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은 방한중인 윌리엄 페리 미국 대북 정책조정관을 만난

자리에서 금창리 지하 의혹시설 등 대북 현안문제 해결책으로 일괄타결

방안(package deal)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김 대통령이 선호하는 대북

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북한이 금창리 지하 의혹시설에 대한 미국의 자유

로운 접근을 수락하고 미사일 개발을 자제하면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 해제

, 미-북관계 정상화, 식량지원 등을 한꺼번에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방안은 그러나 구체적으로 실현하는데는 현실적인 문제점이 적지 않

다. 미국 정부가 종전 직제에는 없던 대북 정책조정관을 신설해 거물급

정치인을 임명한 것은 기존의 대북 포용정책을 전면적으로 검토하겠다

는 의지가 담겨 있으며, 실제로 미국 정부는 새로운 [당근]을 주고서는

대북 현안문제를 해결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 대통

령의 제의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지 의문이다.

물론 미국내에도 이러한 포괄적 해결방식을 주장하는 여론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말로 북한을 다룰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 미국 의

회의 자세이고 행정부도 이를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미국의 대외정책

은 또한 어디까지나 미국이 알아서 할 일이지 제3자가, 그것도 공개적

으로 말할 사항이 아니다. 물론 어떤 정부 고위 당국자의 말처럼 김 대

통령의 제의는핵 문제가 발생하면 핵 문제에만 매달리는 식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대북정책]을 지양하고 한-미간의 확고한 공조

에 바탕해서 북한의 개방유도 등 대북문제를 보다 큰 틀에서 해결하자

는 메시지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6월 김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때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전면해제를 거론했다가 미국측의 부정적인 반응과 함께 남의 나

라 문제에 개입한다는 오해를 받았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제의내용들을 공개했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다.

대북 현안문제와 관련해 [당근]을 먼저 제시한 것도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을 조장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더 신중했어야 했다. 김 대통령은

북한이 일괄타결 방식에 응하면 우리 정부 차원에서도 식량지원을 본

격적으로 하겠다는 시사를 했는데 이는 다시 한번 생각해볼 문제다. 문

제를 일으키면 [경제적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인식을 북한에 심어주면

북한은 앞으로도 계속 위험한 장난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 직접적인

식량지원을 하는 과정에서 그동안 끊어진 남-북 당국간 대화를 복원해

보겠다는 것이 정부 당국의 의도인지는 몰라도 북한은 언제나 대화는

시늉일 뿐, [다른 속셈]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북한 당국이 [개방=체제붕괴]라는 도식에 집착하는 한, 개방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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