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류기화님의 추모갤러리가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갤러리 속의 사진들을 하나씩 넘겨 보다, 살아계셨을 적의 모습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하늘에서 바다가 갯벌이 아닌 새만금을 내려다 보고 계실 고인을 생각하니 눈물이 납니다.
새만금을 지켜내지 못함을 반성하고 힘없는 자신을 자책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원망합니다.
왜 이리도 세상은 억울한 것들 투성이인지?
왜 갯벌에서 조개 잡으면서 평화롭게 살아가길 바라는, 수많은 어민들을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아야 하는건지?
이 놈의 세상이 너무나 미워집니다.

* 류기화님께서 일본 이사하야만을 다녀와서(2005년 12월 8일 ~ 12월 11일) 쓴 글을 소개합니다.

* 출처 : 故 류기화님의 추모갤러리

http://nongbalge.or.kr/b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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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사하야만을 다녀와서

새만금, 새만금을 생각하면 먼저 슬프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저 개인에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하고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고,
또 저에 삶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바다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3학년 졸업 후 친구집에 놀러 가서입니다.

생선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던 저에게 그때 만난 첫 바다의 느낌은,

바다 특유의 냄새와 해태 그물에서 썩는 냄새가 싫다는 것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1년 후 계화도란 곳을 다시 올 줄은 몰랐습니다.

결혼 후 바지락 양식장 관리로 일하던 신랑을 따라 바다를 가면서

주민들과 싸우는 것이 너무 싫었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에는 이놈의 바다 안 없어지나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 바다가 얼마나 귀하고 좋은 곳인지를 생각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인해 양식장 관리를 못하게 된
신랑 때문이었습니다.

새만금간척사업이 시작되고 ‘이제는 바다가 다 됐구나’ 하는 생각에
직업을 다른 것으로 바꾸려고 하였으나, 그것이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다시 바다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다시 바다를 나가게 되면서 사람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바다 일로 얻어지는 수입과 다른 직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쁨이
있음을 알게 되면서부터 바다는 자연스럽게 제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3박 4일간의 일본 방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으로 새만금과 같은 처지에 있는 일본의 이사하야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도착한 다음날, 이사하야만 소송이 열리는 사가지방법원에서 방청을 했습니다.

우리와는 달리 법정 내에서 주민들의 발언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곳 주민들 역시 새만금에 있는 우리와 같은 마음임을 주민들의 발언을

듣고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이사하야 소송단장인 마나기 변호사님이 정부 측 관계자분들을 야단치는

모습과 찬․반측 주장 또한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법원 방청을 마치고 시민회관으로 이동하여 심포지엄에 참석했습니다.

그 다음날에는 전차를 타고 이사하야만으로 가 가장 먼저 새만금의
해창갯벌과 같은 곳에 당도 했습니다. 해창갯벌과 같이 주민들이 만든
간척사업의 중단을 기원하는 장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기념촬영을
하면서 한․일 변호사, 주민, 시민단체 관계자 등은 모두 한 목소리로
‘소생하라,아리아케해! 소생하라, 새만금!’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마을회관으로 이동하여 이사하야만 어민들을 만났습니다.
새만금과 유사하게, 폭폭하게 변한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은 후 함께
배를 타고 이사하야만 방조제 수문이 있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서 일본 어민은 미리 준비한 꽃게, 숭어 등을 보여주며 이곳에서는
더 이상 이것들이 잡히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놀라웠던 것은 수문 바깥쪽 바다에까지 콘크리트를 깔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방조제 안쪽은 물론 바깥 쪽 바다까지 엉망이 되어 있었습니다.

3박 4일간 일본에서 보고 들은 것들을 글로 표현하기는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함께 했던 모든 분들께 진정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함께한 시간이 너무도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제 마음의 빚으로 남아있는 것들을 어떻게 갚아야 할 지 모르겠습니다.

새만금 안팎의 어민들을 생각하면 비록 슬프지만, 여러분들의 사랑으로

인해 제 마음은 무척 행복합니다. 저 하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새만금의 모든 사람들이 바다에서의 삶을 유지하며 행복했으면 합니다.

유기화 (부안 계화도 여성어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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