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 현상이 개별기업 단위까지 확산되고 있다. 하나의 기업 안에 여러개의 노동조합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기업간 인수·합병(M&A) 과정에서 노조끼리 통합되지 않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명의 사용자와 하나의 노조로 이뤄졌던 기업별 노사관계도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재계, 단일화될 때까지 교섭거부 권한 요구

지금까지 복수노조 결성은 주로 노동조합 상급단체에만 국한됐다. 아직까지 합법성을 인정받고 있지는 못하나, 96년 민주노총 결성으로 노조 최상급단체 차원에서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복수노총 시대가 열렸다. 같은 산업이나 업종에 속하지만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에 각각 따로 가입된 복수 산업별 연맹도 금속·화학·택시·철도·의료 등 8개나 된다.

물론 복수 기업별 노조가 이전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공장이 위치한 지역이 다르거나, 사용자의 노무관리 편의성, 노조활동 편의성 등 여러 요인이 얽혀 같은 법인인데도 노조가 여러개 있는 기업들이 있다. 아남반도체의 경우 서울·인천·부천 등 세곳의 공장에 89년 이후 각각 따로 독자적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현대정공 울산공장과 창원공장에도 각각 노조가 따로 있다. 대우조선은 대우중공업에 합병됐지만, 여전히 노조는 2개이다.

IMF체제 이후 구조조정을 위한 인수·합병 물결이 몰아치면서 개별기업의 복수노조는 더욱 흔한 현상이 되고 있다. 지난 11월17일 효성그룹은 효성T&C·효성물산·효성생활산업·효성중공업 등 4개 주력 계열사를 합병해 단일회사 (주)효성으로 새 출발했다. 하지만 (주)효성 노동자 9천여명은 소속된 노조가 다르다. 4개 계열사 노조들이 각기 현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은행 합병에서도 복수노조는 큰 현안이다. 상업-한일, 국민-장기신용, 하나-보람 등의 합병이 이뤄진다 해도 각각의 노조는 당분간 통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주변의 얘기이다. 임금·인사 등을 둘러싸고 노조간 이견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때문에 설사 통합한다 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일본 도쿄-미쓰비시은행 합병에서 노조 통합에 1년6개월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현대자동차의 기아자동차 인수나, 난항을 겪고 있는 현대전자와 LG반도체의 빅딜(대규모 사업교환) 등이 이뤄질 때에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기업에 노조가 여러개 생길 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임금·단체교섭을 어떻게 할 것이냐다. 방법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여러개의 노조에 각각 교섭권을 주는 것, 미국처럼 대표성이 높은 한 노조에 배타적 교섭권을 주는 것,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처럼 조합원수에 비례해 각 노조에 교섭위원을 배정하는 것 등이다. 하지만 세가지안 모두 우리나라 노사관계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재계는 인수·합병에 따른 복수노조 발생에 대한 대책을 내놓았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11월27일 ‘기업 인수·합병 및 영업양도시 노사관계에 관한 경영계 의견’에서 “합병이나 양수 뒤에 한개 사업장에 두개 이상의 노조가 존재하면 피흡수 합병의 노조는 흡수합병 노조에 흡수돼거나 해산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 신설 합병(합병을 통해 새 기업이 생기는 것)의 경우에는 “사업장에 한개의 노조가 존재할 때까지 사용자가 단체교섭을 정당하게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직대상 규약만 다르면 복수노조 가능

재계의 이런 주장은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5조인 ‘단위 사업장의 복수노조 설립은 2002년부터 허용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하나의 기업 안에서는 조직대상이 중복되면 복수노조를 2002년까지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노조를 하나로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 역시 기업 단위 복수노조는 교섭력 약화, 사용자의 분할지배 가능성 등의 위험성이 크다고 우려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복수노조 설립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조직대상을 정하는 노조의 규약을 바꾸면 된다. 실제로 노동부가 지난 11월12일 대우자동차 사무직노동자들의 노조설립신고서를 반려한 것은, 대우자동차노조 규약에 정해진 조합원 가입대상 범위에 생산직뿐 아니라 사무·일반직 노동자도 포함된다고 풀이했기 때문이다.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대기업 사무직 노동자들의 노조결성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대우자동차와 비슷한 사례는 앞으로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대기업 노조로서는 사무직까지 포괄하든지, 아니면 복수노조 체제로 들어서든지 갈림길에 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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