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문화 2005년 10월호
노동
당신의 하루 속에 숨어있는 이야기
사람들은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모두 보는 줄로 착각한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항상 우리 주변에 있어도 우리는 보지 못한다. 누군가 말했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갈망하던 내일이라고. 나는 오늘은 지금 내 옆에 숨어있는 이들의 땀과 눈물이 만든 오늘이라고 다시 말하고 싶다. 난 그저 나의 하루 속에 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10월 14일 금요일 오전 10시 28분 | 학교 가는 길 고대역에서
지하철 환경미화원 | 이선자(가명), 박옥경(가명)
바닥을 청소하시느라 고개 한번 들지 않으신다. 한동안 그저 옆에서 조용히 서 있었다.
“나한테 뭘 물어본다고 그래. 아유, 청소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지.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나? 힘든 거? 응, 좀 힘든 거는 저 천장 청소하는 거. 학생은 저렇게 높은 데는 청소하는 줄도 모르지? 1년 중에 4월하구 10월, 고렇게 두 달 동안이 천장 싹 다 청소하는 달이거든. 요 장대 좀 봐봐, 요거. 한번 잡아봐. 아이고, 학생은 들지도 못하네. 높은 데는 저 끝에다가 걸레를 달아가지고 닦구, 좀 낮은 데는 저기 있는 구루마 위에 올라가가지고 청소하는 거야. 저 천장에 환기구 같은 것도 다 떼다가 닦기도 하구. 응? 아이구, 회사에서 요거 하나 때문에 무슨 아저씨를 새로 뽑겠어? 그냥 우리보고 하라고 하지.”
기다란 장대는 바라보기조차 버거웠다. 이 분은 그걸 들고 잘 보이지도 않는 천장이 깨끗해질 때까지 걸레질을 하셔야 한다.
“저 옆에 벽도 죄다 하얀 게 엄청 손 많이 가고, 요즘엔 쓰레기통도 치워놔서 그게 힘들어. 학생들이 제 딴에는 안 보이는 곳에 치워둔다고 어디 구석구석에다 쑤셔놔서 그거 일일이 빼는 것도 일이야. 뭐 좀 있으면 무슨 훈련인가 한다고 그나마 있던 쓰레기통도 싹 다 치운다는데 걱정이야 아무튼. 거 뭐야, 또 하나 큰일인 게, 에스컬레이터 닦는 거. 그거 한번 닦으려면 멈춰놓고 해야지 안 그러면 사고 나잖아. 아니 그새를 못 참고 왜 멈춰놨냐고 역무실에다 소리소리 지르는 사람들도 있어. 그럴 때는 아주 심난하지. 나 같은 사람은 아침 6시부터 오후 3시, 오후 사람들은 12시부터 저녁 9시, 밤 사람들은 9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야. 그러니 이렇게 큰일은 시간 겹치는 12시부터 3시까지 합동시간에 하는데, 사람 돌아다닐 때 한다고 그걸 또 뭐라 뭐라 역무실에 말을 해대는 사람도 있어. 거 잘 알지도 못하구선.”
아주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말씀하신다. 이 분에게 6시는 아침이고, 9시는 저녁이다.
“아! 제일 골치 아픈 거는 자취생들 음식물쓰레기 버리는 거! 이거 좀 학생들이 꼭 알아야 돼. 아니 무슨 배낭 째로다가 그냥 쓰레기를 이만큼 가져와서는 쓰레기통에 잔뜩 부어버리고 도망가는 거야. 하도 그래서 내 몇 번 잡아봤더니 다 고대생이더구만, 다 고대생이야. 학생들이 그거만 안 해줘도 살겠어 아주 그냥. 학생들이 음식쓰레기를 하도 봉지째 버려서 통을 한 시간마다 비워야 돼. 전에 한번은 무슨 시꺼먼 봉지가 있길래 안에를 봤더니 무슨 입장권에 ‘고려대학교대강당’ 하고 써 논게 하나 가득 있더라고. 세상에 이름까지 써 있어가지고 하도 화가 나서 내가 그거 들고 학교까지 가서 찾아보려고 했다니까 글쎄. 술? 이상하게 학생들 술 많이 먹는다 먹는다 하는데, 토하고 막 행패부리고 하는 학생은 어쩌다 한번이야. 그러고 보니까 전에 한번 어떤 학생이 술 먹고 역무실 전단지를 그냥 다 뜯어버려 가지고 난리난 적은 있었네. 고연전인가 할 때는 그거야 시끄럽기도 하구 정신도 없구 아주 난리가 나지 뭐. 그래도 젊은 사람들 하는 짓인데 어쩌겠어, 그 날 하루 그냥 참아야지.”
갑자기 대화가 끊어졌다. 내 뒤로 한 아저씨가 오고 계셨다. 다른 곳에서 30분을 기다리다가 엘리베이터 옆으로 갔다. ‘용역대기실’이라는 명찰이 붙은 방은 손바닥보다 넓었다. 지하여서 햇빛도 바람도 없었다. 같은 조 분이 필통만한 목침을 베고 누워계셨다.
“아 방이야 둘 아니면 넷이 쓰는 건데 넓지 뭐. 좁아보여도 이 안에서 밥도 해먹고 잠도 자고 다 해. 겨울에도 따뜻해. 여름? 저기 봐, 에어컨 막아놓은 거 안보여? 그래도 우리는 다른 데 비하면 엄청 괜찮은 거야. 조 옆에 있는 방이 씻는 데고. 아유 근데 좁아서 학생들 제대로 앉지도 못하고 미안해서 어째. 괜찮아? 고향? 나는 보성인데, 뭐 서울로 금방 올라와서 기억도 안나. 일은 뭐 3년 했나? 내년 2월이면 딱 3년. 그렇지, 3년. 난 이 일 하기 전에 장사도 해보고 딴 거도 해보고 아무튼 별 거 별 거 다 해봤어. 우리 아들내미도 얼마 전에 군대가가지고 지나가는 학생이 다 아들놈 같아.”
처음 분이 다시 말씀을 이으실 즈음, 오후 조 분들이 들어오셨다.
“난 여기서 한 1년쯤 일했어. 전에는 집에서 아들 둘 낳고 집안일만 하면서 살았었고. 남편이 건설에서 일하니까 현장 따라서 많이 돌아다녀는 봤지. 고향은, 충북에 충주라고 알아? 충주가 어떤 동네냐 하면, 통금시간이 없던 동네야 충주가. 뭔 소린지 알겠어? 인심이 하도 좋으니까 밤에도 돌아다녀도 아무 일 없는 거야. 아무튼, 아까 그 아저씨가 관리장아저씨야. 아니 지하철공사 사람이 아니고. 우리가 계약 맺은 용역업체에서 나와서 감독도 하고 소리도 지르고 혼도 내는 사람이야. 무슨 퇴역군인이라네? 나라에서 군인 그만둔 사람들을 이런 데다 먼저 집어넣게 어떻게 손을 쓴다나봐. 그래가지고 말하는 투가 아직도 아주 자기가 장군아저씨야. 막 아랫사람 부리는 말로 무섭게 말해대고. 역무원 사람들은 그래도 친절하게 대해주는데. 아, 그럼 청소하는데 요즘엔 다 용역이지. 옛날에 지하철공사에서 직접 일할 때는 지금보다 훨씬 할만 했었는데 용역으로 바뀌고 나서부터 좀 더 힘들어.”
“노조가 있긴 있어. 아직까지 뭐 해주는 건 없더만. 우리가 무슨 사고가 나거나 파업을 해야 도움 되는 줄 알 텐데, 그냥 얌전히 일만하니까 노조 만날 일도 별로 없어. 전에 국회에서 무슨 법 통과해야 된다고 해서 그거 때문에 여의도까지 시위하러 갔던 적은 있는데.”
“이 일을 돈 생각하면 할 짓은 못 돼. 우리 월급 90만원이 이 바닥에서는 많이 버는 거야. 거기서 또 뭐다 뭐다 해서 막 떼 가고. 그냥 역도 마침 학교 앞이겠다, 자식들 잔뜩 생겼다고 생각하고 일해야지. 학생들한테 바라는 거 없어. 그냥 열심히 일하고 하면 학생들도 알아주겠지.”
12시면 합동시간이다. 얘기를 나누는 것마저 죄송스러울 만큼 소중한 쉬는 시간을 내가 빼앗고 있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떨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10월 14일 금요일 오전 11시 19분 | 학관 2층에서 점심을 먹다
조리사 | 이은숙씨. 올해로 47인 돼지띠
이른 점심으로 900원짜리 라면을 샀다. 식당은 두세 테이블을 빼고는 비어있었다.
“난 여기 3월부터 일했어. 원래 바로 전까지 지하철공사 본관에 있는 직원식당에서 일했었는데, 회사에서 여기가 어렵다고 일 좀 보라고 하길래 왔지. 응? 아니 무슨 해결사야. 아이구 아니야. 소속이 어디냐구? 저기 써있는 거 보이지? 풀무원 밑에 있는 저 ECMD에서 일하는 거야. 이 식당에다가 저기 있는 커피숍이랑 매점도 다 회사에서 관리해. 학교랑은 상관없을 걸?”
하얀 작업복을 벗으신 모습이 무척 낯설었다.
“아, 옷? 중요한 손님이 오셔가지고. 영양사님이랑 같이 잠깐 밖에 갔다 왔어. 왜, 이렇게 입으니까 신기해? 못 알아보겠지! 맨날 허연 옷만 뒤집어쓰니까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지 않아? 학생들? 테이블에 놓고 안 치우는 게 좀 서운하긴 한데, 그 정도야 우리가 금방 치우니까. 그래도 버려주고 가면 좋지.”
식당일이 걱정되셨는지 연신 두리번거리셨다.
“지금 일도 있고 좀 있으면 퇴근인데, 얘기 오래할거야? 아니, 지금 사람은 없어도 스낵이다 보니까 음식을 빨리 만들 수 있게 준비해 놔야지. 아이구 그럼, 학생들이 와서 국수 달라고 하는데 그 때 되가지고 면발 삶을 수는 없잖아. 그래서 우리는 쉬는 시간이고 뭐고 없어. 학생들이 계속 오니까, 항상 일하거나 아니면 준비라도 하고 있어야 돼. 그럼, 점심시간도 따로 없지. 3시쯤이면 배고파서 먹긴 먹는데, 뭐 따로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먹다가도 학생들 오면 바로 음식 해줘야지. 아유, 아니야. 기다리는 학생들 보면 우리가 너무 미안해. 아 나라도 기다리고 서있자면 짜증나지 왜 안 나겠어. 막 배고파서 왔는데 우리 일하는 거 보면 괜히 답답해 보이고 그럴 거야. 그런데 라면도 그게 별 거 아닌 거 같아도 그거 시간이고 온도고 다 맞춰야 돼. 요즘에 라면 어땠어? 조금 느렸나? 새로 들어온 분이 계시는데 손이 잘 안 맞고 해서 한동안 속도가 안 나더라고. 이제는 익숙해졌으니까 괜찮을 거야.”
나는 잘 몰랐다. 제시간에, 방해받지 않고 밥을 먹는다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난 7시 반부터 3시 반까지 일해. 오후 사람들은 11시부터 식당 끝날 때까지 하고. 시작하고 끝나는 거야 정해졌는데, 준비도 하고 정리도 하고 해야 되잖아? 그래서 오후 조는 청소까지 하다보니까 사실 9시간 일하는 거야. 돈? 월급 말야? 아유,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려 그래. 그거는 저기지, 그 뭐냐, 프라이버시야 프라이버시.”
“저거 봐. 한정판매하는 메뉴 있지? 우리가 그래도 재고도 없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어. 재료도 신선한 걸로 하려고 노력하고. 메뉴는 영양사님이 알아서 해주셔. 그러니까 이론은 영양사님이 해주시면, 몸으로 뛰는 그 뭐야, 응, 실무. 실무를 우리 조리사들이 하는 거지. 응? 아니 무슨 또 해결사야.”
“내가 딸이 1학년에다가, 아들이 벌써 ROTC도 들어갔어. 학생들이 남들 같지 않고 다 내 자식이지 뭐. 우리야 맛있게 만들기만 하면 된다 생각하고 하지. 뭐 어디 학교는 너무 더럽게 해서 한 달 정지 먹은 데도 있다더만. 위생상태 점검한다고 구청인가에서도 나오고, 회사에, 학교에, 학기 초에는 학생까지 4번은 검사가 나와. 시도 때도 없이 검사하는 것도 있고. 그래서 우린 항상 긴장해가지고 살아. 학생들은 그저 자주들 와서 맛있게 먹고, 모자라면 더 달라고 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라면을 다 먹었다.
10월 14일 금요일 오후 4시 37분 | 고려대학교 어느 건물
수위 | 이강철(가명), 60대
어느 주간지에서 어윤대 총장은 돌로만 짓겠다는 재단의 고집 덕분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캠퍼스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모든 건물 하나하나에는 수위분이 계신다.
“거, 밤에 오토바이 타구 돌아댕기는 애들 알지? 걔들이 다 에스원회사 애들이야. 삼성에 그 에스원이라구 회사 하나 있는데, 우리가 바로 고 아래 있는 트루맨 회사에 있거든. 그렇지, 용역이지. 아 요즘 세상에는 다 용역이야. 아무튼 학교에 경비서고 하는 거는 싹 다 요 회사거야. 요 명찰 봐봐. 트루맨하구 써 있지?”
아저씨 옷 곳곳에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건물 안 밝은 조명에 유리 명찰이 반짝인다.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24시간씩 맞교대로 일해. 아 당연히 하루 건너서 일하지. 그럼 매일 일하면 사람 진짜로 죽게? 그치 그치, 대충 하루에 12시간씩 일하는 거야. 우리가 밤새도록 일하고 들어가는데, 그게 다 학교에서 사람 좀 적게 써보자고 하는 짓이지 뭐. 안 그래? 학생들은 이런 거 모를걸? 우리 얼굴이나 알아야 사람이 언제 바뀌는구나도 알지. 거 뭐냐, 경영대, 사범대, 법대, 그리고 그, 포스코. 뭐 아무튼, 그런데는 더 심해, 더 심해. 그냥 한 곳에 가만히 붙들어 박혀서 일하는 게 아니고, 몇 시간마다 때만 되면 서로 교대하면서 고기에 있는 건물들을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해야 되거든. 응 그래, 체계적이지 않은 거지. 아주 복잡해 죽겠어. 그 교대라는 게, 학교에서 곧바루다가 고용된 사람들은 일찍 끝나거든. 그치, 우리가 그 자리 채우러 가는 거지. 사실 따지고 보면 우리랑 똑같은 일 가지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인데, 우리는 용역에 고용이 되가지고 일은 훨씬 오래하는데 돈은 오히려 더 적게 받아. 나 참, 이게 말이 돼? 아 이 나이에 12시간씩 이 건물 저 건물 돌아다니면서 일해 봐. 아주 그냥, 보고 있으면 웬만한 짐승만도 못해. 우리가 이러고 일하면서 살아.”
하루에 12시간씩, 짐승만도 못한 노동. 사람들은 노동이 삶의 가치실현이라고 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일상은 삶의 가치실현치고는 너무 가혹한 실현이다.
“한 몇 년 전에는 다른 회사가 해먹었는데 그 때는 한 달에 45만원도 받고 55만원도 받고 그랬어. 원래 그 계약이란 게 한번 돈을 정해놓고 나면, 나중에 시간 지나면서 물가도 오른다 뭐도 오른다 해도 잘 안올려주더라고. 아 애초에 학교에서 돈을 많이 줘야 회사에서도 돈을 주지. 뭐 또 학교에서 많이 준대도 모를 일이야. 우리야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통 알 수가 있어야지. 사장이 지 맘대로 주면 그런가부다 하고 그냥 받는 거야. 2004년인가? 고때부터 지금 이 회사로 바뀐 건데, 바꾸면서 협상할 때 어떻게 어떻게 해서 여태껏 쭉 75만원 받고 있어. 것두 거기서 무슨 보험 빼고 어쩌고 빼고하면 한 73만원 받고. 또 이번 달부터는 무슨 퇴직금 준다고 10%씩 빼가네. 돈 70만원에서 10%면 얼마야, 7만원이잖아. 7만원 그 돈도 중하지만 퇴직금도 1년 꼬박 일해야지 받는 거지, 거 들어보니까 중간에 잘리면 돈은 돈대로 가져가고 퇴직금은 한 푼도 못 받는다는 말도 있고 뭐 그러더라고. 계약 언제 하냐고? 10월 1일마다 계약이야. 만약에 일 년 내내 일하더라두 말야, 한 9월에 잘려버리면 입때껏 퇴직금 부어놓은 거 손도 못 대보고 싹 없어질 걸?”
원래 받던 월할퇴직금이란 것은 법원에서 불법으로 판결 받은 사례가 있다고 한다.
“거 들어보니까 청소하는 양반들이야 노조다 뭐다 있다더만, 우리야 그런 게 있어야지. 학생은 어리니까 잘 모르겠지만, 옛날에 그 사람들이 돈도 우리보다 조금 받고 쉬는 곳도 엄청 엉망이었거든. 그럼, 말도 못했지. 그런데 노조 가지구 어디랑 막 으ㅤㅆㅑㅤ으ㅤㅆㅑㅤ 해서 돈도 더 받고 하드라고. 우리? 아유, 우리야 뭐, 나이도 전부 다 60도 넘었겠다, 사람 수도 한 50명밖에 안 되겠다, 뭐다 뭐다 해서 노조 같은 거는 못 만들겄어. 뭐 그런 거 바꾸는 게 여간 힘들어야지. 공부만 하는 학생들이야 모르겠지만, 세상 바뀐다는 게 진짜 힘든 거거든.”
“우리가 1년제 계약이다 보니까 어디에 물건 뭐 있고 일 어떻게 하는구나 알겠다 싶으면 그새 1년 지났다고 딴 건물로 옮기래. 또 건물도 원래 서너 명이 같이 관리할 걸 갖다가 한두 명이 하려니 좀 힘들어? 우리 일이란 게 학교랑 학생들 사이에 껴가지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아주 미칠 때가 많아.”
아저씨께서는 내게 당신의 자식 자랑도, 호기 있던 젊은 시절 얘기도 모두 적지 말라 하셨다.
“이거 글에 쓸 거면 내가 누군지 절대 모르게 써줘. 우리야 파리 목숨 아냐. 말로는 불이익 절대 없게 하겠다 하지만, 아 당장 쪼매한 걸루다가 뭐 하나라도 없어져봐. 당장 달려 와가지고 그냥 일을 그따위로 해 먹냐고 욕은 욕대로 먹고 일도 그날부로 바로 내쫓긴다구. 비싼 거면 물건 값까지 물어내라고 난리칠걸? 이런 마당에 나 명찰이라도 나와 봐. 바로 이거지 이거. 댕강하구 모가지 잘리는 거야.”
“학생도 그냥 우리 고생하는 얘기 듣구선 사회 나가면서 다 까먹어버리면 안 돼. 거 내 말로 하기는 뭣하지만 이런 거 듣는 게 진짜 공부야. 사회 나가서 우리들 잊어버리지 말구 열심히 살아서 우리처럼 고생하는 사람 없게 좀 해줘. 알겠어?”
아저씨의 마지막 부탁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어느 영화에서 환경미화원인 주인공이 이렇게 탄식한다. 작업복을 입는 순간 우리는 투명인간이 된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우리를 모른 척한다고. 나의 일상은 얼마나 많은 투명인간의 고통을 짓밟고 일궈졌는가. 나는 앞으로 얼마나 더 그 사람들을 외면하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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