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에 도청장치? 내 머리위의 감시장치?
우리는 눈에 띄게 감시당하고 있다


리장


한 달전 인사동 쌈지길에서 누군가를 기다린 적이 있습니다.
저녁 7시쯤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장소에 먼저 도착했기에, 쌈지길 앞 버드나무 아래 쪼그려 앉아 희미한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무심코 등 뒤 벽에 내걸린 음악공연을 안내하는 현수막을 보게 되었습니다. 유명가수와 그룹들이 줄줄이 명기되어 있는 현수막에서, 눈에 확 들어오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내 귀에 도청장치’

‘내귀에도청장치’라는 밴드 이름이 눈에 띕니다

참 특이한 이름은 가진 그룹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인디 록 씬에의 부흥기였던 1990년대 말 독특한 라이브 무대와 음악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밴드라고 합니다. 초기 ‘내 귀에 도청장치’의 음악은 글램 락의 제왕으로 군림했던 데이빗 보위를 연상시키는 사이키델릭한 음악이 주를 이루었다고 하네요.

2001년 1집 ‘E-mail’이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고 한국 밴드 음악의 또 하나의 가능성으로 기대를 모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2집 발매까지는 적잖은 공황기를 겪으면서 멤버 교체를 단행하고, 데뷔앨범 이후 2년만에 3집 ‘PRANA’를 발매하고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 귀에 도청장치 라이브 공연 포스터, http://www.bandprana.com/

그리고 이 밴드의 특징이라고 사람들이 꼽는 것을 보니, 음악적 성숙도와 다양성뿐만 아니라 수많은 라이브 활동속에서 갈고닦은 현란한 라이브 퍼포먼스라고 합니다. 이 퍼포먼스는 단순히 비쥬얼적인 면에 치우친 쇼가 아니라 그들의 음악적 표현과 느낌을 발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헌데 ‘내 귀에 도청장치’란 록 밴드의 이름은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기억이 있었습니다.
차근차근 기억을 헤집어 더듬어 보니, 1988년 8월 4일 모 방송사의 9시 뉴스 생방송 중 한 괴한?의 남자가 뛰어들어, 앵커를 제치고 마이크에 대고 ‘제 귓 속에 도청장치가 있습니다. 여러분! 도청장치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방송사 직원들에게 끌려나가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저 앵커 얼마나 난감했을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충격적인 방송사고의 기억이, 아직도 제겐 생생히 남아있어 이를 가지고 종종 ‘내 귓 속에 보청기가 있다?’라며 친구에게 농담을 건네곤 합니다. 아참 그리고 아마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영화도 이 방송사고를 패러디 한게 아닐까 합니다. ^^::

암튼 요즘 귓 속에 도청장치 보다 더 무섭고 무엇을 찍어대는지 모르는, 머리위의 감시장치를 의식하면서 피해다녀야 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영화 ‘에너미오브스테이트’의 윌스미스와 진해크만처럼 말입니다.

지하철 역에도, 버스에도, 집 현관문에도, 편의점에도, 도서실에도, 학교에도, 회사에도, 엘레베이터에도, 평택 대추리 도두리 마을에도 CCTV(폐쇄회로)는 우리 일상의 공간에서 없는 데가 없습니다.

도서관 야외휴게실에 설치된 폐쇄회로

청소년문화의집에 설치된 감시카메라

그리고 제 머리와 사람들 머리 위에 둥둥 떠서는 감시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신이 인간과 인간세상을 엿보는 것 처럼 말입니다.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또는 버젖이 대놓고, 사람들의 온갖 행동이나 모습을 저 음침한 렌즈를 통해 영상 속에 가둬두고 있습니다. ‘안전’ ‘방범’ ‘기록’ ‘사전예방’ 이란 이름들을 달고서…

암튼 일상화된 피라미드형 감시체제 속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방송사고를 당한 뉴스앵커처럼 묘안이 떠오르지 않아 난감합니다. 정말 이러다간 산에 들어가거나 땅굴파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CCTV를 피해서 일상화된 감시구조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면 참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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