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상한 생각을 한다. 특히 각을 세우고 ‘혁며엉’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더욱 그렇다.

이야기를 어떻게 하건, 이를테면 ‘소비에트 러시아’가 ‘혁명’을 통해 만들어진 국가, 사회일 것이다.

‘소비에트 러시아’가 존속한 기간이 대충 70여년 정도 된다.

한때 사회주의 생산양식이 어쩌니 저쩌니 하고, 그것이 역사의 새로운 단계이니 뭐니 하던 시절도 있었건만, 따져보자면 한 사람의 일생에도 빠듯한 시간, 즉 소비에트의 품에서 ‘요람’을 경험한 사람들이 늙어 ‘무덤’으로 가기 전에, 그들의 삶을 결정하던 체제가 사라진 것이다.

게다가, 구 소련의 인민들이 그 체제의 혜택을 어떻게든 보던 시간을 계산해 본다면 그 시간은 더욱 짧아질 것이 틀림없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외생변수’를 빼고라도 실제로 소련의 인민들이 그 체제로 부터 어떻게든 수혜라는 것을 얻은 것은 결국 내전이나, ‘사회주의 건설기’의 혼돈(이를테면 대기근과 아사로 이어진 농업집산화 과정 같은..)이 일단락 된 후, 거의 1930년대는 가야 해당되는 일이니까 말이다.

그럼 ‘Soviet Russia’말고 인구에 회자되는 또 하나의 ‘S’를 비교해 보자. 즉 사회보장국가의 모델처럼 이야기되는 스웨덴의 경우이다.

이를테면 스웨덴 복지국가의 출발로 이야기되는 ‘짤즈요바덴 협약’이 1938년의 일이다. 즉 지금으로부터 68년 전의 일이다. 물론 스웨덴 복지국가가 실제의 약발을 낸 것은 대충 전후의 일인 것을 생각해 보면, 스웨덴의 사회복지국가가 그 체제의 안에 사는 사람들에게 분명한 수혜를 준 시간은 ‘소비에트 러시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그 체제를 요람으로 태어난 사람들의 생애주기가 다 끝나기 이전에 혁명을 통해 성립된 구 사회주의이건, 개량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사민주의이건 이미 망하거나 혹은 저체와 후퇴에 직면해 있는 것, 즉 과연 정말로 최소한 한 세대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보장해 줄 수 있는지는 이미 하나는 실패로 끝났고, 다른 하나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놓여있다.

그러나… 그러나 마지막으로 나는 ‘S’로 시작하는 두 사회가 , 마찬가지로 ‘S’ 돌림자의 이념과 결부된 사회적 변화를 위해 인간적, 사회적 대가를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소유의 전면적 국가집산화를 통해 ‘역사의 새로운 단계’에 이르렀노라 말했던 사회가 평범한 대중에게 준 삶은 ‘개량’을 통해 얻어진 것 보다 얼마나 더 대단한 것이었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개개인의 삶 속에서 사회의 변화가 만드는 효과라는 것은 어떤 경로를 통해 충족되건 삶의 선택에 대한 더 많은 자율성과, 생애를 이어가는 과정에 대한 한 안정성으로 경험될 것이다. ‘비용대 효과’에 대한 사고는 과연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어야 하는 것일까? 사회변혁이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절대로 사고 될 수 없는 것일까? 게다가 종종 그 ‘비용’의 실제 내용이 인민의 고난과 생명이라면 말이다. (만일 그것이 아니라면 과연 마오의 대약진과 문화대혁명, 혹은 폴포트의 캄보디아, 또는 인민의 고난으로 행군하는 선군정치를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시작할 수 있는 것일까?)

역사학자들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우리는 ‘소비에트 러시아’를 성립시키기 위해 본의든 아니든 러시아 인민이 치러야 했던 대가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짤즈요바덴 협약’을 위해, 그리고 그것이 사회보장국가로 이어지기 위해 죽었다는 스웨덴 노동자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두 체제는 – 적어도 현재로는 –

대충 70년 남짓한 수명을, 즉 근대적 의료시스템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기대수명이 80세 이상이 된 현재의 시점에서, 그 체제 안에서 태어난 이들의 생애기간에 못 미치는 시간 동안의 존속을 보여주었다. 물론 그 중 하나는 이미 사멸했고, 다른 하나는 불확정의 미래를 지니고 있지만 말이다.

사회를 변혁한다는 것,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개개인의 삶 속에 얼만큼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것인가를 통해 평가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피안의 무엇이 아닌 차안의 삶, 현실의 개개인들의 삶을 생각하는 것이 유물론자의 태도라면 말이다.

인민의 피로 목욕을 하고도 그 체제 속에서 태어난 한 세대가 채 끝나기 전에, ‘혁명후 사회’는 사라졌다. 물론 ‘개량의 성과’ 또한 정체와 후퇴의 기로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채 80년도 지속하지 못한 결과물들 앞에서 절대를 외치는 것은 ‘인간적’으로 무의미 할지 모른다.

개량의 사회가 여전히 자본과의 위태위태한 세력균형 속에 줄타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소유의 집산화를 이룬 사회들에서도 결국 노동과 삶의 구체적 과정은 자본의 전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후일담을 생각해보자. 구 소련과 구 동독의 공업도시들이 최악의 공해로 악명을 떨쳤음을 기억해 보자. 불행하게도 ‘전위정당이 지도하는 노동자 국가’나 ‘소유의 국가집산’은 생각처럼 대단한 단절점이 되지 못했다. 결국 그 사회에서도 해방적 미래는 여전히 투쟁의 지속 그 자체에 놓여있었다. 그리고 어처구니 없게도 ‘개량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한두번의 ‘정권교체’로 그 근간이 와해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국가권력이 계급성의 결정적 변화를 말했음에도, 역사 속에 실현된 모든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계급’의 이름을 독점한 어느 정당의 독점적 정치권력 밖에서 생존이 불가능했음을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그 역사의 뒤에서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진실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순결한 이상을 말하는 것은 관념론에 불과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배정당을 바꾸고 생산수단의 법적 소유권을 바꾸는 것으로 사회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회가 하루 하루의 삶을 사는 대중에게 실제로 제공해 준 것은, 간접적인 사회적 조절이라는 계급타협의 체제보다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니었다. (아니 심지어 잉여가치율의 간접적 지표로 말해지는 축적률에 있어서 구 사회주의권 국가들은 ‘서방 자본주의’를 두배가까이 상회하기 조차 했다.)

여전히 가끔씩 출몰하는 혁명이냐 개량이냐 라는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이제 정말로 미래의 전망에 대해 우리의 상상력을 개방해야 할 시간이다. 우리의 목표는 관청의 간판이나 체제가 스스로를 부르는 명칭이 아니라, 과연 현실의 개개인들이 경험하는 삶을 얼마나 더 나은 것으로 바꿀수 있느냐는 문제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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