해야 한다. 협상행위를 자체를 하지 않고 있으면 다른 것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다. 즉 이를테면 폭격이다. 마찬가지로 북조선 역시 배포 있게 협상테이블을 박차고 나가 봐야 쌀 한톨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다. 핵을 가지건 무엇을 하건 어쨌거나 호기를 부린다고 굶는 인민들의 상태나, 사실상 정상작동이 무엇이었는지 잊어버릴 정도의 수준이 된 국가시스템이 복구될 수는 없다. 한국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국이 북조선이 최소한 협상테이블에 계속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고, 국제구호기구들도 최소한 그 정도 성의를 보이기를 바란다. 이미 주기적으로 협상장소에 출석하는 것은 북조선에게는 거의 국가 레벨의 ‘취로사업’에 가깝다.
그러나 협상테이블에 앉으면 불리한 점 한가지는, 앉아서 몇 마디하고 나면, 이 협상이 적어도 앞으로 한동안은 북조선과 미국정부 모두에게 할 만한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자리라는 것이 너무 쉽게 드러난다는 것이다.
스스로 내건 이데올로기적 언명들 때문에 협상을 하지 않을 것이면 폭격이라도 해야 한다는 주문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시정부가 사용한 술수는 위폐 문제처럼 새로운 문제 거리를 끌어들여 협상과정을 슬슬 꼬아놓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들 대부분 소재나 제기방식에 있어 주고받는 의미의 협상안건과는 좀 거리가 먼 것들이다. 즉 자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떠들고 ‘싫으면 관두고’라고 팔짱끼어 버릴 수 있는 것들이다. 지금까지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부시정부로서는 협상에 출석을 하되 딱히 부담스런 뭔가를 하지 않고도 ‘악의 축’ 북조선을 압박하고 으름장 놓는 모양새도 갖추어지고, 또한 그렇게 꼬인 협상의 상황자체가 시간을 잡아 먹어준다. 어쨌거나 북조선이 질려서 스스로 손을 뗄 때까지 버티면 되는 것이다. (작년 2월에 이미 한 손을 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올라와 있는 것들이 북조선 정권에게는 적잖이 짜증스러운 것들이다. 북일수교 협상 중 납치 문제에 덴 적이 있는 북조선 정권은 그대로 두면 안될 것이라는 생각에서 뭔가를 꺼내 든다. 바로 ‘대포동 2호’이다. 부시정부가 쓰던 술수를 이제 북조선 정권이 따라 배운 것이다. 미사일 실험발사를 하던 안 하던 앞으로 한동안은 적잖이 거북스러운 위폐논란이나 인권문제 같은 것에 말할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 미국정부가 그것을 협상꺼리로 받아주면 좋은 일이지만, 아니어도 많이 아쉬운 것은 아니다.
부시정부는 당연히 그 제의를 수용하지 않는다. 핵폭탄을 놓고도 뭔가 할 마음이 없는데, 미사일을 놓고 무엇을 하려는 생각이 날 리가 없다. 그저 이 기회에 요격을 하느니 마느니 하며 MD나 한번 더 불러보자고 말할 밖에, 게다가 북조선을 물고 늘어져 평화헌법 폐기라는 정치적 업적을 남기는데 모든 신경이 쏠린 고이즈미 정부 같은 ‘자기 돈 내며’ 따라주는 지역파트너도 있다. 시험 발사체를 요격한다는 발언은 사실 기술적으로는 성공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고, 외교적으로 스캔들에 해당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럼 (후자의 핑계를 대고) 요격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사실 중요한 대목은 그 다음이다. 아예 딱 찍어서 ‘중국이 북조선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막아달라’고 주문을 한 것이다. 대놓고 중국에게 공을 넘긴 것이다.
5.
그럼 이에 대한 북조선의 입장은?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작년 2월 핵 개발 선언에서 이미 협상에서 한 손을 뗀 것이라고. 그럼 대체 자력갱생이 농담일 수밖에 없는 북조선이 어디에 기댈 수 있겠는가?
남한? 아무리 ‘우리민족끼리 – 민족공조’가 외쳐진다고 해도 사실은 그보다 더 말이 안 되는 주장은 불가능하다. 대체 북조선이 이제까지 ‘인민의 식비’를 털어 넣으며 핵과 미사일을 꺼내들고 특이한 세일즈 외교를 하고 다닌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남한을 상대로 그저 협상이나 장사를 하는데는 그 정도까지가 전혀 필요하지가 않다. 아무리 미제를 끌어들여 뭐라고 수식해도 결국 뻔히 서울 및 수도권까지 날아올 뿐인 장거리포와 방사포면 족하다. 아니 그저 ‘굶주린 북녁 동포들이 우르르 몰려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면 족하다. 게다가 북조선에게 남한을 상대하는 것은 세상 그 어느 나라를, 심지어 ‘강도 미제’를 상대하는 것 보다 훨씬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통일주도권이라는 패권적 담론에 기반한 한반도 국가 간 체제의 속성상 필연적인 일이다.
북조선의 모든 노력의 목표는 체제보장이다. 그런데 과연 북조선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시점이 언제부터였는가? 동독이 무너지던 1990년대 벽두부터이다. 때문에 북조선은 설령 남한이 일정한 국제정치적 중재자가 될 수 있을지라도 궁극적으로 남한을 건너뛰어 미국, 일본과 상대하는 것을 목표로 해왔다. 물론 부시정부의 등장이래 그 소망은 적어도 몇 년 뒤로 미뤄지고 있다. 북조선이 남한이 자신들의 후견인이 되는 상황을 기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정말 거의 없다. 그게 하필이면 장거리포나 방사포 보다 좀 더 멀리 나가는 핵과 미사일을 꺼내드는 이유이다. 그게 핵으로, 미사일로 체제를 옹위 한다는 주장의 실내용이다. 그게 하필이면 6.15 기념행사 시즌에 미사일로 초를 칠 수 있는 이유이다. 북조선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국제정치적 역할을 과대 포장하는 것이 정치적 자산이 되는 남한 정부만이 애써 모르는 척 할 뿐이다.
남한은 물론 쌀도 주고, 비료도 준다. 하지만 북조선의 생명선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북조선의 에너지와 식량, 그나마 무역거래의 핵심인가? 그것은 개성공단이 아니라, 압록강에 있다. 정부의 공식적 행동이건, 이미 사라진 배급 대신 비공식적인 연명수단을 강구하는 인민들이건 모두 압록강으로 향한다. 중국의 후견에 몸을 의지하는 것은 북조선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일단 기대를 접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이다. 중국은 적어도 공식적으로는 탈북자를 강제송환 해준다. 군수물자로 분류되는 것도 거래할 수 있다. 경제적 곤경을 쉽게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정권유지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것은 한반도 패권경쟁의 맞수인 남한에게 바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어차피 지금의 수준에서 남한이 북조선의 경제적 곤경을 해소할 정도로 직접적인 부담을 할 수도 없다. 중국은 심지어 그 과정을 어느 정도 남는 장사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에게는 별로 가능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양의 문제이다. 즉 북조선에 진출한 개별 자본들이 그것에서 얼마나 이익을 얻고 있느냐는 문제 이전에, 남한 자본의 규모에서 그것이 나름대로 중요도를 차지할 만큼의 크기가 충족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북조선 경제의 절대규모, 나아가 북조선 정부가 남한의 정부나 자본과의 관계에 대해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한계에 제한하고자 하는 이상 그것은 남한 자본에게 소소한 수준을 넘는 것이 되기 어렵다. 북조선이 중국에게는 허용하는 천연자원에 대한 특권적 권리 따위를 남한에게 주는 정도가 아니라면 말이다. 하지만, 북조선 정권이 인민들 앞에서 남한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것으로 보일 행동을 할 가능성은 제로이다.
물론 미사일 이야기가 튀어나오면 한국은 두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정도는 좀 덜하겠지만 중국도 불편할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북조선 정권에게는 어느 정도의 금전적인 손해가 될 수도 있다. 북조선 정권은 그래도 위폐논란이나 인권문제로 협상이라기 보다는 추궁과 반박에 변명을 하는 것보다는 미사일이든 인공위성이든 하는 것을 놓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나은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미국정부는 현재로서는 이미 사정거리 밖으로 멀찌감치 비켜있는 상황이다. 물론 누군가는 미사일 발사대를 폭격하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북조선과 직접 대화하라고 말한다. 재미있게도 그들은 그동안 대체로 부시정부의 대외정책을 칭찬한 적이 없는 이들이다. 그렇다, 폭격을 고려하겠다고 말해 버리면 결국 뭐라도 서로 이야기를 하게 된다. 협상부터 시작해도 중간에 거의 반드시 있을 난항 동안에는 폭격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다. 결국은 그게 그것이다. 핵심은 북조선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진지하게 상대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북조선을 붙잡고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하면 이라크에서 수렁을 헤매는 채로 이란까지 확전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계산할 여유는 없어진다. 당연히 부시정부의 입장은 ‘단호’하다. 앉아서 ‘욕’만 하는 것이다. ‘X-밴드 레이더’ 빔을 허공에 휘두르며 말이다.
6.
다만 역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마지막 문제는 핵이던 미사일이던, 아니면 인공위성이든 역시 체제의 결사옹위를 위해 북조선이 준비한 카드를 마련할 방법은 결국 북조선 ‘인민들의 식비’를 줄여서 충당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장은 여전히 대체로 법외적 존재이지만, 배급이 끊어진지는 오래이다. 그래도 노멘클라투라의 생활이 쪼들릴 가능성은 별로 없고, 그 정권은 할 수 있는 한 체제의 기간요원들은 챙기려 들 수밖에 없다. 고난 속을 행군해야 하는 것은 오직 그 인민들뿐인 셈이다.
북조선 정부가 핵이나 미사일 같은 ‘위세재’에 쓸 자원으로 인민의 식생활을 해결할 수 없는 이유를 물으면 신기하게도 남과 북이 함께 미국 쪽으로 손가락을 돌린다. 당연히 핑계이다. 북조선 정부가 태평양 너머를 탓하는 것은 그 체제의 오래된 지배담론이라고 치자. 그럼 왜 남한 정부도 태평양 너머를 탓하는가? 그것은 강경우파들이 주장하듯 남한 정부가 딱히 ‘친북좌파’여서가 아니다. 그것은 강경우파들이 눈치 없이 털어놓는 찔리는 구석을 감추는 행동이다. 잊어버렸는가, 다른 것도 아니고 바로 ‘햇볕정책’을 한다며 처음 떠 벌여 놓은 것이 “연착륙”이니 “맏형”이니 하는 말들이었음을, 아니 처음부터 “햇볕”이라는 수사 자체가 무엇일 수 있는지를 정말 모르는가. 북조선 인사들이 그 뜻을 알아채지 못할 거라고 정말 믿고있는가. 안 그래도 쪼들리는 인민들의 먹고 살 자원을 가지고 핵과 미사일 쇼를 하는 북조선 정권의 행태는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그러나 남한이 북조선 인민들이 식비를 떼이는 상황을 겪지 않는데 보태준 것은 뭐가 있는가.
온정적 광선무기로 북조선의 보호막을 벗겨 놓겠다는 ‘햇볕론’이나 군비경쟁 속에 굶어서 쓰러지게 만들겠다는 ‘압박전술’이나 전쟁언어인 것은 매한가지다. 물론 어떤 명분으로 포장되었든 쌀은 쌀이고, 비료는 비료이다. 폭탄을 주는 것보다는 어쨌든 더 나은 일이다. 그래도 역시 치사한 것은 치사한 것이다.
어쨌든 ‘접대’해 주면 소소하나마 경제적, 외교적 실익이 있는 것이 북조선의 입장이다. 그래서 북조선 정부는 햇볕정부의 관계자들을 환한 외교적 미소를 띄고 만나준다. (설령 정권이 바뀌어도, 뭔가 들고 가는 이상, 역시 환한 외교적 미소와 호사스런 연회로 맞아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진보세력까지 그 외교적 미소를 따라 배워봐야 얻을 것은 동반추락이요, 잃을 것은 미래일 뿐이다.
하지만 이 치사한 패권적 온정주의조차도 핵위기/핵협상의 줄다리기 판에서나 지속이 되는 부수적 이벤트에 불과하다면, 그 썰렁함은 가히 하늘을 찌른다. 어느 샌가 국제정치의 틈새시장에서 굶주린 북조선 인민들을 상대로 패권적 온정주의를 과시하는 것이 남한의 최대의 정치적 이벤트가 되어버리고 스스로에게 내포된 시작부터의 불순함이 그것을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장 초라한 모습으로 바꿔놓는다.
7.
6자 회담은 돌고 또 돈다. 사태의 당연한 결말이지만, 어느새 대북 정책의 공적을 국내정치의 자산으로 오·남용 하는데 익숙해진 한국 정치세력들만이 핵위기/핵협상의 의미와 함께 쪼그라드는 국제정치적 위상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더 이상 뭔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 지금이 바로 좌파가 좌파답게 입을 열 때이다. 이 모든 과정 속에 내재해 있던 어떤 불순함을 태양아래 꺼내어 검토의 대상을 만들 때이다.
북조선 인민이 당상의 기근과 위기에서 목숨을 부지하려면 분명 남한이건 국제구호기구들의 원조이든 필요하다. 그러나 남한사회 내부에서조차 ‘핵과 미사일에 쓸 돈으로 인민부터 먹여 살려야 하지 않느냐’는 당연한 문제제기가 금기사항이 되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스스로의 의도 자체가 불순했기 때문이다.
즉, 애초 그것이 북조선 인민을, 북조선 인민으로서 살리기 위한 것 자체가 아니라, 북조선 붕괴를 대비한 ‘난민예행연습’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는지 질문해야 한다. (그런 게 바로 ‘좌파적 시각’이 필요한 부분 아닌가?) 대한민국의 정치집단들이 언젠가부터 굶주린 북조선 인민을 상대로 한 적선행위를 ‘정치적 위세재’로 사용하고 있지 않은지 질문해야 한다. 화기애애한 외양과 섣부른 낙관 속에 끈질기게 숨어있던 근본적인 문제, 즉 한국전쟁이래 지속해온 한반도 국가간 질서의 패권주의적 가정들 자체를 문제삼아야 할 때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때 알게 될 사실 하나는 남한이 북조선의 행동에 대해 스스로 안에서 입 조심을 하게 된 출발은 결국 ‘쌀과 돈’으로 북조선을 길들이겠다는 패권경쟁의 발상이 낳은 역류현상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는 ‘북괴가 남침해서 독재치하에 살게 된다’는 이유로 냉전적 반공독재라는 ‘남한식 유일사상체제’를 구축한 것과 그 메커니즘에서 동일한 것이다.
자, 이제 사실을 말해보자. 한반도 국가들의 패권적 경쟁질서 속에서 북조선이 핵과 미사일이라는 위험한 사치재를 들고 ‘체제옹위’를 주장할 궁극적 상대, 궁극의 맞수는 결국, 결국 누가 될 수 있는가.
그런데 북조선 지배세력은 관두고, 과연 그 인민들조차 그들이 사는 국가가 핵으로 무장하지 않고, 유일사상체제에 속박되지 않아도, 북조선과 그 미래는 여전히, 그리고 더 많이 그 인민들의 선택의 몫으로 남을 것이라고 신뢰를 해 줄 수 있을까? 바로 ‘우리-대한민국’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핵으로 무장한 그들의 기아상태의 국가 안에서이건, 혹은 국경너머 어디서이건 ‘난민’이 되는 것 이외에 어떤 선택지가 남는가. 그런데 정말로 북조선 인민들이 단체로 ‘대한민국의 품속으로’ 뛰어오면 인간답게 대해줄 자신은 있는가?
남한의 선거 때 심심하면 불어오는 북풍이나 북조선의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이야기들이 한국사회가 더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선택을 하는데 아무 도움도 안되었듯이, 남한이 행하는 것 속에 북조선 인민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는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을 반복해 온 것은 없는가? ‘통일'(누가 주도하는?)을 할 상대이니 식량을 주자는 말, 혹은 (정부가)말을 안 듣고 미사일이나 만드니 (인민들을) 굶기자는 말은 정말로 얼마나 다른 것인가.
스스로 내릴 수 없는 핵-선군정치의 목마에 올라탄 북조선과 적대적 무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반복할 미국정부. 하지만 가장 서글픈 부분은 그 의도된 교착의 시간이 북조선 인민들에게 또 다시 얼마나 모진 고난의 행군을 강요할 것인가에 있다.
이미 쇠락하는 경제상황에서 막대한 재정자원을 핵과 미사일을 장만하느라 허비한 북조선, 인도적 구호사업조차 패권경쟁의 제물로 삼는 남한. 남북을 불문하고 한반도의 국가 간 질서 속에서 패권적 경쟁을 당연시 여긴 모든 이들 중, 기근 속에 죽어간 북조선 인민들의 비참에 대해 아무 책임도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자, 과연 그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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