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비 내려서 머하노?
비가 안와도 걱정, 내려도 걱정인 농심(農心)


리장


어제도 자정이 넘어서야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이부자리에서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창가에서 ‘후두둑-후두둑’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하루종일 날이 흐려서 비가 올 듯 보였는데, 그제사 창문을 내리치며 비가 내리기 시작한 모양이었습니다.

창문을 열고 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그러면 옥상까지 올라가서 가을비 내리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 다시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게 될 것 같은 불안감에 그냥 이불을 뒤집어써 버렸습니다.

대신 한 동안 비가 오지 않아 농작물 해갈 때문에 근심하시던 부모님의 걱정을 풀어드릴 만큼 비가 많이 내리길 바라면서 잠을 청했습니다.

5-6시간 잠을 자고 일어나 보니, 비는 그쳐있었습니다.
아침까지 내릴 줄 알았는데 가을비는 가로수의 낙엽만 잠시 흔들어 놓고 다시 하늘로 올라가 버린 듯 보였습니다.

세안을 하고 나오니, 어머니께서 아침준비를 하시다가 이렇게 이야기 하시더군요.
“비라고 씨알딱만큼 와서 뭐하노?”
‘씨알딱만큼’이란 ‘씨알데기 없다’란 말입니다. 한마디로 쓸모없다는 이야기지요.

집 앞 가로수에 나뭇잎만 살짝 건드리고 비는 그쳐 있었습니다

새벽에 내린 비는 땅을 살짝 적셔만 놓았습니다

작은 물웅덩이에 가로수가 비춰집니다

가지가 꺽이고 담배꽁초로 더렵혀진 가로수는 비를 한참 기다렸을 싶습니다

정말 밖에 나가보니 땅을 살짝 적셔만 놓고, 비는 그쳐버린 듯 했습니다.
의례 가을비가 내리면 날이 추워지곤 하는데, 새벽에 내린 비는 기다리던 가을비가 아닌 듯 싶었습니다.

서울에 올라갔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밥을 먹는 동안, TV 뉴스에서는 일기예보를 내보내고 있었습니다. 부모님도 밭에서 돌아와 식사를 끝마치시고 거실에서 TV를 보시고 계셨습니다.

헌데 유심히 일기예보를 보시던 어머니가 이렇게 이야기 하시더군요.
“이제와서 무신 비야? 추수해야 하는데…”
이번주 금요일과 일요일에 비가 전국적으로 내리겠다는 기상예보를 들으시고 하시는 소리였습니다.

벼가 바싹 말라야 추수하기도 편한데 비가 온다고 하네요

이제 다 영근 벼 낱알을 수확해야 하는데 비가 내리면 낱알이 젖어서 콤바인으로 추수하는데도 적잖이 애를 써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무거운 몸무게를 가진 콤바인은 논바닥에 자주 주저앉거나 수렁에 빠지기도 하기 때문에, 추수기간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이 정말 크게 도와주는 것이지요.

암튼 오늘 하루내내 비가 안와서 걱정하고, 또 비가 많이 온다기에 걱정하는 우리 부모님과 이 땅의 농부들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니 가슴이 찡해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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