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개혁진보인사”의 부족한 반성과 “내부의 위험”
-‘대자보’, 2006년 8월 3일자, [김영호 칼럼] ‘진정한 진보정당의 탄생을 기대한다’에 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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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8 민주노동당 당원 게시판, 피플타임즈 게재]
[** 자펌 하며 약간의 오타, 비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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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콩밭을 향하는 마음
그동안 노무현정부에 대한 도를 넘은 추종으로 항상 눈총을 받아온 “언론개혁시민연대”의 “상임공동대표”라고 직함을 지닌 인사 한 분이 어느 인터넷 매체에 칼럼을 실었다. 그 내용을 요약한다면 ‘노무현 열우당으로는 안되겠다, 비정치권을 포함하여 진정한 의미의 진보를 구현하는 국민적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자보’, 2006년 8월 3일자, [김영호 칼럼] ‘진정한 진보정당의 탄생을 기대한다’ – http://www.jabo.co.kr/sub_read.html?uid=16584§ion=section1&wdate=1154577480)
뭐 이제라도 정신차렸으니 다행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가만히 읽어보니 본심은 어딘가 콩밭을 향하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 정부와 열우당의 정치적 파산은 이미 결론 난 문제이다. 그런데 대표적 ‘친 노무현 시민단체’의 공동대표라는 이가 ‘새로운 진보개혁세력 결집’을 운운하며 은근 슬쩍 민주노동당을 걸고 넘어간다. 노동당이란 현실적 거부감이 가로막고 있으니, 지지율 10%미만이라는 장벽을 넘지 못하는 정치실험은 이제 끝내고 문호를 활짝 열어야 한다’나?
대중적 확장에 제동이 걸린 상황은 우리(-민주노동당을 말함)가 분명 풀어야 할 숙제이다. 그러나 ‘노동의 과소 대표성’이 한국 민주주의를 허구화한다는 문제, 그리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고는 신자유주의의 광기에 맞서 대중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민주적, 진보적 전망이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 현실이다. 그것을 외면하는 자는 2006년 오늘의 한국사회에서는 ‘진보’를 감히 입에 올려서는 안 된다.
2. ‘개혁진보세력’의 진정한 업적은?
노무현의 (재벌)참여정부의 정치적 파탄은 그들이 DJ정부의 뒤를 이어 한국사회에 대한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담지자가 된 순간부터 이미 예정되어 있던 것이고, 그것을 이미 4년 전부터 지적해 온 사람들이 이를테면 민주노동당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시기상조라던가 혹은 냉전수구세력이 어쩌니 저쩌니 하며 애써 그 진실을 외면해 온 사람들이 이를테면 노무현 정부에 대한 암묵적, 노골적 지지를 유지하던 일부 시민단체와 같은 이들이다. 우리는 심지어 민주노동당 내부에서 까지 가끔씩 암약상을 보이던 ‘자유주의 정치개혁세력’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들’이 실제로 이룬 업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 필요가 있다.
노무현-열우당 정부를 특징짓는 여러 가지 코드 중 당연 독보적인 것은 ‘오만과 독선’이다. 그런데 그들은 재벌과 고위 관료집단 같은, 아니 심지어 그들이 ‘수구세력’이라 칭하는 한나라당까지 포함해서, ‘기득권층’에게는 언제나 아주 쉽게 양보한다. 그들의 오만과 독선은 언제나 서민대중에게만 100% 파워로 발휘된다.
그런데 나는 노무현 정권의 그런 ‘오만과 독선’이 배양된 한가지 의외의 이유는 이들이 은근히 믿는 구석 중 하나가 자신들이 적어도 자신들의 ‘왼편’에서는 ‘정권 내 놓아라’는 수준의 반대는 안 들을 거라는 기대였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즉 노무현 정권과 그것을 낳은 소위 정치개혁주의자들은 어쩌면 자신들이 무슨 사고를 치건, 적어도 ‘왼편’에서는 (강경우파가 하듯) 정권 자체를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그들이 치를 대가는 대체로 추진과정의 잡음수준이라는, 그래서 ‘어쨌든 해치워 버리면 그만’이라는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는지 모른다.
당연한 일이지만, 정권자체가 공격목표가 되는, 때문에 굴복하고 타협할 만큼 위험한 것은 오직 ‘더 오른편’으로 부터의 반발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한, 자신들의 개개 정책이 아무리 민중의 원성을 산다고 해도, 도리어 그것이 반 노동자적, 반 민중적인 것이면, 그것이 재벌과 시장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노무현 정부의 해괴무쌍한 ‘자주적 신자유주의’는 교정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자유주의 정치개혁세력의 역사적 소멸 속에서 마지막으로 기억해 둘 것 한가지는 노무현 정권의 습관화된, 국민을 참칭하며 국익앞에 침묵을 강요하던 ‘오만과 독선’은 그 기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당연한 귀결인 ‘양극화’, 즉 대중이 겪는 빈곤화와 차별의 고통의 증가가 이들의 발밑을 허물 수밖에 없는 상황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아마도 좀 더 사실에 가까운 설명은 그들이 ‘기득권층과 다수 대중 사이에서 동요했다는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들이 심지어 강요받지 않아도 자본과 국가 엘리트 집단과 불화를 덜 겪으며 좀더 쉽게 추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었고, 정치집단이자 관료라는 ‘직업집단’으로서 그들은 다른 무엇에 앞서 스스로에서 좀 더 쉬운 길을 선택했을 따름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배양하는데 얼마가 되었든, 알게 모르게 공헌한 것이 그동안 노무현 정권에 대해 암묵적, 노골적 지지의 입장을 지녀왔던 소위 ‘개혁진보성향’의 단체 및 인사들의 ‘업적’ 중 하나가 될지 모른다.
하지만 그 정권과 집권당의 인사들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데 그들과 ‘옛 동창’인 ‘진보세력’의 일부가 좀 소극적이라고 해서 대중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항상 적대적인 행동을 해온 정권을 봐주었을 이유는 없다. 그 결과가 총선 이후 급락하는 노무현 정권과 열우당의 지지도였던 것이다.
3. 그들에게 ‘노동당’이 미운 이유
침몰하는 배의 쥐떼들 처럼, 청와대, 열우당 그리고 그들의 ‘외곽’을 이루던 친노적 의사pseudo’진보’세력들은 각기 제 살길을 찾아 두고 천지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있다.
그런데 사실상의 자침으로 끝난 ‘참여정부’호의 항해에서 탈출하려는 이들에게 영 꺼림칙한, 눈에 가시 같은 존재가 하나 있다. 그렇다, 그들의 옛 ‘동창’들도 상당수 참여한 ‘노동당’의 존재이다. 냉전적 군사독재의 추억과 결부된 (당연히 추억 이상은 아니다) 강경우파 존재는 도리어 그들에게 장사할 밑천이지만, ‘노동당’은 그 자체로 그들의 무의미성을 역설하는 존재이다.
즉, 노무현 정권을 둘러싼 개혁주의 거품경제의 필연적인 파탄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일부 친노적 사이비 ‘진보개혁세력’이 가장 못마땅해 하는 것은 ‘개혁주의’가 그렇게 신자유주의 경쟁국가의 디딤돌 이상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닌 듯 보인다.
도리어 그것이 그렇게 될 것임을 예언하던 이들이 이미 존재했고, 심지어는 대한민국 제도 정치질서에 일정한 지분을 획득하는 것까지 이르렀다는 사실이다. 즉, ‘민주노동당’은 그 존재만으로도, 친노적 외곽으로 처신했던 사이비 ‘개혁진보’ 인사들에게 신자유주의를 위해 봉사하고 끝난 그들의 불유쾌한 과거를 사회적으로 상기시켜주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들의 소망은 민주노동당이 ‘범개혁세력’의 일부로서 오명을 함께 뒤집어 쓰는 것이고, 그들과 함께 좌절해서, 노동자 중심의 진보정당, 자본의 이해에 대한 저항을 천명한 일관된 신자유주의 반대세력, 평등주의적 대안을 지향하는 정당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그들이 자신의 과거를 반성함 없이 정치영업을 계속 할 수 있는 만만한 도피처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연대는 좋은 말이고, 늦더라도 정신을 차리는 것은 어쨌든 좋은 일이다. 그러나 ‘문제있는 과거’를 반성하고 청산하는 현실적인 노력이 없이는 신뢰도 없고, 당연히 제대로 된 연대도 가능하지 않다. 불과 두 해 전에는 ‘진보정당 시기상조’를 주장하다, 참여정부의 파탄 속에서 ‘노동당의 한계’를 주장하는 것은 그저 우스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노무현 정권의 파산은 신자유주의가 대중의 고통의 진앙지가 되는 오늘, 뭉뚱그려 국민을 내세우는 정치적 주장의 결말이 무엇인지를, 즉 ‘국민주의의 한계’를 웅변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4. ‘내부’는 안전한가?
다만, 어느 친 노무현 성향 시민단체 인사의 부족한 반성과 더 부족한 대안을 그저 비웃고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 하나는 ‘노동자 중심 진보정당’이라는 민주노동당 안에 흐르는 좀 이상한 기운 탓이다.
2004년의 국가보안법 정국을 비롯해서, 민주노동당을 자꾸 열우당과 같은 배에 태우려던 당내의 (‘왕년의 비판적 지지론자들’의) ‘재생 비판적 지지론’의 업적은 열우당이 망할 때 민주노동당이 동반 침체하는 구도에 힘을 실어준 것이다. 게다가 이들의 비판적 지지론이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조선 정부의 외교적 이해에 따른 선호경향과 연동되는 만큼, ‘수구냉전세력’에 대한 정치적 과대평가 또한 쉽게 극복될지 의문이다.
참여정부의 파탄을 앞에 놓고, 어째서인지 민주노동당의 ‘노동당’스러움부터 흔들자고 나서는 어느 ‘친노(盧) 시민단체’ 인사의 주장을 접하며, 어째서인지 민주노동당내에서 ‘반수구, 반보수 연합-진보개혁세력 대연합’론과 ‘단일전선체’주장하던 목소리가 겹쳐지는 건 단지 착각일까?
그리고 그 와중에 바로 ‘유화적 대북정책’을 중심 고리로 하는 ‘반수구-반보수 연합’의 주창자들이 부정선거를 해 가며 당권을 장악했음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총괄로서 한미 FTA가 추진되고, 적어도 그 주창자들 언어 속에서는 그것이 개성공단과 이종교배를 하며 시장주의 유일사상체제 – 신자유주의와 수령론 유일사상체제가 이해를 교환하는 기묘한 한반도 질서의 미래상을 그려댄다.
다른 한편에서는 또 한번 정치판이 요동칠 정계개편, 권력재편의 물결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민주노총과 북조선 정부가 비판의 성역이 되었던 것은 정책과 노선의 ‘상부구조’ 차원에서 민주노동당의 진보성, 현실 대응능력을 멍들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부에서는 당 대표 부정선거문제로, 외부로는 거창 금품 살포사건으로 외화 된, ‘진보정당다운 윤리성’의 문제를 넘어 법규위반으로 까지 치달은, 내부 민주주의의 훼손은 당의 장래에 대한 불안을 더욱 증폭시키는 진보성의 ‘물적 토대의 훼손’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대표적인 ‘진보적 대중들’인 그 당원들의 손이 닿지 않는 어느 진보정당의 진보성이 과연 조만간 닥쳐올 정치적, 사회적 격랑 속에서 지켜질 수 있을까?
‘어쨌거나 노동자 중심 진보정당은 배제하는 국민적 개혁세력 결집’을 주장하는 과거 친노무현 단체 인사의 주장에서부터, 할 일은 개성공단 방어 정도 밖에 없어 보이는 ‘반수구-반보수 연합’과 ‘단일전선체’를 주장하는 민주노동당 내외의 주장들, 그리고 여전히 해법을 피해서만 사태가 진행되는 당내 부정선거 문제가 묘하게 오버랩 되며 만드는 이 알 수 없는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일까?
정당이라는 것들이 대체로 소수인사들의 출세의 발판이 되고 명멸해간 대한민국 정치사의 그늘이 어째서인지 갑자기 나를 두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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