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에 ‘생명’을 포함시키자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성취된 인권은 진정한 의미의 인권이 아니다”
저는 지난 8일 진보넷에 블로그를 개설했습니다. 누구보다 사회 진보를 열망하는 제가 나름대로 진보를 추구한다는 분들과 소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블로그 분류를 선택하는데 마땅히 고를 것이 없었습니다. 제가 요즘 가장 관심을 많이 두고 있는 분야는 생태, 생명, 동물, 환경, 예술 등이거든요. 그 외에도 여성, 청소년, 교육, 공동체 등에도 관심이 있는 편이지만, 주력분야라 할 수는 없고요. 또 사회, 문화도 저의 관심분야들과 관계가 있지만 두루 포괄하는 개념이라 해야겠죠.
아시다시피 진보넷의 분류는 정치, 경제, 사회, 통일, 평화, 노동, 환경, 여성/성, 인권, 과학기술, 정보통신, 청년/청소년, 대학, 학술, 교육, 농민, 빈민, 지역, 국제, 보건의료, 종교, 공동체, 미디어, 복지, 문화로 모두 25가지입니다.
할 수 없이 ‘환경’을 선택하기는 했습니다. 저는 환경에도 관심이 많고, 생명은 환경과도 관계가 있지만, 환경이 그 영역을 다 포괄할 수는 없습니다. 예술은 문화에 포함시킨다 해도 생명이나 동물이 들어갈만한 분류가 없는 것입니다.
동물도 환경의 중요한 일부이지만 외면당하고 있다
사실 생명과 동물이 환경의 일부라 하여 틀리다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환경 개념 안에는 생명의 개념이 불완전하게 걸쳐 있고, 동물의 개념은 거의 쏙 빠져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동물의 경우 야생동물 정도가 포함되기는 하지요. 그러나 인간이 동물들과 관계 맺는 방식들을 볼 때 동물문제는 야생동물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반려동물들, 농장에 가둬키워지는 동물들, 모피를 위해 사육되고 죽어가는 동물들, 보신문화로 고통 받는 동물들, 동물원에 전시되는 동물들, 공연에 이용되는 동물들, 싸움·경주 등 사행성 오락에 이용되는 동물들, 끊임없이 번식을 강요받는 모견이나 종견들, 동물뽑기나 경품으로 이용되는 동물들, 홍보에 이용되거나 심한 노동을 해야 하는 동물들, 실험에 이용되는 동물들…
그래서 아직은 환경운동가나 생태주의자 중에서도 동물보호를 생태계 유지 차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것은 진정한 공존이 아니며, 동물보호도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차원에 가두는 것입니다. 여전히 인간중심적인 근대적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인류적인 wellbeing’과 혼돈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세상을 머리로만 사랑하는 것이지 가슴으로도 사랑하는 것이 아니며, 인간이 동물들에게 가하는 ‘심대하지만 피할 수 있는’ 가학의 현실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실 동물착취는 심각한 환경파괴와 맞물려 있기에, 인류의 wellbeing이란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하지요.
아직은 환경론자나 생태주의자들에게도 외면을 당할 정도로 우리 사회의 동물에 대한 인식수준은 낮습니다. 어느 나라나 인간의 사회복지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이후에야 동물보호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일반화, 보편화되고 그 보호가 정책화, 제도화됩니다. 이는 일단은 사회의 주된 구성원인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복지가 어느 정도의 수준에 이른 다음에야 우리의 주위를 둘러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동물보호’에 대해 이야기하면, ‘불쌍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배부른 소리를 하냐’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 백인들이 흑인을 노예로 부려먹던 시절에 백인들에게 흑인들의 고통이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오히려 멸시를 당했지요. 지구상에서 동물들도 생명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種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들의 권리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점차 진보해가는 시대에 ‘인권’ 개념은 ‘생명권’의 개념으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인간이 살기 힘든 세상이라고 해서 동물에 대해 배려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여력이 있어야한다기보다 올바른 관점을 갖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엄밀히 얘기하면, ‘인권’ 개념은 ‘생명권’, 나아가 ‘자연권’으로 확장될 수 있을 터인데, 요즘은 인권과 자연권에 대해서는 인식이 많이 되어가고 있지만, 인권에서 자연권으로 의식이 옮아가기 전에 거쳐야 할 생명권에 대한 관심은 쏙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동물을 사람의 이용대상으로만 여기고 그리 이용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한 생각을 바꾸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크 롤랜즈는 『동물의 역습』에서 “전세계를 뒤흔든 구제역, 광우병, 조류독감 파동은 동물을 상품으로 취급한 결과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다. (사람들은) 이윤만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동물을 강압적으로 취급한다”며 학대받는 동물에게도 도덕적 권리가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처럼 가르쳐왔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실제 동물사회에도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폭력이론을 뒤집는 이타적 성공전략’을 사용하는 무리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비투스 드뢰셔의『휴머니즘의 동물학』)
이제는 학교에서도 인권 교육과 생명권 교육이 ‘따로 또 같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생명권은 인권의 확장된 개념이자 온전한 개념이므로, 생명권 교육과 인권 교육은 서로 상승효과를 일으킬 것입니다.
경기민언련 사무처장 이주현님의 표현을 옮깁니다.
“인간 중심에 국한시킨 인권은 결국 인간의 욕망을 극복할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은 생명을 파괴하고 생명을 파괴하는 대가로 성취된 인권은 진정한 의미에서 인권이 아니다. 누릴 수 없는 공허한 논리일 뿐이다. 결국, 인권의 범주는 생명이라는 범주와 환경이라는 범주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선도적으로 분류에 ‘생명’을 포함시켜 주십시오
그래서 진보넷에 부탁드립니다. 선도적으로 분류에 ‘생명’을 포함시켜 주십시오. 다음과 같이 하면 어떨지요?
대분류 : 생명
중분류 : 생태, 동물, 채식
더 적당한 용어나 중분류에 추가할 개념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데 진보넷이 큰 역할을 하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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