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레가 먹고 남긴 야생(野生) 포도송이
시큼한 자연의 맛, 야생의 맛


리장


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어, 한낮에 밭에 나가는 것은 기름통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무모한 일이다.

그래서 부모님은 선선한 새벽녘에 나가 2-3시간 동안, 더위로 자주 찾지 못한 밭을 둘러보러 나가시곤 한다.

밭에는 오이, 참외, 열무, 옥수수, 호박, 토마토 등 야채와 과일들이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쑥쑥’ 제멋대로 자연스레 자라고 있다.

오늘은 아랫밭에 심어놓은 포도나무에서 열린 포도를 따 오셨다.
“포도송이 씻어서 먹어라!” 하고 검은 비닐봉지안에 담긴 포도송이를 건네주신다.
그것을 받아 안아 싱크대로 가져가 씻었다.

밭에서 갓따온 포도를 흐르는 물에 씻는다

“벌레가 많이 먹어서 먹을게 없다” 하고 거실로 들어오시면서 어머니가 말하신다.

정말 봉지안에서 꺼낸 포도 알맹이 껍질마다 벌레가 맛본 흔적, 갈색 반점이 여기저기 박혀있다.

갈색 반점은 말벌이 먹은 자국이다

구멍뚫린 채반에 넣고 흐르는 물에 씻어 물을 빼서 선반위에 올려놓고, 다시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본다.

성한 구석이 없어 얼마나 맛날까 하는 의구심이 들지만, 작년 우리집 포도가 참 달달했던 기억이 있기에 성한 놈을 골라잡아 먹어본다.

성한 포도알갱이도 보인다

잘 익어 보이는 포도알맹이지만, 시큼한 기운이 입안에 맴돈다.

그래도 이 시큼한게 맛나다.

자꾸 끌려 손이 간다.

포도송이에 살던 거미도 함께 왔다. 거미를 꺼내주었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맛’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벌레가 먹고 남긴 포도송이, 약도 치지 않고 신문지로 포도를 싸지 않고 그냥 그대로 놓아둔 야생의 맛.

그 맛을 맛본 사람이라면 설탕같은 포도보다 시큼한 포도를 잊지 못할 것이다.

다 씻었다

* 포도를 씻어놓고 간만에 설거지도 해버렸다. 그리고 어머니는 밭에서 따온 옥수수를 베란다에다 찌기 시작하신다. 우리집엔 주점부리가 많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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