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권선언은 “사회의 모든 개인과 기관은 이 선언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이 권리와 자유의 존중을 촉진하도록 지도와 교육을 통해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 92년 7월 유엔 인권이사회는 ‘국제 인권규약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우리 정부에 권고했다. 그뒤로도 인권교육에 대한 유엔기구의 권고는 96년까지 4차례나 이어졌다.

세계인권선언 소개조차 되지않아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반 국민이 주위에서 국제 인권기준의 내용을 접하기는 어렵다. 인권교육은 극히 일부 대학과 민간단체에서 겨우 알껍질을 깨고 있는 수준이다. 대학에서는 성공회대가 지난 95년 2학기에 ‘인권과 평화’ 강좌를 개설한 것을 비롯해 대구대의 ‘인권사회학’, 서강대 ‘가톨릭교회의 인권과 정의’, 광주여전 ‘법과 인권’ 등을 손꼽을 수 있는 정도다. 그나마 체계적인 교재도, 인권분야를 전공한 교수진도 아직은 없다.

초·중등교육에서는 별개의 인권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96년 유엔 아동권리위원회에 이렇게 답변했다. “초·중등학교 교육은 일반적으로 정치·사회 같은 과목에서 아동의 권리를 비롯한 인권관련 주제를 포함하고 있다. 더욱이 아동은 수업과 여타의 과외활동에서 어린이헌장과 청소년헌장을 암송하고 있다….”

정치·사회 과목에 법질서에 대한 존중이나 민주시민의 덕목 등 일부 인권교육의 요소가 포함돼 있기는 하지만, 세계인권선언 등 기본적인 인권문서의 내용조차 소개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또 어린이헌장이나 청소년헌장은 국제조약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는 유엔 어린이·청소년 권리조약과 달리 강제력이 없는 선언적 헌장일 뿐이다.

이와 관련해 오는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 50주년을 맞아 선포될 예정인 교육부의 학생인권선언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학생인권선언제정위원회가 지난 11월10일 마련한 실무초안은 인권운동단체로부터 크게 환영받을 만큼 충실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교육부가 마련한 수정안은 초안에서 크게 후퇴해 논란을 샀다.

‘학생은 매질 위협 욕설 따돌림 등 모든 종류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돼야 한다’는 초안의 4조는 ‘학생에 대한 체벌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아니한다’로 순화됐고, ‘학생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다양한 사상을 접할 수 있으며’나 ‘학생의 두발형태나 복장 등은 합리적 기준없이 함부로 규제받아서는 안 된다’ 등의 조항은 아예 삭제됐다. 이제까지 있어온 형식적인 선언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인권교육은 다양한 사상과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관용정신, 일상생활을 인권원칙에 맞게 바로잡으려는 비판정신 등을 본질적으로 내포하는 교육이다. 또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터득하고 실천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교육이다. 강순원 한신대 교수는 “인권교육은 자신이 얼마나 가치있는 존재인지를 인식시키고 남에 대해서도 적절히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와 태도를 길러주는 교육”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 발전의 척도

지금처럼 입시경쟁이 인간성 교육을 압도하고 물리적 폭력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교육 풍토에서 어쩌면 인권교육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 또 국민의 사상과 시민사회를 통제하려는 기본 발상을 가진 국가권력이 통제의 대상인 국민에게 권리의식을 심어주는 교육을 흔쾌히 할 리도 없다. 결국 인권교육은 그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을 가리키는 척도인 셈이다.

류은숙 인권운동사랑방 인권교육실장은 “지금 수준에서는 국민의 인권과 가장 밀접한 현장에 있는 군대 법집행요원 경찰 교사 사회사업가 판사 등을 상대로 인권교육을 하고, 국제 인권규약의 내용을 국민 모두에게 홍보하는 게 우선 필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마저 실천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인권을 가르치지 않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기 힘들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가 우리나라에 요구하는 최소한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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