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이 있으세요?
타인과의 소통이, 누군가의 사랑이 필요한 나…는…

리장

제가 지난 월요일 한글날에 빌린 책, ‘발로 차주고 싶은 등짝, 와타야 리사, 2002′(이하 등짝)을 기억하십니까? 등짝이 기억나시냐고 묻는 것이 무리일지도 모르겠지만. 왠지 이렇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

오늘 그 등짝을 실업급여를 받으러, 새로 문 연 고용지원센터에 가는길에, 센터에서 실업급여 상담을 받기 위해 간이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중에, 서울로 올라가는 전철 안에서 다 읽어 버렸습니다.
이번에도 후루룩하고 말입니다.

파란색 표지가 참 묘한 기운을 내보냅니다

대학시절 무라카미 하루키를 시작으로 일본작가, 일본소설에 집착한 적이 있습니다.
그들의 그것의 발랄한 상상력이 제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잠시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노트에다 이런저런 것들을 긁적이던 저로서는 그들의 범상치 않은 상상력이 너무나 부러웠었습니다.

어떻게 저란 생각을…나도 저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이야기 속에 빠진 저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그런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습니다.
비단 하루키 소설과 에세이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국내 작가들보다는 바다 건너 일본사람, 하루키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었습니다.
머 국내 문학을 제대로 접하지 않고 속단하기는 무리일 듯 싶습니다만.
‘상실의 시대’의 남자 주인공인 와타나베와 자신을 동일시했던 기억을 아직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예전 그 느낌, 그 부러움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 책이 바로 이번에 읽은 등짝입니다.
등짝을 읽게 된 계기나 동기는 너무나 순진해서, 무슨무슨 골치아픈 연관성이라 할 만 한 것은 눈꼽만치도 없었습니다. 번역된 제목 ‘발로 차 주고 싶은 등짝’이 맘에 들었고, 머리카락에 가려 어떤 눈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 보이는 표지의 삽화가 등짝을 집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우엉줄기같은 다리를 한 하세가와 하츠(여주인공)

등짝은 일본 고등학교에서 소위 왕따, 따돌림을 당하는? 아니 당한다기 보다 학교라는 거대한 집단생활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가지며, 혼자서 사람들과 소통하거나 정을 통하지 않고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고자 했던 여학생과 남학생이 어떤 매개체(패션모델, 등짝)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데 되면서,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얻게 되면서 끝을 맺습니다.

그 감정이란게 누군가와 소통, 교류, 함께 하고 있다란 느낌 그런게 아닐까 합니다.
등짝에서 등장하는 이런 복잡한 감정과 예감들은 꼭꼭 숨어있지 않고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사랑, 좋아한다 라는 여주인공의 감정도 뒤죽박죽 섞여 있지만 작가는 이를 말해주지 않고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등짝은 흔한 애정소설이 아니라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이 등짝은 일본 최고 권의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의 공동수상작이라고도 합니다. 그게 머 중요한건 아니지만.

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누군가와 소통하라’고 ‘사랑받고 사랑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숨기지 말라고 고막이 터져라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외치는 것 같아, 가슴 한쪽이 뜨끔해서 하는 소리입니다.
등짝을 접한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네요.

암튼 나…를… 망설이게 만든 등짝…
누군가가 발로 내 등짝을 차주길 기다려봅니다.
아니 제가 먼저 등짝을 차 주어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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